2010년 1월 17일 일요일

너무 한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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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6개:

  1. 1위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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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오선리플후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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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마지막글이 가슴에 와닿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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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이제 고3이되는나는 무얼하고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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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너무 좋은 스레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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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익명을 통해서 저렇게 자신의 반생을 숨김없이 얘기할수 있어 읽는것은 굉장히 감동적이군요. 간단하게 옆에다가 나의 이야기는 어땠는지 쓰고나서 잠깐 눈에서 물을 짰습니다.



    한국에도 누군가가 이렇게 스레 세워서 착실하게 이야기 세워주지 않으려나. (←떠넘기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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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아 결국 울고 말았다.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언제부터 잊어버렸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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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난이제끝인가봐2010년 1월 17일 오전 2:21

    ㅠㅠ 좋은 스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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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왠지 마지막 말이 감동적이군요..

    이제 인생을 시작한 학생이라는신분...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담고 살아왔던 인생이

    갑자기 아직은 희망적이라는걸 느끼게 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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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인생에서 자기 자신은 주연이긴 하나 각본가는 못 되는듯.



    뭘 하던 간에 보조 연출가들이 길을 틀어버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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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이것이, 무언가 긍정적인 영감을 느끼게 해주는 류의 스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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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그러나 제 드라마는 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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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내 인생은 어떤가....그냥 흘러만 가고있는건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모두 움직여라!!!아...지금은 자는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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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뭔가 와닿는 스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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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내가 하고 있는 드라마는 주인공이 내가 아닌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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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위의 스레 처럼 문득 쓰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그럭저럭 사는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형, 나.

    단촐한 가족구성.

    하지만 행복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꽤나 공부를 잘했습니다. 다른 아이들 처럼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예습, 복습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위의 스레를 쓴 사람들 처럼 왕따를 당하거나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평범적인 것 보다 더 행복한 초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간암에 걸리면서 모든 것이 붕괴되었습니다.



    간암 말기. 지금이야 이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조금 아프시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있다. 어머니가 일을 하신다. 정도로 인식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약 한달쯤이 지났을까요. 아버지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복부에 이상한 것을 꽂으시고....



    아버지는 무척이나 쇄약해져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아파했습니다. 짜증을 많이 부리셨습니다. 그런 것과 관계 없이, 새해는 밝아왔습니다.



    새해만 되면 우리 가족은 할머니 집에 갔지만, 이번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 누워서 2 만원을 꺼내주며 미안하다고, 우셨습니다. 어머니도 우셨습니다. 형도 울었습니다. 나도 울었습니다....



    형과 나는 밖에서 놀고 오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에 나갔습니다... 밖은 추웠습니다. 뭘하고 시간을 보낸지는 기억 안 납니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그네에 앉아 있기도 했고, 문구점에서 오락기를 만지작 거리기도 했고, 형제는 밤이 어둑어둑해질 때 쯤에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약속한대로 웃었습니다.



    활짝..... 잊혀지지 않는 기억입니다.



    새해가 지나고 아버지는 다시 병원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 아버지는 다시 병원에서 나오셨습니다.... 아마,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주말에 아버지와 나 단 둘이서만 산에 갔습니다. 형은 자격증 시험같은 걸로 어딘가 갔기 때문에 단 둘이서만 갔습니다.



    아파트 뒤의 작은 뒷산.



    아버지는 굉장히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기셨습니다. 가다가 휘청하셔서 아버지를 잡았을 때, 뼈 밖에 남지 않은 아버지의 몸을 만졌을 때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아프시구나...



    평소에 올라가는 시간보다 배는 더 걸려서 정상에 도착했을 때,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정상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이럴 때는 말이지. 뭔가 굉장히 중요한 말을 해야하는데, 딱히 생각안나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다음 번에 올라 올 때 말해주면 되잖아요"



    웃으면서



    .

    .

    .



    이틀 뒤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수요일 날, 3교시 수업을 듣고 있을 때, 처음보는 선생님이 들어와서 저를 급히 찾았습니다. 그 때 예상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밖에 나가서 계단에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말로 슬프게도,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울면서, 반에 들어가 드르륵하고 문을 열고, 가방을 가지고 황급히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몇번이나 집 문을 두들겼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시겠지하면서..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삼촌이 찾아와서 나를 차에 태우고 갔습니다.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멍하니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삼촌도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울었습니다. 그 것 이외에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울다가 잠들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울고 잠들고 울고 잠들고 그것만을 반복했습니다.



    고운 삼베옷을 입고 있는 아버지를 볼 때도, 아버지가 화장당할 때도, 작은 상자에 담겨 나왔을 때도 우는 것 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집에 돌아왔습니다.



    몇 일간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집을 팔았습니다. 전학을 갔습니다. 전학을 갔습니다. 집안의 사정은 극히 열악했지만, 어머니는 버텼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쉬지도 않고 일해서.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졸업했습니다. 뭘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를 가거나, 집에 남아서 PC를 하거나, 티비를 보거나... 형에게 정말로 많이 맞았습니다.



    지역의 가장 꼴통 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하던 시점에 운 좋게 서울로 전학을 가, 그 지역에서 나름 좋다고 하는 학교로 들어갔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로 열심히 했습니다. 중학교 때 백분율로 30%의 성적을 첫 시험에서 70%까지 올렸습니다. 2학년 2학기 기말고사. 내신을 96%까지 올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왜 공부해야하는 지 몰라서, 그냥 집에서 멍하니 학교도 나가지 않은 체 하루종일 컴퓨터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도, 왜 해야 할지도..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를 아버지가 보시면 무어라 말 하실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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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쓰고나니, 장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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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아아 .. 나의 앞날이 보이는거 같아서 걱정 되기 시작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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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공부만이라고 생각하지말고 다른것도 해보는것도 좋겠죠[하지만 요즘사회에선 공부를 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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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 2010/01/17 03:11
    있죠 되게 도움 안되고 참 논리적이지도 않은 말이지만요.. 정말 공부는 일단 잘해두면 좋아요. 왜해야하는지 그런 고민도 없이 그냥 일단 잘해놓고보면돼요. 혼자 힘으로 그렇게 열심히해서 성적 올렸다면 앞으로도 쭉 그럴 수 있잖아요? 공부란 게 원래 한번 성적 오르고 요령 생기면 웬만큼 심경의 변화가 없는 이상 절대 떨어지진 않으니까요. 우리 사회가 대부분 학벌위주다보니까 일단 공부만 잘하면 어딜 가든 이쁨받고 대접받는 게 사실이에요. 그렇게 잘하는데 갑자기 손 놨다니까 내가 다 안타깝네요ㅠ 일단 무조건 해요 공부. 해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게 공부에요. 이유를 찾으려하지도말고 그냥 렙업하는 기쁨을 느끼듯이 성적올리는 재미로 하면돼요. 현재 상황에서 님이 할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의 삶의 방식은 공부하는 것뿐이에요...일단 잘해놓고보면 세상 사는게 참 쉬워져요. 대학만 해도 성적 높으면 4년장학금받고 다닐 수 있고, 아르바이트만해도 그래요. 페이높은 학원알바같은 거 웬만하면 고학력으로 뽑잖아요? 아아 저도 말이란 걸 좀 조리있게 잘했음 좋겠는데1 암튼 너무 안타까워서 적어봐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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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제 마음 속 1위인 길가다가 꿈을 주웠다는 스레를 넘어선 최고의 스레입니다. 진짜 우연도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요..!! 이야기들이 다들 파란만장해요... 어썰님 이런 좋은 스레 번역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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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 2010/01/17 03:11
    계속 생각하고 있는거지만..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잘하도록 하는게 좋습니다. 나중에 차차 시간이 지난다음에 하고싶은 것을 찾게 되면 그 이유를 아시게 될거에요.

    이유가 없다면.. 나중에 하고싶은 것을 찾았을 때를 위해서라고 생각해두세요. 그게 큰 동기가 될지는 반신반의입니다만...

    (그 댓가를 뼈저리게 치르고 있는 사람이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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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거의다가 현재진행형이군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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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나도 위 스레처럼 써볼까. 이미 저질러버린 사람 잇고.

    내 탄생은 꽤 유복했다.

    아버지는 영화를 한편 내서 돈이들어올때엿고, 어머니도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차근차근 싸아놓고있엇다.

    어렷을때는 생일이라고 여행을 가기도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친척들과 해외에 섬같은곳으로 자주 놀러가곤했다. 지금은 잘 기억도 안나지만.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할할때쯔음부터 약간 뒤틀리기 시작햇다.

    유치원때부터 약간 소외돼는 경향이잇는 말수없는 아이엿는대

    초등학교때부터 집안 사정도 나빠지기 시작.

    1,2 학년때는 실제로 왕따로 등교를 거부하기도햇다.

    하지만 저기 스레처럼 나한태도 잘해주는 그런 아이가 잇엇다. 이젠 이름도 기억 안나므로 역시 A라 칭함 ㅋ

    A와 만난건 2학년때엿다. 왠지 반에 하나씩은 잇을듯한 머리좋고 착한 그런아이.

    A는 왕따당하고잇는 나한태 쉽게 말을 걸어주엇고, 친구들에게 소개도 해주었다.

    3학년이 돼어 이제야 익숙해진다... 싶을때쯤 이사를 가게돼엇다.

    이유는 어머니가 페러글라이딩의 선수인대, 원래 살던곳에선 너무 멀기때문..

    이사가게 됀곳은 시골....아니 도시화가 꽤 진행됀 그런 시골이였다. 지명 대라고하면 이천 ㅋ

    A의 도움으로 아이들과 말하는게 어느정도 익숙해진 나는 친구들도 쉽게 사귀엇다. 여자아이들과는 여전히 대화가 어려웟지만 남자아이들은 몇십명씩 모여서 집에 가기도햇다. 도시화가 돼고잇다곤해도 상당히 변두리인곳이여서 완전한 시골학교엿기때문일까....왕따라던지 그런것도 없엇다.

    초등학교는 매우 순탄하게 지나갈터엿다. 학교에선 잠만 자는대도 학원때문인지 뭣때문인진 몰라도 성적은 상위권. 애들이 모르는 문제도 잘 생각해보면 모두 답이 나와 아이들에게 풀어주곤하엿다.

    가정도 화목.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이 조금씩 줄긴 햇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대회에서 상을 휩쓸엇고 아버지도 연극으로 원하는일을 하면서 잘 지냇다.

    그러나 5학년 2학기때 어머니가 다리가 부러졋다.

    그 소식을 아빠한태 들엇을때 우리 아빠 왠 농담이야...ㅋ.... 라며 받아쳣으나

    뉴스에서 패러글라이딩 경기중 갑자기 분 강풍으로 3명의 중상자 발생. 그 사람의 명단에 우리 어머니가 들어잇엇다.

    몇달간 어머니는 병원의 신세를 지게돼엇고, 그다지 저축이 없는 우리집은 할머니의 유산과 착한 친척분들의 조력으로 어찌어찌 어머니의 수술을 하긴하엿으나, 나는 돈이 부족하여 학원을 못 가게돼고 집에선 어머니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매꾸기위해 공부를 할 틈도 없엇다. 아버지는 직장이 멀기 때문에 들어오지못하는 날도 많앗고. 뭐 당연히 성적은 하락.엎친대 덮친 격으로 어머니외의 중상자 2명은 사망햇다는 소리가 들리고 우리 어머니는 2차례의 수술에 실패하엿다. 학교에선 더 이상 자지 않겟단 신념만으로 6학년때까진 중위권에 악착같이 버텻다. 울고싶은 나날이엿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성적도 좋으면서 게임기를 가지고 학교에와서 자랑하며 놀때 나는 집에서 부모님의 빈곳을 매우기위해 밥을 하고 설거지를하고 빨래를하고 동생을 돌보앗다. 그런 생활이엿다.

    중학교때엔 공부가 힘들어졋다.

    우선 자습만으론 공부가 힘들뿐더러, 중학교에선 처음으로 불량 이란것들을 만난것. 나는 기억이 안나지만 친구의 말로는 2~3번 정도 싸움도 일어낫다고한다.

    이래저래 기가 죽어서 모든 일에 의욕이 없엇기 때문에 학교에서 하던 방송부에서도 퇴출돼고 내 사상 최악의 성적이 3연속으로 나왓다.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돼던 성적미달로 인한 보충. 당시엔 말도안됀다고 생각햇던것같다. 1학년때 그나마 다행이엿던건 어머니가 다리가 나아서 일을하여 2학기때부터 학원에도 다니게 돼엇단것정도.

    2학년때도 상황이 좋아지진않앗다. 학원에 다니게 돼긴 햇지만 이미 공부하는 법을 잊어버린 나는 성적은 그대로 중하위권. 남자애들과는 그럭저럭 잘 사귀지만 여자애들한태는 뒷담이나 까이는 그런 생활. 그나마 좋앗던건 도서부 활동. 나는 독서가 좋앗다. 왜인지는 몰라도 책을 읽는걸 좋아하엿고 도서부에는 친한 아이도잇고 여자애들과도 그럭저럭 지냇다. 평균보단 아니지만 2학년은 내 기준으론 순탄한인생.

    그리고 끝.

    지금이 3학년돼는 해. 이제 곳 다시 이사.

    그런대도 이 새벽에 이러고 잇습니다만....스레를 보고 나도 하면 돼지 않을까. 라는 희망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햇네요

    감사합니다. 새로 전학가는 곳에선 열심히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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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써커 - 2010/01/17 04:07
    이런 ㅋ 쓰고보니까 쓸대없이 길고 읽기도 어렵고 문법 바보같고 오타 엄청많아!

    사실 중간에 부모님이 크게 싸운 일이라던가, 당시 분위기라던가 여러가지 빠졋습니다만..뭐 괜찮겟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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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이거 배경음 제목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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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어설트레인님 안녕하세요 !

    항상 번역스레 재밌게 보고있는 눈팅족입니다 ㅠㅠ;;

    전 대학발표 기다리면서 겨울방학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고3인데요

    이스레 읽고나니까 정말 참.. 여러가지로 반성도 되고 앞으로 잘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 새벽에 적적해서 왔는데 정말 감동받고 가네요 ㅠㅠ

    제 인생을 돌아보게 해주는 스레였어요 !!

    같이 면접본 친구는 붙고 저혼자 떨어진상황에서 자포자기 하고있었는데..

    인생은 앞으로 시작이네요 !! 정말 어비스에서 힘들때마다 스레보면서 기운얻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새벽에 긴댓글 죄송합니당 ㅠㅠ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이런사람도 있다는걸 , 스레 정말 감사히 보고있다는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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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이 아저씨..오늘 좋은이야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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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어비스님 - 2010/01/17 04:53
    하울의 움직이는성ost "인생의 회전목마" 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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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아....뭔가 맘속에 남는듯한 기분이...그래도 여전히....음 아닙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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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현재 미대생.

    난 진짜 이 스레의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오르막길같은 인생을 살아왔는가..-_-;;

    초등학교,중학교때는 괴롭힘도 많이 당해왔다만.

    집안도 유복한 편이라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고,지금도 살고있고. 부모님 두분도 건강에 사이도 좋으시고.

    나만 잘하면 인생 드라마 완전 희극. 아 초등학교,종학교 시절은 편집으로 삭제하자[...]

    대학생활이 힘들긴하지만 우울해지진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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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익명의 좋은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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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아스트랄로(하략)2010년 1월 17일 오전 8:40

    셀프 이코노미... 라는 걸 체험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짧게 써볼까요.

    남들 다 있는 유치원 졸업장이 없습니다. 애들이랑 어울리지를 못해서 제발로 나와 버렸으니까요.

    유치원에 있을 시간 동안 책 읽는 게 일상이 되었는지 초등학교 때는 언제나 상위권이었지만... 나중에 얘기를 들어 보니 어무이도 아부지도 제가 애들이랑 잘 못 어울릴까봐 걱정하셨다고 하셨더군요. 1학년 선생님께 부탁할 정도로.

    그리고 과연 전 잘 어울리지를 못했습니다. 3학년 때 왕따를 당하기 시작하고, 학교의 껄렁한 놈들은 놀림감으로 써먹고, 5학년 때는 반에 갇힐 뻔한 적도 있었고, 6학년 때는 본의 아니게 삥까지 뜯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학교 때는 조용히 지내서 덜했지만 이래저래 놀려먹고 하는 놈들도 많았어요. (중3 때 알았던 날라리 하나는 정말...) 그래도 초등학교 때보다는 통하는 친구들도 많아졌고, 저도 저대로 즐거웠으니까. 다행히 중학교 때도 성적이 좋아서, 중3 중반 때 '내가 정말 이런 놈들이랑 같은 학교에 가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어서 외고를 준비, 어쩌다 붙게 되었습니다. 그게 2년 전.

    외고 와서도 지난 9년간 지냈던 게 몸에 뱄는지 애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건 여전합니다. 아니, 이젠 오히려 편해졌군요. 워낙에 말주변도 없고 관심사도 판이하게 달라서 (기숙학교라 TV 못 본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최신 가요도 관심 없고, MP3에 넣고 다니는 곡들도 최소 30년 묵은 해외 락메탈이 태반이라서) 애들과 말 붙이는 것도 힘들고, 혼자 돌아다니는 게 원래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해서, 지금은 2년 일찍 아싸를 체험하는 기분입니다.

    이런 저지만, 솔직히 재수 하나는 좋았던 게 아닐까 하네요. 중2 때 버스에 치였을 때도 한 달 간 오른팔이 불편했던 거 말고는 멀쩡했었고, 친구가 거의 없다시피한 학교 생활이지만 있는 (그리고 있었던) 친구들은 전부 죽이 착착 맞고 하니까요.

    이 아저s... 아니, 이 중생, 오랜만에 좋은 이야기를 들었는지 별 걸 다 적어버렸군요. 정말 자기성찰을 유발케 하는 스레입니다... 아아, 셀프 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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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하늘색은 읽으면서 울 뻔했다...

    저는, 그닥 불행하게 살아오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제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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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제 자신도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윗사람들에 비하면 한없이 행복한 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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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오랜만에 좋은 스레가 올라왔네요 길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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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하나하나 전부 빛나는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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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마지막글에서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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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게이크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이 게이 게이 게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얼 웃겼지만 게이라던가 해서가 아니고 리얼 급반전에 당황한거. 순수한 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랄카 잘보고갑니다 ㅇㅇ 아 원래 눈팅만 할라그랬는데 게이반전이 너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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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엔비 - 2010/01/17 02:31
    순탄한 , 올곧은 길로만 가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틀어진 길의 갈림길에서 옳은 길을 선택하려는

    노력이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지 않는가 라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주제넘게 끄적이다 갑니다. (_ _ )

    Life isn't about finding yourself.

    Life is about creating yourself.

    - George Vernard Sha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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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써커 - 2010/01/17 04:07
    새로운곳 가서 열심히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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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심오한 예술영화도 아닌데 왠지 흥행은 대실패인것같네요..

    조연이나 엑스트라도 거의 등장하지 않구요. 대신 CG는 충만하지만..

    결정적으로 왠지 여배우가 등장하지 않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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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인조인간 - 2010/01/17 02:10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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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아.. 골고루 나랑 비슷비슷한 삶을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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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아..다들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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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학교 왕따이야기에 공감이 가는군요.







    뭐,,, 본인은 그래도 유복한(아버지가 전문직이고 어머니가 초등교사인)







    집안이었지만.







    근데, 왕따나 이런거 보면 여자가 더잔인합디다.







    여자만 있으면 세상이 평화롭다니 그런거 다 거짓말일것 같군요.





    그렇다고 남자는 괜찮다는건 절대 아니지만.





    사람이란게 결국 해봐야 선악과 먹은 동물일 뿐 이란걸 깨닫는 인생이었습니다.





    아직 얼마 살지도 못했지만.(선악과 먹고 더나빠졌다 랄까요, 자기 줏대로





    남을 마음대로 해버리니..)





    학교선생이라는게 결코 믿을존재가 되지 못한다는점, 이점을 꼭알아두셨으면





    좋겠군요. 하긴, 좋은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니까요.







    저 자신도 이기적인 인간인걸 언제나 느끼고 있지만.....(가끔 자기가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느끼시는 분도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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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허리가아프군 - 2010/01/17 11:57
    뭐 인간이 굉장히 이기적이고 잔인한 존재지만,



    그렇게 이기적인 본성에도 불구하고 이타심을 가지고





    행동할수 있다는게 인간의 대단한점 이긴합니다.



    아래글만 봐도 알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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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펑펑 울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보통 이야기는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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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새치기1등이라도..2010년 1월 17일 오후 12:57

    @요시노야 - 2010/01/17 01:47
    으아앗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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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아도 이것보단 덜한 충격이 올거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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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오랫만에 훈훈한글이네요...

    평범하게 산다.. 라는게 얼마나 소중한건지 깨닳게되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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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중간부터 정말 울었습니다...

    정말 좋은 스레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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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이렇게 다양한 삶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랍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걸 보고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지막 말이 정말 가슴에 남는군요. 눈물이 나지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좋은 스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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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이런, 눈에서 콧물이 흐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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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이걸보니깐 우와 난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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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뭐, 쓸대없이 인생을 낭비한다는 생각을 하고는있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덕분에, 헤피엔딩으로 갈수있는

    '길'을 찾게되었으니까요.



    다른사람의 인생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도대체 뭘하고있었던거지?'하고

    자학하지마세요, 비록 남들보다 행복하게 살았지만, 조금 인생낭비를한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도, 자신만을위한 '길'이 존재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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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히노 - 2010/01/17 13:47
    우와...써놓고보니, 이건 뭐 혼자 잘난척한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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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아 결심해놓고 이자리를 떠나지못하는 내가 너무ㅄ같다 제길 착잡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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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읽다가 음악이 멈춘건 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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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좋은 의미로 배신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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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고해성사하는자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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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시간의마술사 - 2010/01/17 14:23
    22여기,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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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기분이 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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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왠지 지금도 늦지 않앗다는 생각이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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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30년 뒤, 나는 나를 뒤돌아 보았을때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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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눈에서 육즙이 흘러나오고 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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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흐..흐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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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난 하고싶은거 공부때문에 포기한 파탄자!

    친구복도 없어서 배신으로 인한 왕따가 두번정도

    그래도 배신한 친구이외에 친구는 많았으므로

    혼자있는 시간이 길어야 한달이었징

    긍데 배신한사람은 하나같이 뻔뻔해서 자기가 불리해지면 다시 나랑

    친해지려고 한다 역겹게도

    별로 주위사람 신경쓰지 않는타입이라 혼자있을때는 책을 읽는다던가

    잔다던가 했지만 역시 심심해서 지금은 잘 놀구있다.

    뭐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너무 좋은걸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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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에... 저도 한번 써볼까요...

    일단 저는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부모님이 여행사업을 하셔서 몇년동안 말레이시아에 계셨을때 태어났거든요]. 그리고 한 7년? 그정도 살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5학년 까지 한국에서 살았지요. 뭐, 다른 초등학생들과 다를것 없이 친구들이랑 같이 놀고, 어쩔때는 싸우고, 혼나서 울고 등등... 그러다가 영어공부를 하러 말레이시아에 다시 왔습니다. 여기서도 뭐,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여친은 없었지만요], 공부도 그럭저럭 하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9월쯤에 무릎 인대가 나갔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1달간 있다가 다시 돌아왔지요. 그리고 저번주. 또다시 무릎인대가 나갔습니다. 한번 끊어져서 약해진게 또 끊어졌데요. 이번에는 한국에 들어가면 미래가 보장이 안됩니다. 한국에서 있어야할지, 말레이시아에 또 다시 들어와야할지...

    .

    ..

    ...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은따입니다. 이렇게 다쳤어도 방문안은 커녕 통화나 문자도 안날라 옵니다. 저는 그냥 그들에게 있으나 마나한 존재이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딱히 특출한 데가 없거든요. 외모도 평범, 키도 평범, 공부도 평범, 운동도 평범. 게다가 저도 왠지모르게 친구들이랑 어울릴려고 해도 어울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부터 학교 안에서는 몰라도 학교 밖에서는 전혀 어울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맨날 집에돌아오면 컴퓨터. 그 이외에는 하는게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한국에 비하면 낳습니다. 한국에는 아는 친구들은 커녕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리고 그 공부량을 제가 따라갈수 있을런지...

    하지만 이 스레를 읽고보니 약간은 희망이 생기네요.

    저도 저의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P.s. 참, 왜 5년간 한국에 있었을때의 친구들이랑 연락이 안되냐는분들, 그때 저희들은 세이클럽 타키라는 메신저를 사용했지만, 여기 말레이시아에서는 그 메신저의 사용이 불가능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연락이 끊겨버렸습니다. 남겨둔 전화번호나 주소도 없었고요.



    P.s.2 약간 두서가 없어져 버린 글이라 읽는데 약간 지장이 있으실겁니다...;;; 죄송합니다. 글재주가 워낙 없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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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모두에겐 각자의 드라마가 있어.

    그 드라마에선 자신이 주역이고 각본가다.

    드라마가 희극이 될 지 비극이 될 지는

    결국 주인공인 자신의 몫인 거야.

    ----------------------------

    이건 명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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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세상이라는 커다란 무대 위에서 모든 남자와 여자는 단지 배우일 뿐일지니

    - 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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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



    사람의 인생은 놀라움과 행복, 슬픔과기쁨의 연속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닳게된 스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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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최고입니다...가끔 저는 왜 이런 삶을 살게 됬을까 원망도 했지만 이 글을 보니까 좀 눈물나고 저는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살고있다는걸 알게됬습니다..

    왕따도 당한 적 없고 친구랑도 잘 사귀고 아빠는 자주 술 먹고 들어오시고 엄마와 가끔 술때문에 싸우기는 하셨지만 이제 다시 사이가 좋아지시고 있으니까..

    가족들 모두 사이가 좋은편.아니, 좋습니다. 오빠는 지금 서울에서 일하고 있지만요. 어찌됐든간에..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정말 명대사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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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개인적으로 저도 저 위의 사건만큼 아픔을 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하고 친구하고 행복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웃기위해서 마음 속으로 수없이 울었던것처럼



    그건 아마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웃음이던 다른 사람의 웃음이던



    행복이란 것이 굉장히 고맙고 감사하게 여겨집니다.





    <모두들 웃으면서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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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저도 고딩때 학교수업을 따라가지못해 점점추락을하고 지금에 와서는 공대에들어가서 그것도 힘든상태로 점점하는일없이 지내지만 이글을읽고 저는 의지가없었을뿐이구나라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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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압도적으로 무거운 스레다.....

    나도 상당히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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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마지막글 너무 인상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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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흐어어어어어어어엉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꼭 한번씩 이렇게 눈물을 쏙 빼시는군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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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엔비 - 2010/01/17 02:31
    BoWn님과 생각이 같습니다.

    아무리 보조 연출가들이 길을 틀어버린다 할지라도

    틀어진 길을 올바르게 고치면서 나아가는 삶과

    틀어진 길 그대로 가는 삶의 선택, 노력은 자신이

    행하는 것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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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그런거네요, 하아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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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다 좋아

    다 좋긴 좋은데..

    자기연민에 빠지는거야말로 가장비굴하다는거.

    이 점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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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감동을 주는 스레입니다.ㅠㅠ 저 배경음악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습니다. 분위기에 딱이네요. 제목도 '인생의 회전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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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본문을 보고 감동을 받고나서 밑의 댓글을 보니 정말 동정받아 마땅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누구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한 사람이 몇명 보이는 것 같아서 아쉽다.

    그게 나쁘다는건 아니야

    근데 뭐랄까...

    불행하면 빨리 행복해지려고 하질 않고 불행한게 마치 자기 자랑이라는 듯이 하고

    난 불행하니까 누군가가 도와줬음 좋겠어. 또는

    난 불행하니까 이런 이야기하면 누군가 동정해줄거야. 같은 생각.

    하지만 양심은 조금 있어서 대놓고는 말 못하고 간접적으로 자기 주위 환경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돌려 말하는 거

    이런건 어때?

    내가 너무 나쁜걸까? 생각이 너무 어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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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정말 감동적이네요....저도 왕따이지만 힘내서 살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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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기운을 내시길...2010년 1월 17일 오후 8:21

    @써커 - 2010/01/17 04:07
    기운을 내시고 좋은 나날들이 펼치기를 저도 기원을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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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그저... 인생무상 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인생 이라는 무대에서 굴곡이 이리저리 움직여서 치고 무너져도

    그저 포기 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게.. 가슴이 아프긴 해도

    열심히 노력을 해야겠네요..



    모두, 다 힘냅시다! 화이팅...



    p.s '혼자' 라는거 힘들어도 이겨내보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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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사이키 - 2010/01/17 05:2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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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RHCP - 2010/01/17 17:56
    누구에게 의지하려 하는 사람도 정이 필요하고 관심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힘든 일을 견디는 힘이 다르고, 그 힘에 벅찬 일을 겪으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마련 아닐까요.

    하지만 누군가를 보고 동정받아 마땅하다, 아니면 그 정도로 엄살부리지 마라, 이렇게 생각하는 건 조금 어린 생각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는 그 사람의 입장에 설 수 없으니까, 그저 공감하고 이해하는 게 전부니까, 섣불리 누군가를 판단하는 건 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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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정말 좋네요 . 이런 스레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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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너무 좋은 스레였습니다. 제 삶을 돌아보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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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死門 - 2010/01/17 15:20
    금방 나으실 수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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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난 지금 뭐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가뿐히 한계치를 벗어났다.



    중2 올라가는 지금 난 대체...



    열심히 살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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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이걸보니 제인생을 글로 나기고싶어졌습니다 (17년인생이지만요)



    제생각으로 얼굴평범 , 몸 통통한편 , 공부 하위 , 얼굴피부 좋음 ,

    팔/다리 의 안쪽(?)잘안보이는피부 더러움?



    제가족은 아버지,어머니,11살차이누나,9살차이누나,4살차이누나,나 입니다



    저는 일단유치원을5살때들어같습니다 (94년2월생)



    초등학교1학년때에는 친구들과 어룰리며 평범하게지냈어요



    2학년때 아버지가 입원하셨어요

    지금은 잘기억안나지만 병원에만 계셨어요

    병은 버거스라는 병인데 혈관이폐쇠되는병입니다

    [아버지는 36살때쯤부터(현58) 걸려있어서 보험을 들수가없었습니다]

    결국 다리쪽의 혈관이 폐쇠되서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제가기억하는 아버지모습은 바둑 , 낚시를좋아하고

    과자를 몰래 숨어서 우리들에게 주기싫어서 바둑판밑에 숨겨놓고 몰래먹는 분이셨습니다



    2학년 겨울방학때쯤 아버지가 집에오셨습니다

    저는 다나았구나했습니다.



    3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셧습니다 장례식할때

    그냥 그렇구나 하고 사촌과 놀았습니다

    너무어려서 죽음이란걸 몰랐던거 같습니다..



    4학년때부턴 왠지모르겠지면 친구들한테 배C 불렸습니다 1명빼고



    5학년때 어머니가 중국으로 돈을벌로가셨습니다

    저희는 친척집에 살다가 빌라고 이사를같습니다

    이때는 누나가 저희를 먹여살렸습니다



    6학년때 다른지역으로 이사가게되서 친하던 친구들과 해어지게됬습다



    아 초등학교때는 남들처럼 학원이나 예습,복습을안했는데

    시험을치면 10등안에는들었습니다 최고4등

    선생님들도 신기해했습니다 매일 학교에서 잠을잤거든요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중국에서 사업이 실패하신것같았습니다

    들으니 산에서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다고했습니다

    다행히 이상은없었습니다



    그리고 큰누나는 혼자 원룸에살고

    둘째누나는 대학



    막내누나와저는 어머니와같이 방2개+복도주방(거실x)인생활하게됬습니다

    막내누나는 자퇴를하고 알바를하면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고기집에서 주방장(?)일을하게되었습니다



    1학년까지는 행복하게보냈습니다



    2학년때 ...........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과도한일과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수술을하셨고 다행히 수술은 설공하였습니다

    다만 눈쪽의 시신경이 잘려나가서 시력이 안좋아지셨습니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언제 죽을지모르는 상태이십니다

    아니면 눈이 갑가지 실명되거나요..

    아또 마음을 조절못한다고할까 화를조절못합니다

    갑자기 아무일도아닌거에 뻥 터져버린달까요...

    의사선생님이 그런일은 안좋으니 조심하라셔서

    되도록 어머니한테 잘보이려고 합니다



    그것빼고는 정상이십니다 의사말로는 기적이라는군요

    다른 뇌출혈환자는 집앞 시장가는 거까지도 힘들다는데

    어머니는 팔팔 하신것같습니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고기집일을그만두고

    화장품일을다니다가 그만두고 현재는 보험일을하십니다

    다행히 누나들이 어머니에게 돈을 보태줍니다..

    저와막내누나의 보험료도 내주고요



    아무튼 3학년때 절망했습니다

    제성적이 너무 낮더군요 결국 운동을그만두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르지않았습니다 중위권이한계였습니다

    또한 살이불어났습니다



    고등학교는 어찌어찌해서 입문계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반에는 질안좋은 학생이 몰려있었습니다

    다행히 왕따같은건 되지않았습니다

    하지만 진정한친구는 없습니다 학교에선잘지내도

    하교하면 별로 같이있지않고

    집에서 컴퓨터만 깨작깨작거립니다

    성적은 중하위권...

    몸은 계속불어나서 운동을다시하였습니다

    결국다시 10키로를 뺐습니다

    비만 --> 과체중이 된거죠..



    현재 2학년으로 올라갑니다 일단 프로그래머가 꿈입니다

    공부를 열심히해서 어머니에게 효도를 해드리고싶어요..

    누나는 현재 회사원 / 간호사 / 간호과학생입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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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 101번째 댓글! 이라고나 할까 이제 고3인 나에게 인터넷은 사치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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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다른곳에서 읽고 혹시 여기서 가져온게 아닐까 하고 봤더니 역시 있네요

    처음엔 길어서 어떻게 다 읽나했는데 읽다보니까 빠져서 다 읽었네요 ㅠㅠ

    정말 하나하나 드라마 ㅠㅠ 번역하시느랴 힘드셨겠어요 ㅠㅠ

    정말 잘 읽고 갑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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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배C - 2010/01/17 21:46
    쓰고보니까 오타랑 문법이 틀린게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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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음.

    여자애들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가 없는, 남자뿐인 공업 고등학교라서 인가.

    라고 적혀있는 글을 보고...

    그 스레에서 분명히 형이 아니라 오빠고, 누나가 아니라 언니인데...

    남자뿐인 공업 고등학교...

    여자애들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가 없는,

    당신같은 기분나쁜 사람을 좋아합니다라는 편지를 받는다 던지...

    남자야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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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요시노야 - 2010/01/17 01:47
    킁킁킁킁킁ㅋ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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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RHCP - 2010/01/17 17:56
    내가 너무너무 힘들때가 있었는데

    친구가 써준 편지한장에 기운내고 그다음날부터

    힘내고 잘 살았지요..사람이 힘들때는 동정받고싶고 기대고싶은건 당연한거라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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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너희들도 스레를 이어나가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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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혹시나 하고 코챈에 갔더니 이런 타래가..

    http://korchan.com/ch/?id=4aab168895481f3e091c3539aa54c637



    할말 많은 사람들 여기로 가보는건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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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으음;;; 어쨌든 처음부터 여기까지 정주행 성공;;

    근데 어째 너무 슬픈 스레다ㅠㅠ

    나는 일단 고2인데 좋은부모 만나서 너무 편하게 살아와서;;

    이런거 보면 이해는 안되는데 너무 슬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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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BGM으로 릴리슈슈의 모든것 ost 중에 공명共鳴을 듣고 있는데, 4<<에서부터 바톤을 넘겨받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아 스레 하나를 채우는 모습이 마치 공명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한 살 위의 오빠가 있는 평범한 여대생입니다. 부산의 5남매 중에 홀로 상경한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탓에 친적집을 전전하며 살던 어머니가 만나서 오빠와 저를 가지셨고요.

    봉투를 붙이고 인형 눈을 붙이고 책을 제본하고 회로에 납땜을 하고……그렇게 일한 돈을 사기를 당해 다 날리고, 설상가상으로 IMF 때문에 아버지 친구들과 벌였던 작은 정비사업도 망하고……. 어릴 땐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가던 겨울, 없는 세간살이에 알콜중독에 걸리신 아버지 탓에 어머니는 제 손만 붙잡고 집을 나오셨습니다. 어른의 발에 등을 밟힌 건 숨막히게 아팠지만 그래도 어머니께 애원하고 아버지께 악을 쓰며 간신히 이혼은 막았습니다.

    집안이 엉망이 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였네요. 어머니께 버림받았다는 충격 탓에 오빠는 엇나가고, 절 때리고……몸에 피멍들고 자꾸 토해서 보건소만 몇 번을 갔는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집에 돈이 없으니 뼈가 부러지지 않는 한 병원은 못 갔습니다. 그럴 때 아버지는 사이비종교에 빠져서 우리집이 이렇게 된 건 전부 자기가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 뜻이라며 거기에 목을 매시더군요. 어머니가 산 송장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나만 이 집에 돌아오고 어머니는 외가로 가시게 했어야 한다고 하루에도 몇번씩 후회하며 울었습니다.

    중학생이 무너지는 집을 추스릴 방법은 사실 없었습니다. 목숨걸고 공부했지요. 교과서 말고 참고서라는 게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헌책방 가서 참고서 한 권 사는 그 천 얼마는 두 끼 밥값이었으니까요. 선생님들께 엄청 도움을 받았습니다. 교사용 참고서에 급식비 지원, 그리고 백일장에서 타오는 문화상품권 몇 만원. 우여곡절끝에 고등학교 입학식 때, 장학금 증서를 받았을 땐 혼자 한참동안 울었습니다. 하지만 여유가 주어지는 건 잠시뿐이더군요. 고등학교의 생활패턴 탓에 몸은 있는대로 망가지고, 성적도 떨어져 장학금도 못 받고, 아버지의 수입이 늘었던 탓에(집이 아니라 교회로 가는 돈이었지만) 급식비지원도 못 받았습니다. 어머니께는 지원을 받았다고 거짓말하고, 점심은 굶고 야자는 빠지고 집에 돌아오는 그런 생활의 계속이었습니다.

    고2때는, 생일이 빠른 오빠가 대학을 가야 해서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데, 그 이자만으로도 가세가 기울더군요. 그렇게 기껏 간 대학에서 애인을 임신시키고 낙태시킨 탓에 평판이 나빠졌다며 자퇴를 하고 저와 같이 수능을 쳤습니다. 술에 취해 절 건드리려고 한 적도 있었지요.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자기는 기억이 안 난다며 발뺌했지만요.

    고3때 무단결석만 서른번을 했습니다. 정신과에 다닌다고 해도 항우울제를 먹으면 겉으로는 멀쩡해보이기 때문에, 출석일수를 깎이지 않으려면 진단서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결국 담임선생님께 진단서를 내밀고, 집안일을 털어놓고,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한 마디를 하며 울었습니다. 죽고싶다고.

    너같은 애가 죽는 건 아깝다고 말씀해주신 그분께 논술을 배워서, 우여곡절끝에 수도권의 사범대에 붙었습니다. 1학년 1학기에 과 수석도 해봤지요. 씀씀이 작은 학교는 3분지 2밖에 장학금을 안줬습니다만은.

    그런데, 딱히 변하는 건 없더군요. 그쪽교회사람은 구원을 못받네 어쩌네하며 어머니를 욕하고, 오빠는 담배 피우는 년은 싫다며 제 턱을 걷어차 그 다음날 부터 있던 시험을 줄줄이 망치게 만들고, 아버지는 집에서 내내 성경만 들여다보고 계시지ㅋㅋㅋㅋ해피엔딩같은 건 정말로 드라마에나 있는 거예요.



    며칠 전, 결국 학교 앞에 원룸을 구했습니다. 지금도 이삿짐 싸는 중입니다. 원래는 혼자 살려다, 도저히 집에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어서 같이 나가게 됐습니다. 생활비가 문제였는데, 절 좋게 봐주시는 교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연구팀에서 일을 도울 수 있게 해주시더군요. 아버지도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은 대주시겠다고 하셨구요.

    사실 여전히 괴롭습니다. 가족과의 연을 끊는 것도,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것도, 몇 년 뒤에 임용을 봐야 한다는 것도. 만일, 제 인생이 드라마라면, '평범한 사람 1'이라는 배역을 받고 싶습니다. 아마, 그 정도만 되더라도 행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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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카페인 - 2010/01/17 08:23
    오르막길이면 올라가기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ㅋㅋㅋㅋㅋ

    힘들면 우울해질 수 있어요. 그래도 그 뒤에 힘껏 털고 일어나서 웃을 수 있다면 참 멋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ㅋㅋㅋㅋ같이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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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死門 - 2010/01/17 15:20
    저도 발목 인대가 몇 번 나갔는데, 조심해서 걸어다니는 정도는 괜찮더라고요. 뜀박질은 얄짤없이 못하지만... 무릎은 조금 사정이 다를지 모르지만, 병원에서 처치만 잘 받으면 그렇게까지 희망은 없는 건 아니에요. 너무 낙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없긴 왜 없어요, 여기 있잖아요ㅋㅋㅋㅋ괜찮아요, 분명 잘 될거예요. 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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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 - 2010/01/17 03:11
    지금은 조금 지쳐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해왔으니까 그만큼 맥이 풀려버린거죠. 그러니까 자책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아버지가 그리우시다면 다시 한 번 열심히 해봐요. 충분히 할 수 있는 분이시잖아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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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 으음. 늦은 감이 있지만 저의 조그마한 일이라도 적어볼까 합니다...





    저는 초6까지는 정말로, 아무리 생각해도 별 탈없는 평범한 인생이었습니다.

    제 기억력이 나빠서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사건이 터진 것은 초등학교 졸업을 3~4주 앞둬 놓고 입니다.

    그때당시 저의 가족은 조부모까지 계신 대가족이었습니다.

    그날은 무슨 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들께서 술을 드셨지요.

    그때 저는 방에서 시끄러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할아버지의 괴성이 들리더군요.

    그리고 무언가 깨지고, 제 동생(여)이 소리지르는 것이 들렸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런 것인지, 겁을 먹은 것인지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계속 방안에서 떨며 무슨 사태인지 소리만으로 알아들어야 했습니다.

    잠시후 아파트 경비원 두분까지 집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렇게 소란은 사그라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괜찮다고, 아무일도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절대 괜찮지 않다는 것은 몸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희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심하게 다투었던 것입니다.

    이후 저희 가족은 서먹서먹해지고, 저는 가족이 서먹서먹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몇일이 지났습니다.

    그 몇일이 지나고 나서야 저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저를 웃는 얼굴로 대해주시던 할아버지의 눈빛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눈빛은 아마 평생이 가도 잊혀지지 않을 듯 싶습니다.

    할아버지는 저를 쳐다볼때, 손자를 쳐다보는 얼굴이 아닌, 인생의 원수를 쳐다보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는 저의 인사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몇일 뒤. 사건이 일어나고 정확히 1주일 뒤.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저와 동생을 보고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집을 사느라 제대로 저축된 통장하나 없이 옷과 몇가지만 가지고 나와 근처에 사는 이모네 집에서 눌러앉아 살았습니다.

    졸업을 하기 전까지 아침에 동생을 데리고 버스를 타며 등교할 때, 언제 할아버지가 원수를 보는 눈빛을 하며 나타날 지 몰랐기에 항상 겁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고 저희는 전세를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1.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저의 정신이 뭐가 어떻게 되었는진 몰라도,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두려움에서 분노로 바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중2. 저의 감정은 분노로 심하게 휩싸여 있었습니다.

    저의 친구들에게 인간으로 하지 못할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절대 그 인간의 장례에는 고개를 내밀지 않겠다고. 만약 간다면 그건 그 인간 때문이 아니라 가족의 체면을 위해서라고.

    그렇게 망발을 해대며 중3.

    여름방학 쯤에 할아버지께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저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병원에 같이 가자는 가족의 부탁을 침묵으로 거절했습니다.

    저의 예상대로 할아버지는 회복을 했고(저는 나중에 들었습니다.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났지요.



    그리고 중학교 졸업을 앞둔 상태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다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때조차도 저는 분노때문에 가족의 부탁을 두번씩이나 뿌리쳤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간곡한 부탁에 3번째로 가게 되었지요.



    그곳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앞으로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TV에서만 보던 수많은 전극. 저는 이때 저의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때조차도 아마 저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온갖 욕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때 할아버지께서 고통스러워 하시면서도 저에게 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고통때문에 목소리조차 나오시지 않아도 단한마디. 입모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미안"



    지금도 확실하지 않지만 할아버지께서는 그 말씀을 마지막으로, 제가 병원을 간 다음날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돌아가셨다는 소식에도 아주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어차피 나와는 인연이 끊긴 사람이라고.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어째선지 마음한쪽이 답답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도 언제나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몸에 염을 할 때.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뵈었습니다.

    마음속 한구석 응어리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그래도 울진 않았습니다. 목놓아 울고 싶어도 3년간 메마른 눈물은 끝까지 나오지 않더군요.



    장례가 끝나고 가족은 할아버지가 찍힌 생전의 사진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볼 수 없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버리고 할아버지인 걸 알면서도 욕을 서슴치 않은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도저히, 도저히 사진을 올려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 눈, 해맑게 웃고 계신 그 눈. 그눈을 보기에는 너무나도 지은 죄가 크기에.

    저는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6개월을 보냈습니다.

    부모님께 저의 감정을 말씀 드렸을 때.

    그제야 장례식장에서 나와야 했던 눈물이 나오더군요.

    울었습니다. 마음껏 울었습니다.

    메말랐다고, 그렇게 자부했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날 부모님은 저를 위로해 주셨고, 그것으로 끝나셨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십니다.



    저는 제가 적은 이 모든 것을 잊을 생각이 없습니다.

    죄인이기에. 너무나도 큰 것을 잃었기에.

    잘못된, 너무나도 잘못된 3년을 산 죄책감은 절대로 저를 놔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놓지 않겠지요. 앞으로도 이 감정만은 지울 수 없는, 저의 인생의 한 부분이 되겠지요.





    죄송합니다. 감정에 휩쓸려 길게 쓰고 말았네요.

    이렇게 긴글을 읽어주신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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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성큰콜로니 - 2010/01/17 22:44
    ... 저와 같은 고2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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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읽어보니 정말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신 분이 많이 있네요..

    전 정말 평범하게 초등학교를 나와서

    정말 평범하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뭐 1학년때 왕따 비슷한 경험이나 2학년때 빵셔틀 비슷한거 한 경험이 있긴 하네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그냥저냥 살다가,

    재수해서 대학 와서 이제 본과 1학년 올라가는 별 굴곡도 없고 그렇다고 재미 없는것도 아니고 그냥저냥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쓰고보니 정말로 평범한 인생이네요

    30대 부터는 평범하지 않은 삶도 살아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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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thanatos - 2010/01/17 23:33
    평범하진 않다고 해도, 절대 부정적으로 특별한 삶을 사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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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thanatos - 2010/01/17 23:33
    평범한게 제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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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325 글보고 진짜 울었습니다ㅠㅠㅠ

    다른 분들도 힘든 사연이 많으시네요;

    스레 제목과 다르게 내용은 너무 슬픈 스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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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한가해서 나온단게 이런이야기일 줄이야 좋은 의미로 배신 당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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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좋은 스레...참으로 많은걸 생각하게 해주는..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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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 음..정말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는 스레군요.나도 앞으로는 착실하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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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뭐랄까,

    전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만해도 평범하게 살았던것 같아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런데 3학년때인가 하여간에 아버지가 사업을 벌이셨습니다.

    큰 식당을 차리셨는데, 여기서 성공하면 말이 안되겠지요.

    쫄딱 망해가지고는, 저는 그때 잘 몰랐지만 그때 진 빚이 5억이였던가..그랬다더라고요 최근에 알았지만. 외삼촌을 보증인으로 세웠던 탓에 외가하고도 사이가 서먹해지고 어머니와는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저하고 동생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싸우셨었어요. 아직도 기억나네요. 말싸움만이 아니라 쾅 하는 소리가 났던걸 봐선 몸싸움도 했던것 같은데..가물가물.

    전 굉장히 성격이 민감한데다 소심하고 조용조용하게 생겼다..랄까 하여간에 누군가 말하길 입만 다물면 모범생같이 보인다, 라더군요. 그냥 쉽게말에 논다는 애들이 건드리기 딱 좋게 생겼다 이거죠. 초등학교 6년중 3년을 왕따당했을거에요. 어떻게 버텼는지도 모르겠어요. 남자애 여자애 할것없이 여튼 좋게 못살았네요.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끝날줄 알았지만 초등학교 3년치를 중1때 전부 당한것 같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좀 지방인데다 매점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빵셔틀이라던가 삥을 뜯긴다던가 일진 집단폭행..뭐 이런건 없었지만 왜 여자애들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 거이 성추행 미수에 가까울 정도의 것도 있었고...2학기때 몇 없던 제 친구까지 울게 만들고 이러다 너무 싫어서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그냥 울었습니다. 누가 있든 없든 정말 서럽게 울었어요. 결국 부모님 소환도 되고 어찌저찌 된것 같지만..1학기를 어떻게 버틴것도 동아리에서 좋은 친구를 못만났으면 그냥 죽었을거에요.

    2학년땐 큰 일은 없었지만...가정사정이 많이 기울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결혼한것도 중매쟁이가 거진 반 사기쳤던것이였고 어머니도 애초에 집안일만 하기로 생각하고 결혼을 했다는데, 가게가 망하면서 빚이 늘자 어머니도 결국 일을 나가셨습니다. 하지만 아줌마 혼자 벌어야 얼마나 벌겠나요. 아버지로부터 생활비 한푼도 없이 혼자서 벌고 하지만 지출에 비해 수입이 못버티니 카드로 긁고...그렇게 되다보니 카드빚만 늘어나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랄까 그런건 더 늘어만가고..그런게 극대화됐던게 제가 중2때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1~2학년을 거치며 사춘기가 심해진지라 성적때문에 부모님과 많이 싸우고 중학교에 적응을 도무지 못해서 지각도 많이하고..그렇게 또 싸우고...거기다 제가 쓰는 용돈의 지출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습니다. 부산 코믹월드라던가..그런데 자주 다니게 되면서 오덕생활[..]에 거이 미친듯 심취했었거든요. 제가 비정한 성격이 못되는지라 부모님한테 독한말 하고 후회하고 또 그러고..알면서도 그런말을 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싫었습니다. 정말 죽고싶다 이런 생각이 깊어진것도 이때였던것 같네요. 겉보기엔 멀쩡한데 2학년 말때 성격 진단이랄까..담임선생님이 그것을 결과를 보고 결국 부모님과 상담을 하셨는데..바뀐건 없었어요. 성격 진단에서 사교성 뭐 이런부분 전부다 D~F를 맴돌았던게...누가 봐도 놀랬을거에요.

    3학년이 되면서 사춘기가 지나고, 친구는 친구대로 사귈수 있었고 왕따문제는 나름대로 해결도 되고(여전히 좀 그런 애들은 있었지만 본성이 그런것들이니 때려서 고치지 않는한은 어쩔수 없죠) 성격적으로는 편해졌지만...고등학교 진학이 문제가 되니 성적과 집안 문제가 또 계속 터졌었습니다. 친구가 늘어나니 제가 쓰는 지출이 늘어나고,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학원도 다니고..아버지도 직장을 찾긴 하셨지만(솔직히 아버지가 이때까지 뭘 어떻게 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글 쓰면서 이 사이의 기억이 텅 비어있던걸 깨달았네요) 수입이 들쭉날쭉했고 어머니는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셨습니다. 하지만 제쪽에서의 지출이 장난아니게된지라 용돈 + 학원비 등등...학원비는 밀리고 용돈은 그거대로 못받고...코믹월드라던가는 거이 안다녔지만 오덕짓 하는건 똑같아서는 지출은 그대로였지만 수입은 못따라오는데 저는 왜 나는 취미생활 하나도 제대로 못즐기는거냐 싶게 너무 화가나서 컴퓨터만 붙잡고있고...성적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중간이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좋은 친구도 만나고 굉장히 안정됐지만, 또 돈이 문제더라고요. 그냥 버는거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빚때문에 그쪽으로 지출이 계속 나가기 때문에 결국 기록상으로는 수입만 기록되니 운영지원비, 급식비, 보충수업비 전부 밀려댔습니다. 선생님은 계속 독촉하시지만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고 담임선생님이 굉장히 보수적인 분이여서..저희집의 상황을 좀 이해 못하시는것 같았거든요. 남들과 제가 더더욱 비교됐습니다. 왜 얘는 이런데 난 못하는거야 왜 안되는거야. 친구들과는 허물없이 지낸다..고도 할수 있지만, 같이 노는 친구들이 전부 공부로는 거이 탑클래스고, 공부를 못해도 그 나름대로의 특기가 있는 애고...저는 아무것도 없는, 너무 특징없는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술을 하려고 생떼를 한번 써봤습니다. 역시 안되더군요. 그놈의 돈이 또 문제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오면서 지출은 곱빼기로 늘고 제가 필요로하는 용돈도 더더욱 늘었습니다. 하지만 수입이 늘어난것도 아니고 빚이 줄어든것도 아니였습니다. 전 점점 더 계산적이 되어버렸습니다. 밥을 먹어도 돈을 씹는것 같고, 생활비와 제 용돈을 분리해갔습니다. 하지만 제 계산대로 현실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전 모든게 점점 더 싫어졌습니다. 친구에게 생일 선물도 제때 못줄만한 제 금전상황이 너무 싫고 그렇게 만든 부모님이 너무 미웠습니다. 왜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면서 낳은줄도 모르겠습니다. 이딴식으로 살거면 속아서 결혼했으면 이혼을 할 것이지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상가상..이랄까 제 동생과 사이가 안좋습니다. 동생이라고 말하기도 싫습니다. 저건 이미 집에서 서식하는 거대한 쥐, 바퀴벌레로밖에 안보입니다. 너무너무 싫습니다. 정말, 지금 모든게 너무너무 싫어요. 저딴 동생과는 대화도 불가능합니다. 이미 생각하는 구조 자체가 다른데 '대화로 해결해보세요' 그런 소리가 너무너무 싫습니다. 몇년간 작게작게 쌓여온 앙금이 확 터져서 미치겠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게 서로를 증오합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싫고 나라라는건 이미 돈 빠는 기계로만 보입니다. 아버지가 정치에 좀 손을 대시고 있는덕에(톡 까놓고 말해 노무현&유시민 지지..그런걸 좌파라 하던가요) 생각 구조가 약간 다릅니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됩니다.

    제 성적은 정말 잘하는거 못하는거 좋아하는거 싫어하는거 티가 확 나는 성적이라...국어, 국사같은건 1~2등급 나오는데 영어, 수학 이런게 4~5등급 바닥을 치는지라...공부가 안될수록, 오히려 환경을 탓하게 되더군요. 아무리 공부 못하는놈이 환경탓부터 한다지만 집안 빚은 거이 청산했다고 말은 하지만 이제 어린애도 아닌데, 2년만 있으면 성인인데 집안 사정에 대해 알건 다 압니다. 빚은 남아있고 부모님 사이도 좋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제가 있는 공간은 제 방에서 문 잠궈놓고 있을때가 가장 좋습니다.

    글이 두서없지만....전 이제 모든게 돈으로 보이고, 인간이 싫고 모든게 싫습니다. 만화&애니&게임에 빠진것도 그런 덕분일까요. 그리고 성적은 딱 중간입니다. 좋아하는건 1~2등급 나오지만 단적으로 싫어하는 수학같은건 7등급도 나와봤습니다..좋은 대학갈 성적은 못되먹죠. 어떻게 해야될까요 전...이제 금전적으로 행복해지지 못한다면, 제 인생에 행복이란건 없을것 같습니다. 용돈을 어떻게든 받아서 악착같이 모으면, 어이없게도 밀린 휴대폰요금 같은걸 결국 제 용돈으로 내버리게 됩니다. 3,4만원도 아니고 15만원이였습니다. 생리대, 속옷 이런것도 결국 용돈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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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 종교라도 믿고싶지만, 여러모로 신은 믿음직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되서..지금 당장 꿈에서 나타나 로또 번호라도 가르쳐주지 않으면 평생 종교 믿을일은 없을것 같네요. 이제 삶의 버팀목은 만화네요.



    살면서 제 말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좀 더 달라졌을텐데..살면서 친구도 부모님도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질 않았어요. 컴퓨터로 계속해서 적는것밖에..끊기지 않고 말하는 방법이 없었어요.

    누군가와 상담이든 뭐든, 제가 목소리가 작은편이라지만. 진심으로 끝까지 계속 진지하게 누군가가 좀 들어줬으면 훨씬 편했을텐데. 저도 제 진심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건 힘들겠지만...여러모로 혼란스러워서...

    그래도 이런 스레(?)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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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채소 - 2010/01/17 22:49
    교수님께 사정을 말한 것 만으로 일을 받다니, 저같은 사람은 생각도 못할 일이네요ㅠㅠㅠㅠ부럽습니다.

    열심히 해오신 만큼, 이제는 충분히 행복해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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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 @thanatos - 2010/01/17 23:33
    자기 인생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멋진 걸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원하신다면 평범하지 않은 일을 질러보는 것도 좋아요, 오히려 30대가 되기 전에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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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 좋은 글이네요.

    살아온 인생을 다시금 생각하게 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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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 하아...... 잘 살아볼까나... 좀더 힘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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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배C - 2010/01/17 21:46
    힘내세요~

    또 고등학교때에 좋은 친구만나서 즐겁게 학교생활 했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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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아카리나 - 2010/01/17 22:10
    여자이겠지요..마치 예술 고등학교?? 이런 거의 여자밖에없는 곳에서 남자들이 몇명있거나 그런식으로

    공업고등학교라고해서 남고는 아니자나요. 그러니까 여자분들이 거의없으니까 여자들 특유의 무언가?가 없는걸 말하는 것같네요. 편지는 이지메인가.. 남자가 여자에게 편지쓰는건 당연한거아닌가 하는생각이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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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채소 - 2010/01/17 22:49
    힘내세요.. 마지막말이 와닸네요.

    저도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는 되고싶은게뭐야?

    라고하면 평범한 가족에서 태어나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고 평범하게 대학을 가서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다..라는게 제 꿈이였지요..

    대학교 와서도 열심히 힘내게 계시네요!

    사랑합니다 ~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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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 @리모콘 - 2010/01/18 02:20
    우선...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말고 힘내세요..라고 말하고 싶네요.

    저도 학교다닐때에 정말로 돈이없어서 힘들었고 지금도 돈이없어서 허덕거리고 있는대학생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핸드폰 하나없이 생활했고(지금 핸드폰이 있지만 제통장에서 요금이 나가고 있지요.) 옷살 돈도없어서 거의 교복생활했었고 지금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과외하고 학원한번 다녀보지 못한 그런 보잘것 없는 사람입니다만... 언제나 주위에 보면 돈많아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죠. 정말 고등학교때에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하고 방황하게 할 수 도 있지만 너무 자신을 비하하지 말아요.. 재활용도 불가능한 쓰레기라니요 ㅠㅠ 그럼전 길가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담배 꽁초보다 못한인생일 수도 있어요. 저는 힘들때에 친구에게 위로를 받았어요. 아... 실제로도 말잘못하고 글도 잘 못써서 이상하게 보이지만..

    아이런 .. 저도 생각이 짧아서 무슨 말을 해야 조심스럽네요.. 단지 누구군가가 당신을"사랑합니다. 힘내세요!" 라고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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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안그래도 스레를 읽으면서 쓰고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먼저 길을 터주신 분들이 있기에 저도 한번 남겨봅니다.

    제 인생 최초의 기억은 세 들어 살던 집, 어느날 저녁. 그곳에서 일어난 부부싸움이었습니다. 머릿속에 크게 남을법도 했죠. 그 부부싸움에서 싱크대가 우그러졌으니까 말입니다.

    유치원도 그럭저럭 잘 보냈고, 초등학교도 1년 일찍 들어갔지만-친했던 친구가 1살 많아서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길래 저도 덩달아서 들어갔습니다-. 그때의 저는 어느 애와 다를 것 없이 밖에서 잘 뛰어노는 애였습니다. 단지 책을 너무 읽어서 안경을 쓰며 남들보다 더 빨리 머릿속이 차있었다는 것을 빼고는 말입니다.

    어느때 부터였을까요. 아버지는 일도 나가시지 않고 하루종일 집안에 드러누워서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셨고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사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도 썩 좋은것은 아니었습니다. 요리사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회삿일 하시던 어머니를 보고 반해서, 결국 반 납치나 다름없는 상태로 결혼. 그때 어머니의 뱃속에는 제 형이 자리잡았다더군요. 그래도. 그래도 거기까지면 좋으련만, 이 아버지란 작자(말이 심하다 해도 할말이없습니다. 저는 이 사람을 아버지로 봐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는 일도 재대로 안하고 매일 이 일 저 일 시도하다가 결국 IMF때 짤려버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놀라움을 느낍니다. 악착같이 일해서 결국 세들어 살던 집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새로운 학교. 네. 잘 지냈습니다. 한동안은 말입니다.

    어른이 무서운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때로는 애들이 어른보다 더 무서울때가 있습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악착같이 괴롭히니까요.

    코를 파다 걸렸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죠. 생각해 보면 정말 완벽한 조합이었습니다. 전학온지 얼마 안돼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책 읽어 허구한날 모를 소리만 지껄이는데다가+사교럭도 없다. 어라, 근데 이런 일이 생겼네? 놀려먹어야지.

    ...여기서 부터 어긋났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학교대로 팍팍하지. 집에 오면 아버지란 작자는 놀기만 하고 도박에다 부부싸움. 심지어는 인터넷 채팅으로 바람까지(제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게다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보내준 학원에서도 애들은 구박하지. 진짜 하루는 애들이 워낙 심하게 굴길래 가방 싸들고 학원을 나가버린 적도 있습니다. 물론 학원 선생이 목격해서 다시 자리로 돌아갈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몇년을 버텼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였을겁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티비에서는 그때 한참 인기를 끌던 드라마가 틀어져있었고. 안방에서는 한참동안 시끌벅적하더니 아버지가 짐을 싸고 나가려고 하시더군요. 그때 저는 처음으로 가장 용기있는 행동을 했습니다. 집을 나가시려던 아버지를 온 몸으로 가로막았습니다. 그러자 그 작자는 저를 걷어차버리더군요. 구석지로 밀려나가 온 몸이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어머니의 만류에 저는 방안으로 들어가서 머릿속에 들어가지도 않는 책을 펼쳤습니다. 한참후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네. 그 빌어먹을 작자는 결국 집을 나갔고, 얼마뒤 어머니와 이혼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게 더 좋았지요. 적어도 집에서는 평안해질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별로 나아진건 없더군요. 여전히 학교와 학원에서는 소문난 병신이었으니까.

    그리고 1년뒤. 또 한번 제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어머니의 재혼.

    새아버지(지금은 이분을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고마우신 분이죠.)는 좋은 분이셨습니다. 이제까지의 형이 아닌, 앞으로 큰형이 될 사람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쪽 가정의 막내. 그러니까 앞으로의 둘째 형이 될 사람.

    정말로 그때 당시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놈이었습니다.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지금 물어볼 생각도 없지만. 아마도 화풀이 상대가 필요했나봅니다. 레슬링을 한다면서 허구한날 침대위를 들썩였습니다. 오죽하면 침대 매트릭스 스프링이 나가버렸을까. 말을 안들으면 때렸습니다. 그때(당시 초6~중1) 저는 참 가관이었습니다. 구레나룻 쪽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고, 정신과 의사랑 상담도 받았으니까요. 결국 저는 그 둘째 형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시키면 싵키는 대로 하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 편이 훨씬 편했으니까요. 그나마 거기서 끝났더라면 버틸수는 있었을 텐데. 중학교 1학년. 저는 다시 왕따가 되었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때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잔인하고...더 끔찍한.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저를 버티게 해줄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교실 독서대에서 우연히 발견한 퇴마록 세계편 2권. 그리고 도서관에서 발견한 퇴마록과 치우천황기는 제가 처음으로 알게된 판타지라는 미지의 세계이자 저를 버틸수 있게 해주는 힘이었습니다. 뭐, 하지만 결국 판타지라는 장르를 혐오하시던 담임이 (왕따 해결은 해주지도 않았으면서 간섭만 잔뜩. 하하하.) 대출 금지를 내려서 몰래 몰래 봐야 했지요.

    어머니는 참 괴로워 하셨던것 같습니다. 사실 재혼을 하시면서 이 기회를 통해 저와 형이 잘됬으면 하는 마음도 있으셨겠지요. 그런데 이 꼴이 나버렸으니...

    결국 어머니는 결단을 내리시게 됩니다. 저는 겨울 방학때 김해에 사시던 이모집으로 내려갔습니다. 휴양 겸 도피죠. 그리고 지금 저는 어머니의 그 결정을 19년 인생에서 제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고향이란 말이 있죠. 김해에서 두 달동안 행복하게 전원 생활을 보낸 저는 그곳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겨울 방학이 끝나는 것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정말 기적같은 일이 생기더군요. 어머니가 아예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는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셨을때. 정말 기뻤습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왠지 제가 집으로 돌아오면 그 다음 일을 견디기 힘들어서 그러신것 같지만...그래도 그 결정 자체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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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 그것이...모든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을 낮선 곳에서 시작한지 며칠 뒤, 저는 놀랍게도 여자들 자리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그때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남자들과 여자들을 분단별로 구분해서 앉다보니 가운데의 여자 분단 가운데 한자리가 비었고, 앉을 사람을 물어보았을 때 제가 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여자들이 바글바글한 자리의 정중앙에 앉게 되었고, 더욱이 먼 곳에서 온 전학생이라는 요소 덕분에 궁금도는 무지막지하게 상승. 그 결과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이런 질문 저런 질문에 정신없이 대답해줘야 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저의 첫사랑의 시작은. 내 앞자리에 앉아있던 애가 내가 쓰고있던 안경을 바라보더니 한 마디 하기를.

    “애, 너 안경 더러워졌어.”

    그러면서 자신의 앞 주머니에서 안경닦이를 꺼내더니 제 안경을 벗겨 쓱쓱 닦아주는 것이 아닌가. 의외의 상황에 놀라 나는 나에게 이렇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애가 누굴까, 하는 생각에 그녀에게 저절로 시선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맙소사. 내 앞에는 천사가 있었습니다. 강산이 절반쯤 변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그때의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이마가 보이도록 깔끔하게 빗어넘긴 긴 생머리. 타원형의 안경. 새하얀 피부. 어딘가에서 도도함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얼굴. 저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저의 첫사랑이 그렇게 시작되었으니까. 그녀의 뒷자리에서 그녀를 바라볼때, 저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순간에 젖어들었다고 단 한치의 의심도 없다고 말할수 있을 정도로 저는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서는 정말 행복하다 말할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의 일상생활은 도망쳐온 그곳과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아니, 더 심해졌습니다. 적어도 그 곳에서는 다른 지방 사람이라고 해서 은밀한 무시와 편견을 받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저의 일상이 피폐해질수록 그녀에 대한 마음은 커져갔고, 그곳에 나는 현실의 막막함을 기댔습니다. 그리고 덩달아서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게 된것을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덕후의 첫 걸음도 걷게 되었고요. 물론 매일 밤 이불 속에서 고백을 했을 뿐, 실제로 고백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채로. 그리고 4월이 지나 5월이 됐을 때, 저에게는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습다.

    그 원인은 저와 같은 반의 반장. 역시 안경을 쓰고 묶은 머리에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훤칠한 키. 그동안 그저 같은 반의 아는 애에 불과했던 그녀는 어느 날부턴가 저를... 때때로 껴안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저는 참 바보입니다. 그저 이 모습이 좋아하는 그녀에게 보일까 당황했을 뿐, 그 행동이 어떤 의미를 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어쩌면 반 애들도 알았을지 모르는데. 그걸 모른 저는 정말 정말 바보라고 말할 수 밖에 도리가 없잖습니까. 그래요. 어쩌면 저의 착각일수도 있습니다. 그저 제가 불쌍해보여서 그런 걸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추측을 사실로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중간고사를 일주일 정도 앞둔 날 일어났습니다.

    그 날 영어시간, 본문을 달달 외우고 있던 저에게 날아온 조그마한 쪽지 한 장. 이 학교에 입학한 뒤로 이런 일은 처음이라 의아한 상태로 쪽지를 펼쳐보니 그 안에 쓰여진 글은 놀랍게도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나 사실... 너 좋아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대답해줘.]

    이쯤 되면 누구든지 ‘지금 소설 쓰냐?’ 라고 따질지도 모르겠습다. 하지만 어떻하겠습니까. 정말 사실인걸. 하긴. 지금 돌이켜봐도 참 일어나기 힘든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그 쪽지를 읽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종 잡을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난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고 거절하기는 힘든, 연애의 역사상 가장 뻔하면서도 가장 힘든 상황이 반복되는 순간. 그래서 고민 고민 한 끝에 장난일지도 모르니까 일단 찾아가서 말해보자. 라고 생각해서 쉬는 시간에 찾아가서 물어보니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그거 장난이야~ 왜 그렇게 고민하고 그래? 수업시간 내내 끙끙대더니만..”

    여기서 ‘그럼 진짜 장난이었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후에도 껴안기 공습은 계속 되었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괴로웠던 순간들과 행복했던 순간들 속에서, 저는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쳐버렸습니다. 1학기에 저는 교무실 복도 청소, 내가 좋아했던 그녀는 교무실 내부 청소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같은 학원에 다니는 3학년 선배가 자꾸 교무실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한마디 물어보기를.

    “야. 저기 교무실 안 청소하는 애 있잖아. 혹시 사귀는 애 있니?”

    그렇습니다.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그 선배도 그녀를 좋아했던 것입다. 하지만 역시 저의 순진함과 바보스러움은 변함이 없었는지라, 너무나도 미련하게 그녀에게 ‘사귀는 애가 있냐’ 고 물어보았다. 그때 저와 그녀는 친구랄까. 뭐 그 정도 사이였으니까. 그녀의 ‘아니’ 라는 대답에 저는 얼마나 기뻤던지.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저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서 재대로 뒷통수를 맞게되었습다.

    ‘언젠가’ 그녀에게 반드시 고백하겠다며, 하지만 부끄러움과 나의 처지를 생각하면 도무지 고백할수 없었던 제가 ‘2학기에는 반드시!’ 라는 굳센 다짐을 하며 학교에 갔던 날... 도무지 재대로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날 저는 그녀가 그 선배와 사귀게 되었다는 걸 알았고, 고백하지 못한 나를 미친듯이 원망했다는 것. 단지 그뿐.

    그렇게 괴로운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2학기에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그녀와 친한척 대화라도 하는 것. 그리고 그녀와 선배의 관계를 가지고 장난스럽게 놀리는 일 뿐. 그것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할 수도 없었습니다.

    몇 번 바보 같은 시도도 해봤고, 그녀가 선배의 싸이월드를 보면서 친구들과 얼굴을 붉히는 걸 가만히 바라보며 인생 처음으로 사랑에 대한 질투심도 품어봤지만... 단지 그 뿐. 변한 건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재대로 된 고백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채, 그 곳으로부터 온지 딱 1년 후, 저는 마치 미연시 속 주인공처럼 그곳을 떠나 다시 집으로, 새로운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전학도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예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괴로운 생활은 계속해서 이어졌습다.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진 것이 있다면, 마음 둘 곳을, 얻게 되었다는 것. 단지 태어난 곳에 불과한 고향이 아니라, 진짜 마음의 고향을, 얻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학교 도서관에서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를 접하게 되어, 판타지 작가라는 꿈을 얻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 빌어먹을 둘째 형이 군대를 간 사이에 저는 오타쿠 로드를 본격적으로 걷게 되고, 중2때 그 곳에 다시 찾아가서 그녀에게 고백했다가 허락한줄 알고 히죽거리며 다시 찾아갔더니 완전한 거절에 맞닥드려 하늘도 울고 나도 울고. 애들의 괴롭힘은 계속 되었지만 그래도 생긴 몇 안된 친구들과 오덕질에 마음을 의지하고. 결국 지금은 수능도 마치고. 둘째 형도 지금은 성격이 많이 좋아진지라 그럭저럭 지내지만. 공모전에 떨어진 뒤로 자신의 재능이 없을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 채로. 그저 하루하루를 허무하게 보내고 있는 접니다. 그래도 위 스레의 말처럼 제 인생을 해피 엔딩으로 끝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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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 @리모콘 - 2010/01/18 02:20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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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인생에 해피엔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 엔딩이 없으니까요.



    죽어도 사람의 인생은 계속되죠.



    자기자신이 한일로.(영혼같은건 알지도 못하니 제쳐둡시다.)



    모든분이 탈없이 잘달리길 기원하겠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여러분이 잘달리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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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요시노야 - 2010/01/17 01:47
    새치기라도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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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흠..비교해보니 저의 인생은 왠지 게그물로 보이네요.

    집안도 화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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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적인 스레2010년 1월 19일 오전 7:17

    라고, 제목으로 판단했는데. 설마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좋은 스레였습니다.



    번역해주신 고릴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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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다른 사람들도 해보니 저도 한번해보렵니다, 나이는 아직 어리고 어차피 밝히지도 않을거지만, 제가 생각해도 순탄한 인생이라고는 생각못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일찍 결혼하셨고 직장도 좋고 언제나 행복했습니다 동생이 태어나도 충분한 집 넓이에 친구들을 자주 초대해서 놀았던것도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성격과 어머니의 성격은 잘 맞지 않았고 아버지 역시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잘못을 해도 서로 사과를 하지않았습니다, 동생도 태어나고 IMF가 왔기 때문인가요 부모님들은 매일매일 싸우기 시작했고 제가 5살때 결국 엄마는 집을 나갔습니다, 가끔씩 엄마가 왔는데 밤에 가지말라고 사정을 해서 울어서 엄마가 같이 잤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는 없었던게 기억이납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의 집에서 살았으며 큰 아파트에서 단칸방 월세로 이사간게 생각납니다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점점 나이를 드니 우리집 형편이 안좋고 가정상황도 안좋다고 생각하게되었고 현실을 받게되었습니다, 어느날은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와서 저와 동생을 내 쫓아냈습니다 겨울이었죠 동생과 저는 대충옷을껴입고 어쩔수없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아주머니가 저를 1일동안 맡아주시고 내일 아버지 집으로 보내줬죠. 그런 생활이 몇년지나자 저는 드디어 엄마가 사는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또다시 우리를 버렸고 저희들은 엄마와 살게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알다시피 여자 한 명이서 아이 둘을 기르는건 힘들었기에 먹고싶은건 안먹고 사고싶은건 안사고, 제가 어릴때 어머니에게 때를써서 유행하는 장난감을 샀을때 정말로 철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씩 일을 하고 오는 엄마의 손의 물살을 보니 저는 꼭 대학이 아닌 취업을해서 빨리 어머니를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어린 저에게 한숨말 쉴뿐이지요..

    잘 모르겠지만 저도 나름 잘살고있다고 생각합니다..저보다 어려운사람들도 있으니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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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 @추천 - 2010/01/17 05:20
    어디선가 쓰르라미 소리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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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 참...하나하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네요.

    저는 예전에 외국에 교환학생으로 나가서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에서 매주 상담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한 시간동안 제 살아온 이야기를 떠벌리는 카운셀링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고 사람이 자유로워지더군요.

    여기 자기 인생의 편린을 남기신 분들도

    조금 홀가운 마음으로, 웃을 수 있길 바랍니다...



    길고 멋진 글을 번역해 주신 어설트레인 님,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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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 이런스레는참좋네요

    학교 신학기에 자기의인생에대해 쓰시오가잇는데

    이런 스레는 절때쓸수가없죠

    저는 어렷을때의 부모님의이혼때문인지

    어렷을때의기억이 포맷된듯이 거의기억이안납니다

    사진을봐도 내가저랫던가라고생각할정도로

    보통사람보다 어렷을때의기억이없어지요

    (라고해도 아직고등학생이지만요)

    어렷을때 기억이잘안나서그런지 저는 제가저지른사건에대해서도

    남일처럼 제감정이 전혀기억나지않는거같네요

    저의경우에는 초등학교때 아마 초4쯤에

    초등학교 창문을 부수는둥 난동을 피운적이잇습니다

    그리고 성적은 완전최하위 방학때도 보충수업을 나가야하는

    완전 문제아 하지만 사람은급격히변하는것같습니다

    막장성적은 중학교까지 이어졋습니다

    친구는 그럭저럭 4~5명이서 그룹을 이루고잇고

    평범하게지내던날에 미술시간에 선생님의호출로

    교무실에가보니 아버지가 위독하다고들엇습니다

    그때저는 아무런실감도 나질않앗지만 결국돌아가셧고

    저는장례식장에서 친인척들과 지인들이 오고가면서

    저에게 위로를해줫지만

    솔직히말하면 저는 하나도안슬프고 슬픈척연기하는사람이됫습니다

    슬프냐고요? 안슬픕니다 어렷을때의기억은 하나도없고

    아버지하고의 추억도 없는거같습니다

    저는 위에글들을보면서 제일이해안되는게 그것입니다

    추억이없고 접촉이별로없는 핏줄은 그것이 설령 부모님이라할지라도

    타인처럼 느껴진다는점입니다

    저는 이걸 이제 아이를가지는사람들이 꼭알아줫으면하네요

    아무런 추억이없이 산사람은 핏줄의정같은거는 전혀느낄수없다는것을

    부디 저같이 하루가멀게 세상을원망하고 증오하고 현실에서 눈돌리고싶은 사람은 만들지마세요 최소한의 다시일어설수잇을만한 추억하나는 잇어야지 힘든세상을 살아갈수잇다고생각하네요

    어디서 본내용이지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사람은

    빨리어른(정신적)이된다고하던데 저는그말이 맞다고생각합니다

    어른이 되고싶어서되는게아니라 어른이 될수밖에없는 이현실

    그리고 이현실에대한 증오

    이번 겨울방학동안에라도 잊지못할 추억을하나만들어보세요

    아마 인생에서 도움이될꺼라고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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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이왕 댓글 다는 거 2ch 어비스니까.

    스레에서 하는 것처럼 >>1, >>2 이렇게 하는 것도 재밌지 않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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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 >>144



    아무도 안 할 걸요?



    ...랄까. 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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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144는 이거 댓글 다 센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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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 오! 단 1분 정도에 댓글 4개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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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면 댓글이 본문보다 길어질지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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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 @死門 - 2010/01/17 15:20
    기운내세요'ㅇ'...

    미래를 위해서라면 힘들어서라도 한국에 오셔요

    아무리 좋은 곳을 나온다고 해도

    말레이시아라면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비행기 값 버는 것도 버거울 정도인걸요

    말레이시아에서 INTERNATIONAL SCHOOL을 다니셨으면

    영어도 어느정도 갈고 닦으시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에요

    그리고 유학후 돌아온 학생들에게 은따현상은 흔히 있을 수 있습니다

    열심히 여기저기 기웃대며 부지런히 친구들자리에 참석하세요

    조만간 은따당하는 일은 사라질거에요^ㅇ^

    저도 말레이시아에서 1년반 정도 살았기에

    반가워서 덧글 달아봅니다 ㅎㅎㅎ

    래봤자 기억나는 말레이단어는 SAYA, SATU,DUA 정도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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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 역시 어떻게산다하더라도 살아가는것은 자기의몫이죠.

    그러기에 전 제가꿈꾸는잏을 하기위해 오늘도 열심히 삽니다.

    가끔 나태해 질때도 있지만 목표하는일만큼은 잊지않습니다.

    삼은 한번뿐이니 행복해지고싶어요.

    행복해지고싶은것이 제 마음입니다.

    그리고 내주위의 모든사람들또한 행복하게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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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 다들...힘냈으면 좋겠어요. 힘내시라!

    블로그로 퍼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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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2010년 1월 27일 오전 2:58

    @... - 2010/01/17 03:11
    미안하다 하시겠죠. 굉장히 중요한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기억 하세요. 아버님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은 살아계시고요.





    아버님을 잊으란 게 아니에요. 그건 막돼처먹… 아니 욕하면 안 되지… 흠. 그러니까, '아버지=슬픔' 공식을 만들지 마세요. 그럼 정말 곤란해요. 머릿속으로 세 글자만 외웠는데 두 눈가에 짠물이 질질 흐르면 단지 한심 할 뿐이죠. 조금만 머리를 굴려서 꼬꼬마 친구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각오가 덜 됐으니 단물이나 마셔야죠. 공부 잘 했다고 칭찬 받으신 적 있으시죠? 아니 뭐, 제가 자세한 건 알 리가 없으니 좋은 기억만 떠올리세요. 포기하면 편해요.





    그런데 그래도 서글프죠? 그거 안고 살아가세요. 숨 붙어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되더래요. 학창 시절은 속된 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라서 세상 모든 게 시크하게 보이는 법이에요. 거기서 한 삐끗하면, 별 수 있나요. 시ㅂ 망했어 외치면서 벽 한 번 치죠.





    무지 싫지만 이게 3D 세상이래요. 진짜 드럽다 침 한 번 탁 뱉어보고 싶은데, 그랬다간 '오예 저놈이 드디어 내 인생 깔개가 되는구나.' 하는 인정머리 없는 곳이에요. 그냥 좀 내버려둬 하고 외쳐도 듣는 사람 하나 없고, 나 죽는다 외쳐도 말릴 사람 없는 세상이죠.



    (근데 가족은 듣는다나요. 가까워서 그런지 듣기 싫다고 귀 막아도 들린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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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헤매요. 길이 꼬인 것도 아닌데. 길바닥 알콜드레싱 쫘먹는 비둘기처럼 머리에 자석이 있어서 헤맬 일 없음 좋겠는데, 안 돼요. 어쩐 일인지 이(런 분)놈이고 저(런 분)놈이고 죄다 헤매요. 왠지는 몰라도. 그걸 또 헤쳐나온 다음에야 깨닫는 걸 보면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는데… 하지 마세요. 어차피 헤매요. 그냥 받아들이세요. 그게 인생이에요.





    그렇게 살짝 헤매고 나면 다시 돌아와요. 원점 복귀.



    뭘 바라나요. 튀어나가지 않고 길 따라 쭉 가는 게 최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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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빨리 지나가요. 그리고 지나온 시간을 모두 기억할 만큼 우리 대뇌소뇌간뇌중뇌가 똑똑하지 않아서, 기억 속에서 가장 밝은(반어법인지 직유법인지) 부분만 콕 찝어내서 기억앨범 속에 박아넣어요. 그래서 가끔 기억은 과장돼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지금을 볼 수 없도록 만들죠. 아직도 앨범만 팔락이고 있는 건 아니죠? 그렇다면 정신 차리세요. 앞으로 걸어가는데 뒤를 보면 어떡해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매우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계시네요(비유가 아니에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정상적인 고2이십니다. 뭔가 하고 싶으시죠? 그대로 살고 싶진 않죠?

    넵. 당장 밖으로 나가세요. 하루 종일 틀어박혀 계시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도 당연하죠. 이 글을 읽은 오늘 하루는 키보드에서 멀어지세요. 옛날 조선의 2대 전투종족인 선비는 마음에 심화(근심)가 찾아올 때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걸음으로써 마음을 정리했다고 하는군요. 한 번 걸어보세요. 천천히 걸으면서 얽힌 생각을 정리해보세요.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하는 공부가 다는 아니에요. 다르게 생각하세요. 삶은 이미 공부거든요.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를 공부를 한다는 것이니, 아침에 깨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공부를 배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며 잠자리에 든다는 것은 하루의 공부를 마쳤다는 것이죠. 그 공부가 미진하면 다음날, 또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것이고요.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얻는 게 있을 겁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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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머슨(Ralph W. Emerson)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하루종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달려있다고.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별은 캄캄한 밤에만 볼 수 있다.' 이 말을 명심하신다면, 언젠가 길을 잃어버려도 자신이 아직도 그 길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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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 간만에 좋은글을 읽었습니다

    가끔 제가 계속 생각하는것이 떠오르긴하지만 마지막 말이 제일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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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 뭐라고 할까요?

    인생에는 그저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단지 인생의 엄숙한 의미를 음미하면 된다고 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자학의 시, 고다 요시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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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 저는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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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 원론적으로

    나는 나이다

    그 形(형)은 무엇도 아니고

    형체는 필연이며

    형태는 욕심이다

    형상은 형상이고

    그로인해 비롯됨은 삼라만상을 포함한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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