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쳐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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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날, 데이트 대행 업체를 통해 여자를 소개받았다.
필요 이상의 스킨쉽은 절대 금물, 계약 시간은 새벽녘까지.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가격 흥정은 깨끗히 포기했다.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본 다음 술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다시 자리를 바꿔 한잔 더 하며 대화를 나눴다.
너무나 즐거웠지만 어느샌가 새벽이 되버렸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약속된 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그녀를 역까지 배웅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나한테는 더 이상 시간을 연장할 돈이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돈을 낼 테니 같이 있어달라고 했다.
우리는 걸어온 길을 그대로 돌아가 근처 호텔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침대에 누운 채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이상의 접촉은 일절 없었다.
머리카락에서 담배냄새와 어딘지 아련한 느낌의 화장품 냄새가 났다.
그녀의 핸드백에는 작은 핑크색 곰인형이 붙어 있었다.
이미지와 상당히 동떨어진 물건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곰인형을 보고 부적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정말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상쾌한 기분을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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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역 앞에서 헤어지는 순간, 그녀는 무슨 생각인지
자신이 타야될 전철을 그대로 통과시켜 버리고 나한테 말했다.
[메일 주소 교환해요.]
그러면서 내 주머니에서 억지로 휴대폰을 꺼냈다.
아마도 그녀가 가진 휴대폰은 '그쪽' 일 전용.
나만 일방적으로 정보를 토해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돈으로 데이트 상대를 살 정도로 한심한 남자지만
거기에 빠질 만큼 어리숙하진 않았으니까.
이후 스펨 메일이 산만큼 날아올 걸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벌써 내 휴대폰을 조작해 주소를 알아낸 상태였다.
이 자리에서 지워달라고 말하는 것도 꼴사나웠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긴 생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그대로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그녀가 나한테 매달렸다.
그리고 엄청 환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또 한번 만나고 싶어요.]
그 달콤한 냄새.
자그마한 어깨.
아마 나는 또 그녀에게 전화를 하리라, 확신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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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있자니 계속해서 자학적인 기분이 든다.
당시를 생각하면서 쓰려고 하는데.
기억이 애매해져서 시간 순서마져 어렴풋하단 걸 깨달았다.
첫 만남을 계기로 그녀와의 미묘한 관계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어차피 쓴 김에 끝까지 써볼 생각이다.
이건 데이트 클럽의 공주님에게 매료된 한심한 남자의 이야기다.
비웃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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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날이 되어도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대로 연휴 내도록 일만 해야 된다면 사표내버리자며
동료랑 떠들었지만 서로 무리라는 걸 알기에 몇초 뒤 피식하고 웃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크리스마스때 같이 보내줘서 고마워요.
이번 3일 연휴중에 어디선가 만날 수 있을까요?]
첫번째 영업 메일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해도 빠르다. 너무 빠르다.
그녀는 참으로 고객관리에 열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솔직히 엄청 기뻤다.
돈을 벌려고 보낸 메일 이라 생각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돈다.
그때 그녀에게서 풍겼던 아련한 향기가 생각났다.
이미 그녀의 손아귀에 완전히 사로잡혔다는 걸 자각했지만
이대로 순순히 끌려가는 것도 화나기에 일부러 심술궂은 답변을 보냈다.
[오늘은 무리야. 하지만 다음날부턴 시간이 날지도 몰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유니폼 매니아거든.
그러니까 나올 때 제복이나 학교 교복 같은 걸 입고 와줘.
되도록 야한 복장으로 부탁합니다.]
보내고 나서야 후회했다.
이런 내용이라면 분명 다시는 메일을 보내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한숨을 푹쉬면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철야해야 되는데 눈이 계속 감겼다.
거기다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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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후, 휴대폰이 울었다.
회사에서 밤을 지새고 아침에야 집에 와서 하루 종일 자려고 했는데
결국 자지도 못한 채 떡국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저기, 교복 입고 가더라도 이상하게 보지마세요?
그런데 언제 볼까요? 오늘? 아니면 내일?]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 올 거라고 적혀 있었다.
자고 싶은 생각이 단번에 사라졌다.
머리속에 붉은 경고등이 마구 반짝였다.
뉴런 병사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가운데
위험 표식과 불빛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
[내일 보자. 이브때 만났던 찻집.
그런데 이브날 요금 수준으로 받는 건 아니겠지?]
답장이 바로 날아왔다.
[좋아요. 덧붙여 거기서 2만 뺄게요.]
나도 바로 답장을 보냈다.
[4만 빼줘. 싫다면 다른 사람을 찾을 거야.
너만큼 예쁜 여자는 쉽게 찾을 수 없을테지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하시네요. 으음...좋아요. 4만 뺄게요.
이건 특별한 거에요. 당신한테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쁘니까.
이건 진심이에요.]
휴대폰 폴더를 내리자 다시금 피로가 몰려들었다.
그릇을 부엌에 갖다 둔 뒤 내방에 돌아가 다음날 아침까지 잤다.
갈색의 기다란 머리카락, 하얀 피부에 섬세한 턱선.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던 걸 상상했다.
하지만 아무리해도 그녀의 달콤한 냄새만큼은 기억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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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날 시부야는 사람으로 흘러 넘쳤다.
약속 장소인 찻집으로 향하는 동안에는 마음이 편했다.
가게에 도착하니 입점할 수가 없었다. 사람으로 한가득이었다.
그러다 나는 가게 안에서 큰 소리를 질러버렸다.
입점을 거부하는 점원 앞에 그녀가 서있는 걸 본 것이다.
약속대로 교복 차림으로.
가게안 손님들이 나와 그녀를 쳐다봤지만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귀여운 여고생과 평범한 연상의 남자 친구.
그렇게 보인 걸까.
생각해보니 이런 느낌은 내 평생 처음이었다.
이 좁은 실내에서 누군가의 옆에 당연한 듯 서있고
그걸 사람들이 인정해준 듯한 느낌이
이에 기쁜 건지, 안심한 건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보통 여자들은 나같은 것한테는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인 데이트는 한 적도 없고, 권한 적도 없다.
지금껏 한번도 맛본 적 없는 감각이 즐거웠다.
비록 돈으로 산 것 이었지만.
[나가요. 여긴 공기가 별로 안좋네요.]
그녀가 내 코트를 살짝 당기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시부야로 나갔다.
145
추운 거리를 돌아다니다 남쪽 출구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시켰다.
스타 벅스 내에도 앉을 자리는 없었다.
근처 버스 정류장 둘레에 쳐있는 가드 레일에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이거 오늘 요금.]
나는 내심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던 걸까.
지폐를 꺼내들고 그녀의 손을 잡은 다음 그위에 올려놓았다.
내 손바닥은 식은땀으로 흔건했지만,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고마워요.]
그녀는 방긋이 웃었다.
좀 더 상세히 쓰자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벽한 여고생이었다.
추운 건지 등을 새우처럼 굽힌 채 컵을 양손으로 든 여고생.
물끄러미 자신을 응시하는 내 시선을 눈치챈걸까,
[화장은 안했어요.]
그렇게 말했다.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은 화장 싫어하니까...]
그리고 나서
[사실 화장 조금 했어요.]
이렇게 덧붙였다.
[배고프지 않아?]
[응, 아직은요.]
[그럼 어디 가고 싶은 곳은?]
[예? 데려가 줄래요? 그래도 되요?]
어디든지, 공주님이 가고 싶은 곳이라면.
하라쥬쿠로 이동해서 옷이나 신발을 구경한 다음 키디랜드에 들렸다.
공주님은 만족했는지 아주 기뻐했다. 그러자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난 하라쥬쿠 근처는 자주 오지 않아서 잘 몰랐다.
게다가 설날 무렵 열려 있는 가게도 드물고.
그러다 연중 무휴로 장사하는 카페가 있단 걸 생각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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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 샌드위치 4조각과 코코아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리고 가게 스토브 앞에 바짝 다가 붙은 상태로 칼루아 밀크를 마셨다.
나는 아까 사뒀던 신발 상자를 그녀에게 건네줬다.
[이건 설날 선물. 싸구려라서 미안.]
[어라? 이거 아까 구경했던 거?]
[아까 그 가게에서 갖고 싶어하는 거 같길래, 나오기 전에 샀어.]
중간 중간 그녀가 내 이름을 말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하고 울렸다.
내 이름을 여자가 이렇게 친밀하게 부른 건 처음이었다.
신고 있던 신발을 상자에 집어 넣고 새로 산 신발을 신은 그녀.
너무나 기쁜 표정이 도저히 연기로 보이지 않았다.
몸이 따뜻해졌고, 배도 채워졌기에 가게에서 나가자 말하니까.
[벌써 가게요?]
[충분히 즐거웠으니까. 역까지 마중나가줄께.]
역 근처까지 왔을 무렵 그녀가 내 팔에 매달렸다.
[저기 호텔 안갈래요?]
[뭐? 필요 이상의 스킨쉽은 없는 거 아니었어?]
[오늘밤은 되요, 취소할 건가요?]
그녀의 인도를 받아 근처 호텔로 발을 돌렸다.
어렴풋이 비소리를 들은 것 같다.
호텔의 공기 조절팬이 떨리는 소리였는지,
정말 비가 내린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팔속에서 모든 걸 잊었다.
조용한 숨소리.
달콤한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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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니 벌써 심야였다.
추가 비용을 내야 하지만 목이 말랐기에
냉장고를 뒤져 음료수를 꺼내 마셨다.
냉장고에서 흘러나온 빛으로 그녀의 핸드백 내용물이
흘러나와 있는 게 보였다.
백을 손에 들고 흩어진 내용물을 하나씩 던져 넣었다.
핑크색 곰인형에 화장품, 손바닥 사이즈의 장난감 권총, 지갑,
손수건, 콘텍트 렌즈 케이스, 휴대폰...
거기서 손이 멈췄다.
플로피 디스켓이 한장.
핑크색 케이스 3.5인치. 라벨은 붙어 있지 않았다.
평소라면 신경 쓰지도 않았겠지만, 소유자가 소유자이기 떄문에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별 생각 없이 호텔 구석에 비치되있던 PC 전원을 켠 다음
플로피 디스켓을 찔러넣었다.
PC 구동음과 함께 그녀의 비밀이 표시되었다.
안에 들어 있던 건 메모장 하나와 엑셀 파일 하나.
메모장은 영문으로 적혀 있었기에 나로썬 해독이 불가능했다.
엑셀쪽에도 영단어와 여러가지 숫자가 나열되있었다.
결국 나한테는 그녀의 비밀에 접할 자격이 없었다는 소리다.
내 메일 주소로 파일을 송신했다.
그리고 오타쿠 친구한테도 해석 좀 해달라며
파일을 첨부해서 메일을 보냈다.
침대로 돌아와 다시 눕기 전 조금 신경이 쓰여
그녀의 손목이나 허벅지를 조사했다.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진짜 공주님마냥 아름다운 자태로 잠들어있었다.
플로피 디스켓에 대한 건 바로 잊어버렸다.
졸린데다 너무 추워서 그녀를 꼬옥 껴안고 다시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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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다시 눈을 떠 그녀를 깨웠다.
졸립다며 칭얼거리는 그녀를 깨워서 옷을 입혔다.
멍한 표정으로 흔들 흔들 거리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녀를 놀래켜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탁 미니까 시원스레 침대에 쓰러졌다.
나는 그 위로 덮치듯이 몸을 실었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대 시트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졸린 듯한 시선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봤을 뿐이다.
언젠가 TV에서 봤던 사자에게 사로잡힌 얼룩말 새끼가 생각났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모를 검고 커다란 눈.
아픈 건지, 무서운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연민이 느껴지는 눈동자.
그걸 보고 있자니 그녀를 희롱하고 싶은 마음이 일순간 증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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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나왔다.
내가 먼저 길에 나와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 그녀를 불렀다.
이런 새벽에 사람이 있을리는 없지만 교복을 입은 여자가
호텔에서 나오는 걸 다른 사람들이 보는 건 좀 안 좋으니까.
재빨리 호텔에서 달려나온 그녀는 내팔을 탁 잡으며 멈쳐섰다.
비슷한 타이밍으로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뒤로 하면서
왠지 내심으로 이겼다!! 는 생각이 들었다.
저쪽 여자에 비교하자면 공주님쪽의 압승이란 느낌이 들었기에.
물론 내가 기뻐할 이유도 없고
애초에 돈으로 산 승리였지만 말이다.
나는 여자에 대한 건 완전히 중학생 애송이 수준이었으니까.
단지 공주님이 나랑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텐션이 올라갔다.
역까지 긴 거리를 걸으면서
[오늘 밤도 공주님이랑 같이 보내고 싶네.]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턱을 앞으로 고정한 채 시선만 돌려 나를 보았다.
그러다 끝마치고 싶은 용무가 있다면서 역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우유를 하나 사서 마셨다.
너무 차가워서 맛을 몰랐지만 정신만은 번쩍 들었다.
휴대폰을 꺼내 오타쿠 친구한테 메일을 보냈다.
이 친구는 전화를 해도 받질 않는다. 그렇기에 전화하는 것 자체가 헛일.
어제밤 보낸 건 읽어봤냐고 메일을 남겼다.
역 안은 한산해서 그런가 엄청 추웠기에 근처 스탠드 카페로 피신했다.
따뜻한 커피를 주문한 뒤 잠시 졸고 있자니 메일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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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은 그녀가 보낸 것 이었다.
[오늘도 같이 보내고 싶단 말, 고마워요.
집에 가고 싶지 않으니까 어디 호텔 예약해줄 수 있나요?
할인은 못해드리지만...호텔비용은 제가 내도 되요.
오늘 밤도 함께 보낼 수 있겠네요. 기대되요.]
몇번이나 다시 읽었다.
이에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빠졌는지 알 수 있었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답장을 보냈다.
[알았어. 예약해둘께. 그리고 교복은 안 입고 와도 돼.
유니폼 매니아라고 한 건 거짓말이야. 공주님이 좋을대로 입고 와.]
답장을 보낸 뒤 업무상 몇번 사용했던 중소규모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운좋게도 아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아니고 몇년간 알고 지내면서 막역해진 사이였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정을 이야기한 뒤 예약을 했다.
상대는 안심하고 이용해달란 말을 했다.
내일이 되면 잊어 버리겠다는 의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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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 시간까지 호텔 로비에서 시간을 때웠다.
그러다 아는 사람이랑 같이 식사를 하던 중 메일이 왔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오타쿠 친구였다.
[각성제.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좀 더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그쪽 정보를 늘어나 봐.
이 파일 어디서 주운 거야? 왜 알고 싶은 거지?
일단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부 털어놔. 내 이야기는 그 다음이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아는 사람한테 PC를 써도 되냐고 물어봤다.
흥쾌히 허락을 받은 나는 그의 노트북을 빌려 호텔방에 들어갔다.
그녀가 오기 전까지 귀찮은 일을 해결해두고 싶었다.
문장을 정리해서 쓴 다음 메일을 보낼 때까지 몇분.
메일을 보내고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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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도 지나지 않아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우선 엑셀 파일.
여기 실려 있는 건 거리에서 파는 약 리스트였어.
대부분 합법이지만 위험한 것도 섞여 있었어.
하지만 일일히 따지고 들만한 건 아니야.
진짜 위험한 건 가장 아랫줄에 적혀 있던 거.
베타 엔돌핀, 쉽게 말해서 몰핀 같은 거야.
같이 써있는 숫자는 아마도 구매한 숫자와 금액, 재고.
이건 단순한 추측이지만...
여기 써있는 것만으로 보자면 이 파일의 작성자는
약물 구매 비용으로 백수십만의 빚이 있어.]
눈이 아팠다.
나는 왜 언제나 이런 걸까.
관계 없는 일에 손을 댔다가 말려들기 일쑤다.
2번째 메일이 도착했다.
[그리고 메모장쪽은...이건 잘모르겠어.
언뜻 보면 미국 사람이 가족앞으로 보내는 편지글 같은데.
억지로 덧붙이자면 안에 쓰여있는 주소가 어떤 의미가 있는 거라든가.
물론 엑셀 파일과의 연관 관계는 없는 걸지도 모른다.
우연히 같은 미디어에 기록된 걸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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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고, 이제 됐다는 메일을 보냄과 동시에
3번째 메일이 도착했다.
[그냥 훔쳐 보는 것 뿐이라면 이걸로 충분하지?
이 정도로 그만 둬.
네가 여자한테 인기없다는 건 나도 잘 알아.
그렇다 해서 아무나 좋다고 생각한다면 진심으로 경멸할 거야.
이런 위험한 것에 손대는 여자는 그만 둬.
네 깜냥으론 감당해낼 수 없어.
정히 괴롭다면 내가 밥이라도 살께.
빨리 돌아와.]
오타쿠 친구의 메일에 이상한 감동을 느끼던 중,
그녀한테서 메일이 왔다.
[쇼핑하고 갈께요.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요.]
그리고 조금 있다 오타쿠 친구한테서 다시 메일이 왔다.
[쓰는 걸 잊어버렸는데, 이 파일 꽤 자주 변경됐다.
날짜랑 같이 재고 숫자가 특히 자주 변경됐어.
재고 수량이 바뀌거나 했나. 뭐 아무렴 상관없지만.]
다시 그녀에게서.
[그런데 라이트 그린이랑 화이트, 어느 쪽을 좋아해요?]
룰 위반이란 건 알고 있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기에
업무용이 아닌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란 메일을 보냈다.
시원시럽게 거절당할 거라 예측했는데, 내 예상과 달리
금방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였다.
나는 호텔 이름과 장소를 가르쳐준 다음 빨리 보고 싶단 말을 했다.
그리고 녹색보단 흰색을 좋단, 좀 넋빠진 대답을 덧붙였다.
180
프런트에서 연락이 왔다.
손님이 왔다는 것이다.
방으로 올려보내라고 말하고 나서 얼마 뒤 그녀가 문을 두드렸다.
쇼핑백을 가득 든 그녀는 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깨끗한 호텔이네요. 이런 곳은 처음이에요.]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 그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입에 물고 있던 춥파춥스 막대가
목의 움직임에 따라 위 아래로 흔들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를 침대에 앉혔다.
그때의 나는 그녀에게 완전히 매료되서 떨어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돈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모아둔 돈 얼마에 아름다운 추억을 살 수 있다면
너무나 싼 것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심지어 당시의 나는 그 변명을 믿었다.
내 분위기에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
춥파춥스 막대의 움직임도 멈췄다.
[내 휴가는 도합 6일 이야. 그중에서 남은 3일을 너와 함께 보내고 싶어.
보낸다 해도 장소는 이 호텔 정도지만. 사실 3일치 예약을 해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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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이 나를 벗어나 잠시 허공에 멈췄다.
그녀는 이내 사탕 막대를 손가락 끝으로 잡고 입에서 빼내며 말했다.
[응, 좋아요. 집에 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묵을 곳 찾고 있었거든요.
이 호텔이라면 좋아요. 그리고 당신이랑 같이 있을수도 있고.]
나는 안심했다.
그리고 그 사이 [요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최대치에 가까운 금액으로 승낙해줬다.
앞으로 3일.
그 동안 모든 걸 잊어버릴 생각이었다.
일이나 친구,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을.
그녀만 생각하고 싶었다.
그녀를 꼭 끌어안으니 그녀의 옷에서 새옷 냄새가 났다.
쇼핑한 건 이거 였나.
잘 보니 상하의 모두 새로 산 것 같았다.
그럼 전날 입었던 교복은 어디에>
집에 돌아가진 않았다고 했다.
용무라는 건 그 플로피 디스켓을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것?
뭐든 상관없었다.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그녀를 꼭 껴안고 있자.
뒷 이야기가 기대되는 스레네요
답글삭제뭔가 위험한 느낌도 드는데...
답글삭제일단 기대~
왠지 안타까운 결말이 될 거 같은 스레로군요.
답글삭제이게 웬 소설.
답글삭제기대됩니다. 음악선곡도 좋군요.
으잌
??? 라니 ㅠㅠ
답글삭제결말이 걱정되네요 ㅠㅠㅠ
이건 이거대로 슬픈 결말이 나올것같은 [...]
답글삭제랄까.. 담편이 궁금;;
답글삭제안타까운 결말이 예상되네요...
답글삭제결말을 아시는분이... 분위기에 맞는 배경음을 다셧을테니..
배경음만으로도... 안타까워지는..
초속5...............으허허허허헣
답글삭제오랜만에 왔더니 왠지 모르게 배드 엔딩이 나올듯한
답글삭제슬픈 스레를 봐버린것같군요ㅠㅠㅠㅠ
그래도 다음편이 몹시 궁금해져서 미치겠습니다ㅠㅠ
뭔가 슬프게 끝날꺼같아서 ㅠㅠ
답글삭제너무 기대되는 스레네요!!!
답글삭제빨리 다음편 올려주세요 ㅎㅎㅎㅎ
이 배경음은..
답글삭제초속 5센티 ost 추억은 머나먼 날에? 였던가..
결말은 어찌 될련지...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