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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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학 때문에 독신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되던 날
고무 밴드가 필요해서, 집에 남는 게 없을까 싶어 서랍장을 뒤지고 있던 중
쓰다남은 듯한 고무밴드 상자를 발견했다.
아마 이사할 때 친가에서 쓰던 것을 넣어줬던 것이리라.
오랫동안 쓰지 않더라도 상하지 않게 랩으로 상자를 감아두었다.
이사할 때 어머니가 이것 저것 가져가야 될텐데, 라는 말을 했지만
필요하게 되면 알아서 사겠다면서 죄다 거절했던 것이 생각났다.
독실 생활을 시작하고 1년 되는 그 날, 난 처음으로 울었다.
어머니, 고마워요.
21
어렸을 때 신칸센을 타고 어머니의 친가에 가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몬드 초콜릿을 사 주었다.
1시간 정도의 나들이였지만, 어렸던 나에게는 엄청나게 멀리 나가는 여행과 같았다.
내가 나이를 먹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몬드 초콜릿은 더 이상 사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요전날 친가에 돌아갈 때 과거 먹었던 아몬드 초콜릿을 생각하며 스스로 사봤다.
그 무렵 커다랗게 느껴졌던 아몬드 초콜릿은 아주 작았다.
하지만 신칸센에서 먹었던 그 초콜릿 맛은 달라지지 않았다.
추억이 입안에서 녹아가며, 지난 시간이 아름답고 선명하게 생각났다.
그리고 울었다.
어머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132
나도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토록 오랫동안 같이 살았는데 어째서일까
할머니는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 있었기 때문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 안심할 수 있었어.
아침밥은 언제나 흰쌀밥에 낫토, 된장국, 구운 꽁치에 김
내가 맛있다고 말하면 엄청 기쁜 얼굴을 했어.
헌데 나는 쑥쓰러워서 자주 말하지 못했다.
제대로 말했어야 했는데
[고마워요]
어느 날 저녁, 할머니가 웃는 얼굴 그대로인채 싸늘히 식어버렸다.
모든 게 끝난 뒤에야 말할 수 있었다.
[고마워요]
이미 닿을 수 없는 말이지만.
178
벌써 16년이나 됐나.
나도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다.
죽기 며칠 전, 몸이 이상하다며, 손이 차갑다는 말을 하며 나한테 손을 내민 적이 있다.
나는 단순한 감기겠지, 너무 야단스럽다며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며칠뒤, 할머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내 이름조차 온전히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목욕탕에서 할머니가 누워 있는 곳을 향해 엎드려 빌었다.
[미안해요. 지금까지 속만 썩여서 미안해요.]
[부탁해요, 할머니가 다시 건강해지게 해주세요.]
실현될 수 없는 소원을 목욕탕에서 혼자 울면서 빌었다.
다음날 , 할머니는 죽었다.
미안해요. 할머니
그때도 손을 잡아주지 못해서.
싸움도 자주 했지만, 여러가지를 가르쳐 주셨죠.
즐거웠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369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한 적도 없고,
당신이 죽고 난 이후에도 고맙다 말한 적이 없는 바보 같은 아들이지만
이 기회를 빌어 말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당신의 손자가 얼마 뒤에 태어날 거 같아요.
태어나면 바로 보이러 갈께요.
450
아버지가 죽었을 때 나는 21살이었다.
몸이 안좋아서 입원했을 무렵, 나는 니트로 놀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친척에게서 소식이 들어오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형에게 이끌려 병원으로 갔다.
당시 아버지의 병환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금와선 무엇보다 분하다.
우리들이 아버지를 보고 돌아간 뒤, 무너지듯이 침대에 쓰러져 괴로워하셨다는 이야기를
시간이 지나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에게서 들었을 때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어머니가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며 아버지 병수발을 들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일도 하지 않고 놀고만 있었다.
451
튼튼하고 다부지셨다.
문병하러온 손님은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속내를 내비치지 않으셨다.
괴롭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분명 낫게될 거라고 생각했다.
원인도 알지 못한 채 시작된 투병생활
그 원인을 알게 된 건 기이하게도 내 생일 바로 직전이었다.
폐암이었다.
발견되었을 때는 상당히 초기로 절제한다면 살아날수도 있는 크기의 악성 종양
하지만 절제는 커녕 항암제도 방사능 치료도 할 수 없었다.
악성 종양이 생긴 부위가 문제였다.
심장에 너무 가까웠던 것이다.
간신히 들어선 대학병원에서 내려진 진단은 하나 뿐이었다.
남은 여생은 반년이라는 것
대처 요법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내 생일날이었다.
453
내 옆에서 그 말을 같이 들은 어머니는 큰 소리로 우셨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나는 3개월 후면 아버지의 생일이 돌아온단 생각만 들었다.
병실로 돌아갈 마음이 들지 않아, 그 날은 그대로 집에 갔다.
짓궂은 일로, 그때쯤이 아버지가 가장 건강한 때였다.
아버지 얼굴을 보는 게 괴로워 집에 박혀 있던 중
어머니의 채근으로 간신히 병원에 갔다.
하지만 병실에 들어가는 게 괴로워 밖에서 기다렸다.
지금 와선 후회하고 있다. 후회하고 있다.
말하면 좋았을 텐데
[고마워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어떤 얼굴로 아버지를 봐야 될 지 몰랐으니까.
이미 선고된 여생 그대로 반년 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우리 집의 분위기는 거칠어졌다.
[아버지가 죽은 건 네탓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누구 탓으로든 책임을 묻는 것으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무리하게 직장을 얻어, 그걸 구실로 이후 친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도 어머니와의 사이는 거북하다.
하지만 말해야만 한다.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한 만큼.
[고맙습니다] 라고.
651
집정리를 하던 중 영구 보존이라고 쓰여진 카세트 테이프가 나왔기에 뭘까 싶어 들어보니.
갓난아기 였을 때, 뭔지 모를 것을 웅얼거리는 나와 부모님의 즐거운 듯한 회화가 흘러나왔다.
그걸 듣고 있자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현재 부모님은 반 별거 상태, 거기에 부모님의 기대에 따르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후회.
다양한 생각이 흘러 넘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 이런 나를 지금까지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795
어머니에게 감사하단 말을 하고 싶다.
어머니에게 말할 기회를 놓친 적이 많다.
내 옆에 있을 때, 어머니가 의식이 있을 때, 어머니가 말을 할 수 있을 때
말할 수 있을 때 말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어머니가 유방암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지금부터 3년 반쯤 전
의사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될 때까지 병원에 오지 않고 뭐했냐며 화를 냈다.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나는 실감할 수 없었다.
언제나 웃고 있는데다 건강하고, [엄마는 불사신이니까] 이런 말을 버릇처럼 하던 분이었다.
수술하면 바로 낫겠지, 싶은 마음에 크게 게의치 않았다.
수술 뒤 퇴원도 금방했고, 상태도 괜찮았다.
항암제를 먹었어도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평상시와 다를바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유방암은 5년 안에 전이되지 않으면 치유되었다 볼 수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딱히 걱정하진 않았다.
나는 바보다. 어째서 그때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어머니가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게 있는 힘껏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
의사가 화를 낼 정도의 암이었다. 전이되지 않는 게 되려 이상할 정도였다.
뇌로 전이됐다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지 3년째 되는 해였다.
아버지에게 다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암에 관한 지식은 전혀 없었으니까.
암은 한번 전이되면 절대 낫지 않는다. 일생 계속해서 전이된다.
......뭐야, 그게.
그 날이후, 제대로 잘 수 없게 됐다.
어머니가, 죽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불안해지고, 무서워졌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어머니가 없는 집이라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한 것만으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이후 몇개월 동안 어머니의 뇌에는 암이 세군데 더 전이되었다.
796
수술 자체는 곧 끝났다.
두개골에 볼트 같은 금속 기구를 고정했는데 이것이 엄청나게 아프다는 것 같다.
항암제도 유방암때와 다른 것이 처방되었다.
겉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나 몸이 부어올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아파도 울지 않았지~ 이런 거 아무것도 아냐~]
[살쪄도 엄마 예쁘지?]
이러면서 웃으셨다.
가족 앞에선 고통을 내색하지 않으려 무리하고 계시다 생각했는데
우리가 없을 때도
[가족 중 다른 누가 아닌, 나라서 다행이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친구가 알려주셨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는 겁니다. 당신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가장 괴로운 입장일텐데
...이때 나는 한가지 결심을 했다.
웃어보이겠다고.
절대 울지 않겠다고.
우리 가족의 태양과 같은 어머니처럼 되겠다고.
힘들었지만 노력했어.
이래 저래 많은 일이 있었지만.
하지만 역시 어머니가 웃는 얼굴을 이길 수 없었어.
어머니는 웃는 얼굴이 세계에서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797
정말 괴로웠어.
하지만 어머니는 이것의 100배는 괴로울테지.
그러던 중 어머니의 목에 이상이 왔어.
처음에는 높은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고 하길래, 모두들 감기인가 생각했어.
헌데 약을 먹고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아도 낫질 않았어.
나는 대학생이라 자주 보러 갈 수 없었어.
그러다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을까 싶어 10일만에 전화를 했어.
헌데 회복은 커녕 엄청나게 상태가 나빠졌단 이야기를 들었어.
기침소리로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점차 목소리를 안나오게 됐고, 결국 음식조차 삼키지 못하는 지경까지 갔어.
결국 암이 원인인 것을 안 건 다시 입원하고 며칠이 지난 뒤였다.
입원 이후에도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검사해도 암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2월 21일 밤, 의식 불명 상태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암이 뇌수막으로 전이되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수막에는 항암제의 효과가 없어서, 부어오른 수막이 신경부위를 압박해서 말을 하지 못한 거라고.
다음날 학교를 빼먹고,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갔다.
목에 난 구멍으로 산소 튜브가 꽂혀 있었다.
뭔지 모를 링겔이 몇 종류 매달려있었다.
한쪽 눈을 뜨고 있었지만, 말을 걸어도 반응하지 않았다.
왼손만이 규칙적인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을 뿐.
.....마치 고장난 기계 같았다.
울고 싶었다.
[의식은 없어도 말은 들리니까, 대화를 걸어보세요.]
그런 말을 들었지만, 울먹이는 소리를 내지 않는 것만으로 한계였던 지라
말을 하지 못했다.
798
뇌수막에 전이된 이상 항암제는 이제 쓸모가 없고
다른 치료법은 다른 신경을 손상시킬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방법이라 했다.
가족과 함께 상의한 결과
[이제 치료는 더이상 하지 않는다.]
....그러기로 했다.
....이제....안돼.......
솔직히 이번 입원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회복해서, 목 상태도 좋아져 분명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무서웠다.
어머니가 죽는다는 것 각오해야 한다는 게.
약해져 가는 어머니를 두고 봐야만 한다는 게.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이렇게 후회할 줄 알았다면,
좀 더 자주 얼굴을 봤다면 좋았을 텐데.
좀 더 이야기 했다면 좋았을 텐데.
좀 더 어머니의 요리를 먹었다면 좋았을 텐데.
좀 더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드렸다면 좋았을 텐데.
좀 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렸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미안해요...
799
24일날, 완전히 의식이 사라졌다.
의사가 호흡정지, 심장 정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소생할 수 없는데 무리하게 되살리는 건 그만두자. 어머니도 그간 힘들었으니까.
가족들이 없을 때 무슨 일이 있다면 30분 정도 처치를 하고, 이후에도 호전되지 않으면
그대로 쉬게 해드리자]
.....그렇게 되었다.
그날, 나는 어머니에게 남은 기력을 짜내서 말을 걸었다.
[MD 들을래? 내가 참가한 밴드 라이브의 MD]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호흡외에 반응이 없는 어머니에게 노래를 들려줬다.
반응이라곤 전혀 없지만, 나는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가까운 시기에 밴드 멤버들이랑 이걸 CD로 만들기로 했어.
.................그러니까, 그때까진 기다려줘]
이 말 이후 더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도망치듯 병실에서 빠져나왔다.
더이상 그곳에서 버티고 있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게 언제였던지...
2월 25일, 형과 누나가 일을 쉬고, 나도 학교를 쉬었다.
그렇게 형제 3명이서 병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서로 허세를 쥐어짜내며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저녁쯤 되서, 어머니의 호흡횟수가 돌연 줄어들기 시작했다.
몇번에 걸쳐 너스 콜을 눌렀지만,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18시, 호흡이 완전히 멈추는 바람에 의사가 인공 호흡을 시작했다.
서둘러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는데, 우연이도 일이 빨리 끝나서 이미 병원 근처에 와 계셨다.
18시 15분 , 아버지가 병실에 도착했다.
모두들 입다물고 선채 인공 호흡 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의사가
[환자분의 손이나 얼굴을 만져주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침대 옆에 앉아 어머니의 오른손을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굉장히 뜨거웠다.
마지막 생명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울었다.
간신히 울 수 있었다.
참아낼 수 없었다.
소리내서 말하진 않았지만,
그동안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던 말을
거드름 피우며 쭉 말하지 못했던 말을,
무서웠기에 말하지 못했던 말을,
어머니에게 말해드렸다.
[모두들 모이는 걸 기다려준거죠....
.....그동안 23년 간 고마웠어요.
......이제 편히 쉬세요.]
말하는 게 너무 늦었다. 그래서 미안해요.
고마워요.
18시 32분, 어머니의 심장이 멈췄다.
800
들리나요?
제 마음, 전해졌나요?
이런 아들이지만, 행복하셨나요?
나는, 당신이 제 어머니셨기에 행복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아들이라서 행복합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아버지는 그 후 한번도 울지 않았어요. 우리들 앞에서는 한번도
역시나 가장 괴로운 건 아버지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지금도 잘 웃어 있어요.
물론 나도, 그치만 역시나 가끔은 괴로워요.
이렇게 터무니 없이 긴 문장을 쓴 정도로.
아직도 질질 끌고 있단 증거지요.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직도 부모에게서 졸업하지 못했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만.
평생 잊지 않을 테니까, 앞으로도 노력할 테니까
계속 지켜봐주세요.
801
이렇게 긴 문장, 전부 읽어주신 분 감사합니다.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감사하는 마음은 그때 그때 전하세요.
그 길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해주세요.
좋은 날을, 좋은 인생을, 좋은 사람들과 보내주세요.
인생을 보내는 가장 즐거운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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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으아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눈물이 ㅜㅜ
답글삭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답글삭제ㅠㅠ 너무 슬퍼요 ㅠㅠ 눈물이 나요...
답글삭제이건 진짜 슬프네요 ..ㅠㅠㅠ
답글삭제이런글 나오면..
답글삭제뭘 새삼스레.. 라며 그냥 넘겨버리고 BGM도 무시해버리지만..
그러다 보게되면 어쩔수 없이 눈에서 물이 나와버리는걸..
저희 누나 이야기를 보는거 같네요...
답글삭제@히키 - 2009/09/06 01:40
답글삭제그러게요
생각없이 열었다가 눈물테러 당했네요.밉다 유유
답글삭제웃어보이겠다고.
절대 웃지 않겠다고.
우리 가족의 태양과 같은 어머니처럼 되겠다고.
이부분 두번째줄이 문맥이 안맞는데 잘못 쓰신건가요?
슬프네요.. 그런데 가족의 소중함을 잘아는 vip분들이 왜 피랍당한 우리나라분들 돌아가실적 그렇게 축제 분위기로 즐기셨는지.. 갑자기 떠올라 씁쓸하네요.
답글삭제@ㅇㅂㅇ - 2009/09/06 01:47
답글삭제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견생 - 2009/09/06 01:51
답글삭제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날, 디씨 코갤에선 노무현 대통령 사인에 대한 폐륜 드립치며 놀았지요.
세상 어느 곳에나 골빈 사람은 있는 법입니다.
코키아의 고마워요는 단골bgm이네요 ㅋ
답글삭제진짜로 나 눈물 나고잇다....
답글삭제@히키 - 2009/09/06 01:40
답글삭제..정말 그렇네요. 항상 새삼스럽다며 넘어가려고 하지만, 막상 보면 눈물 나는 건 참을 수가 없네요..
가족의...의미인가요 [머엉]
답글삭제울면서 봤어요..왠지모르게 저희어머니랑 이미지가 겹쳐보였습니다 ㅠㅠ
답글삭제펑펑울었어요 ㅠㅠㅠㅠ
여기서 나같은 사람이 의견을 남겼다간 의미가 바래지겠지....
답글삭제노코멘트..../사라진다...
답글삭제감동 카테고리 좋아해요. 가장 사람다운 느낌이라고 할까요
답글삭제고맙습니다.
답글삭제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누.,....눈에서 땀이............
답글삭제왜 눈에 흐려지지... 내눈이 이상해 지는건가 ㅠ.ㅠ
답글삭제으아 이글 보고 우리할머니에게 고맙습니다.그리고사랑합니다라고 하고왔습니다 ㅠ
답글삭제vipper들이 바보였던 이유가 이거였군요...
답글삭제이런글은 끝까지 읽을 수 없어...울것 같단 말이야;
답글삭제아..전 진짜 못된년,개만도 못하네요
답글삭제할머니 돌아가시고 장례식갔다 잠시 집에와서 잠이 들었는데
늦잠을 자버려서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모습은 안봤습니다..
못봣다는 변명이고 안봤다가 맞겠죠..
아무튼 그러고나선 할머니 집에서 컴이나 하고 앉아있고..
3년전 일인데 진짜 그땐 죄송한 마음이 그리 크지 않았던거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고 이런 글보고나면 제가 완전 미쳤다고 생각됩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감동스레 싫다...
답글삭제눈물이 나잖아
..ㅠㅠㅠㅠㅠ눈물이 멈추지않아요.어떻하죠.
답글삭제오늘 왠지 더운데...
답글삭제눈에서 땀이 날 지경이라니...
뜨거웠던 여름날
답글삭제오늘이 가장 더운 날 같네요.
그런데 어째서죠?
눈에서만 땀이 나네요.
눈물질질...젠장..너무슬프잖냐!!
답글삭제저희 외할머니는 저희 가족이 찾아간 2일 뒤에 돌아가셨더라죠...
답글삭제많이 슬프기도 했지만 그나마 그때 찾아 뵙지 않았더라면 더 슬펐을거라고 어머니를 위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
답글삭제읽고있으니까 눈물이 앞을 가려서 도저히 읽을수가 ㅠ...
감사합니다. 지금껏 어비스에 올라온 글은 다 읽었지만
답글삭제눈물이 이렇게나 흐르는 글은 처음입니다. 감사합니다.
2ch 스레로 눈물을 플리게 될줄이야..
답글삭제잠깐만.. 눈물좀..
답글삭제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되서 이런 글이 마음에 정말 와닫네요....
답글삭제저도 할아버지가 살아계실때 고맘다는 말 한번 사랑한다는 말 한번 못해드린게 정말 후회됩니다..........
아,진짜로 울어버렸습니다 ㅠㅠㅠㅠ..어설트님 밉다.ㅠㅠㅠㅠ
답글삭제@어설트레인 - 2009/09/06 01:55
답글삭제ㄷㄷ 그런일이.. 정말 어딜가나 골빈놈들이 많네요.
아우 ㅠㅠ 감동적이네요 ㅠㅠ
답글삭제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을 못본 죄많은 손자라 ㅠㅠ
왠지 찡하네요.
울었따
답글삭제네이버 블로그로 가져갈게요 ㅠ.ㅠ/
답글삭제늘 보기만 하다가 가져가는건 처음이네요..ㅎㅎ..~
http://blog.naver.com/skcm135
울었습니다
답글삭제아...
개그스레 보고 웃다가 이거보고 바로 울고..ㅠ
답글삭제개인 홈페이지로 업어가겠습니다.
답글삭제오늘 본 이야기 중에 젤 감동이네요.
거참...
답글삭제왜 이런 글들은 패턴이 다 똑같을까...
그러기에 평소에 부모님이랑 소통을 좀 하라고 이것들아!!
아 정말 눈물이 찔끔 났어요 ㅠㅠ
답글삭제근데 글 다읽자마자 노래가 끝나는 이게바로 VIP퀄리티?ㅠ
낄낄거리고 있다가 크리티컬 카운터 맞은 느낌인데 이거.
답글삭제아프다.
엄청 아프다.
아...
답글삭제BGM 고마워요..
답글삭제노랫말이랑 글 내용이랑 어울려서 눈물이 글썽..
http://hirotr.ncity.net
답글삭제로 퍼가겠습니다.
아 젠장.... 눈에서 흐
답글삭제@견생 - 2009/09/06 01:51
답글삭제뭐, 어차피 우리나라 DC도 고이즈미 전 총리 사망하면 축제 벌어질텐데요 뭘
컴퓨터 하면서 이렇게 울어본적은 처음이네요..ㅠㅠㅠ
답글삭제폭풍눈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할아버지께선 돌아가시기 2년정도 전 부터
답글삭제치매가 있으셨다 .
어렸던 나는 그때 할아버지가 너무 짜증나고 귀찮아서
냉대하고 무시했었다 .
그게 지금은 너무너무 후회되 ........
너무 죄송하고,,
할아버지만큼 날 아껴주고 사랑해주셧던 분이 없으셧는데 ...
잘해드리고싶다
아 ! 좋은가수알게됫네요 감사해요 ㅋㅋㅋ
답글삭제..오늘은 정말 슬픈글만 보고가네요...
답글삭제블로그에 가져가겠습니다...
답글삭제오랜만에 펑펑 울었네요...
지금 부모님한테 전화하고 와야겠네요...
답글삭제오랜만에 눈물이..
블로그로 퍼갈께요..
ㅜ;...
감사합니다..
오랫만이네요, 코키아의 노래... 노래에 어울리는 스레입니다.
답글삭제나 자신을 추스르기 조차 너무 힘들어서 엄마한테 모질고 나쁜 소리만 해댔는데 그게 참 가슴에 남아요. 정말 후회스러요
답글삭제아 폭풍눈물....진짜 엉망진창으로 펑펑 울었어요
답글삭제아..... 이 사람 저와 할머니 경우는 거의 완벽히 똑같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내요.....
답글삭제너무 울어서 앞이 보이질 않아요...가족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답글삭제아아.............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저지만,
답글삭제마지막을 읽을때 비로소 눈물이 고이는군요.....
이렇게 좋은 글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 외할머니 돌아가실때가 생각나네요...
답글삭제그때 전 대회에 참가중이라 임종이신줄도 모르고......
....................................................................................................................................................그런데 잘났다고 밥먹으러가자고 좋아하고있었으니........................................
정말 부모님께만이라도 잘해야겠습니다.....다신 이런일 겪고싶지 않으니....
몇년전에 부모님이 제대로 의식하지못하고 제게 모진 일을 겪게 해서 그뒤로 사이가 서먹해졌는데 정말 이 글 읽고나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어머니 아버지이기 때문에 사랑받고 사랑하고 위로받고 서로 상처입히지않았으면 좋겠는데 제게는 아직도 그 일이 기억이 남아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있습니다. 지금은 도저히 말할 상황이 안돼지만 사랑하지않았다면 이렇게 힘들지도 않겠지요. 사랑합니다. 태어날때부터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요. 사랑하고 사랑받으라고 하늘이 내려준 사람들이라서 정말 감사합니다.
답글삭제저는 아무리 하려고 해봐도
답글삭제누나에겐 고맙다는 말을 못하겠어요... 잘못한 것도 너무 많고,
받은것도 정말 많은 저인데... 저는 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하는걸까요...
언제나 누나에겐 사과하고싶고, 고맙다고 하고싶습니다-
하지만 이 못난 동생은 말 한마디도 못하는 바보네요.
저희 할머니는 이번 추석에 돌아가셨습니다......
답글삭제그동안 아버지랑 저랑 대변소변치우고 했지만
결국 추석일에 돌아가셨더군요...
할머니 임종은 몆달전부터 각오하고있던거지만..
화장터에서 나온 할머니의 유골을 볼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걸 몸으로 실감을 했죠.
그뒤 무너졌습니다......
아 젠장 울어버렸다.
답글삭제...뭐라고 말해야 할지..
답글삭제제 어머니께서도 1년전 돌아가셨습니다.
평소 건강하시던분이 돌연 병으로 손한번 쓸 사이도 없이 갑작스레..
저도 어머니께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머리크고 나서는 안해본것 같습니다.
어머니 가시는 날에도 전 그저 우는 거외에는 한말이 없었습니다.
못난 아들이 당신 살아생전동안 속만 썩혀드렸습니다.
정말..속상하고 죄송스럽습니다.
그냥... 어머니가 보고싶습니다.
아직 돌아가신분이 없는 저는 저분들의 말을 이해할수없어요.
답글삭제하지만 고맙습니다와 사랑합니다는 돌아가시기전에 한버은 말할거란 생각이드네요
울어버렸다..아..
답글삭제네이버블로그로 담아갈께요ㅎ..
서로이웃공개라는거.ㅎㅎㅎㅎ..
학교 방과후하는데 이거보고 펑펑 울어서 혼남
답글삭제슬퍼어~~~~~~~~~
슬프네요.. 네이버 블로그로 가져가야겠네요
답글삭제화장터에 가보게되면 부모를 잃고 오열하는 자식을 어렵지않게 볼수있다. 어떤자식이든간에 부모를 잃고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다는걸 그곳에서 확인할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일상에서는 소중한것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간다.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하지만 망각의 동물이기에 얻는 이점도 있다. 슬픈기억또한 잊혀져가기 때문에...
답글삭제아 눈에 무언가가 차오르고 있어..
답글삭제사람들은 평소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답글삭제좀더 주위를 둘러봐서, 나를 봐주는 가족이 있다는걸 깨닫고나면
최소한의 행복이라도 느낄수 있겠죠.
기쁨이 있다면 슬픔이 있는법, 슬픔이 있다면 기쁨도 있는법.
사람과 만남을 통해서 행복해지면, 이별이란 슬픔이 있고
이별이란 슬픔을 겪고 나면 또 다른 만남이란 행복이 있는겁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혹시라도 후회할만한 짓을 하고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만 하면 되는겁니다. 후회 하기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길..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답글삭제늦는다
눈에서 땀이..악!눈따가워!친구들은 이런짓 하지말라고........
답글삭제아, 쓰앙...새벽에 시꺼먼 인남캐 울릴일 있씀까..
답글삭제..
답글삭제감사합니다.
젠장...갑자기 나를 그렇게 아끼시던 할아버님이 생각나잖아...마지막에 할아버님께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하고 싶었는데...믿기지가 않아서...안했던 그 말이..그 때를...이렇게 증오하고 있다.
답글삭제할아버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평소 아닌 척 하셔도 절 이렇게까지 사랑하고 아껴주신...할아버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할아버님. 후에...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