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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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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니 >>4의 인생이야기라도 듣자.
노력해라!!
4
(´・ω・`)
6
>>4
기대한다.
10
이야기해볼까.
대학까지는 순조로웠다고 생각해.
그 이후부터 방황했다는 느낌.
11
초, 중, 고를 지나는 동안 공부는 나름대로 잘했고, 대학에서도 별 문제는 없었다.
공부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그럼 교수를 목표로할까.
...생각했지만, 현실은 무리였다.
12
교수 자리는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외에는 될 수 없다는 걸 알게되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남을 위해 자신을 낮출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결국 포기했다.
14
공부는 좋아하지만, 새로운 사물을 추구하는 일은 잘 못한다.
공부라는 건 이미 있는 걸 알고나면 끝이지만, 교수의 길은 그것과는 다르기도 하니까.
그걸 깨닫고 결국 학교에도 나가지 않게 됐다.
13
좀 안타깝다.
15
계속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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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별생각 없이 보냈다. 멍한 상태로 보낸 적도 잦았다.
일단 학교에 얼굴을 내도, 몇시간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다 돌아오곤 했다.
시간을 정말로 헛되게 보냈다.
21
나는 나아가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장래는 어떻게 하지. 내일은 어떻게 할까.
어느 것 하나 알 수 없었다.
24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시간만 보내선 학교에 있어도 무의하다.
결국 퇴학 수속을 밟기로 했다.
이 후의 일에 대한 생각이라도 전혀 없었다.
26
학교 홈페이지로 퇴학 수속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담당 사무실에서 종이를 받아, 필요한 것을 써서 제출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그 사무실이 어디있는지 알 수 없었다.
29
이제 아무래도 좋으려나.
이런 생각을 하며 흔들 흔들 학교안을 걷던 중, [학생 상담실] 이란 명패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런 곳도 있었지.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일단 진로 상담이니까, 이곳에서 수속을 하는 사무실이 어디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31
[실례합니다. 퇴학 수속을 어디서 하는지 알고 싶은데요.]
상대는 곤혹스런 얼굴이었지만,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용건이 끝났기에 바로 돌아가려 했는데...
상대가 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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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퇴학하는 이유를 알고 싶은 것 같았다.
어차피 한가했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학교에서 아무 것도 안하는 날만 계속 되고 있어서...]
[뒷일에 생각한 건 없지만, 일단 학교는 그만두려고...]
상대는 부정도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다만 내 말이 끝날 때마다 비슷한 맞장구만 쳤다.
이런 짓을 해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37
10분 정도로 내 이야기를 끝났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에 돌아가려 했더니, 내일 일정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러다 결국 또 이곳에 와서 이야기를 하잔 약속을 하게 되었다.
상대방 의도에 흘러가기 쉬운 나...
39
완전히 나같은 녀석이다. wwwwwwwwwwww
41
실제로 할 것도 없는데다, 약속을 어기는 것도 개운치 않았기에 다시 상담실로 갔다.
이번에는 이야기를 하면서 약간의 게임을 했다.
모형정원 게임이란 것으로 일정 범위안에 모형을 늘어놓으며 장식 하는 게임이었다.
유치한 놀이였지만, 나 자신은 그 놀이가 너무 즐거워서 두근거릴 정도였다.
작품이 완성되고 사진을 찍었을 때는 달성감까지 느꼈다.
또 와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 다음에 언제 시간을 낼 수 있는지 알려줬다.
43
다음에 왔을 때는 다른 게임을 했는데, 그것 역시 재미있었다.
부품을 준비하고, 이를 늘어놓아 작품을 만든다.
그게 완성되었을 때는 정말 감개무량한 기분에 빠졌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나지만,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싶은 기분.
46
나에겐 학교외엔 길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취직해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기분이 샘솟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취직한다..... 새로운 나 자신의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49
하지만 현실은 역시나 어려웠다.
구할 수 있는 직장은 전부 내 전공과는 관련이 없는 곳 뿐.
지금까지 배워온 모든 것이 백지가 되는 걸, 나는 견딜 수 없었다.
53
그러면 공무원은 어떨까?
법률을 0부터 공부해가는 건 괴롭지만...
하지만 공부하는 것에는 자신 있고, 공무원 시험을 치는 것 외엔 방도가 없을 거 같았으니까.
글러먹은 생각을 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55
헌데 공교롭게도 그해의 공무원 시험은 전부 끝난 상태.
있는 거라곤 임시 채용 관련 밖에 없었다.
....일단 연습이나 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시험을 치기로 했다.
고졸 레벨이니까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할 필요도 없다 생각했다.
그리고 시험 당일.
사람이 지나치게 많았기에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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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일석일조로 각성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든다.
60
2개월 뒤 결과가 나왔다.
일단 [채용 후보자]로 선택되었다.
일손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연락을 주겠단 말을 들었다.
시험에는 합격했지만....마냥 기뻐할 순 없었다.
61
며칠 뒤, 상담실에 가서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임시 직원으로 합격했지만, 채용은 안됐다고.
그랬더니,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시험에 붙었다는 것과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단 것 때문에.
듣고 보니, 바뀐 건지도 모른다. 나 자신.
왠지 그게 기뻤다.
71
임시 직업 시험을 거쳐, 얻은 것은 분명 있다.
지금부터라도 나에게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학교를 1년 휴학하기로 했다.
퇴학하는 쪽이 좋을지도 모르지만...안전 장치는 하나 정도 마련해두고 싶다.
떨어지고 나서 아무 것도 없다....라는 건 역시 아직 무서우니까.
77
그렇게 새로운 생활을 준비하던 중 3월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설마....하는 생각을 했더니, 확실히 그 설마가 맞았다.
임시 직원으로 올 수 없는지....질문을 받았다.
80
학교를 1년간 쉬는 수속을 마쳤을 때를 노린 듯한 타이밍.
임시 채용 기간도 정확히 1년 정도라고 했다.
시험 공부와 양립하는 건 힘들지도 모르지만....모처럼의 기회니까.
다음날부터 임시 직원으로 일하기로 결정했다.
83
임시 직원을 하면서 여러가지로 컬쳐 쇼크를 받았다.
차 끓이기, 도시락 주문, 쓰레기통 비우기, 복사 용지 채워넣기.
아랫사람으로써 당연한 일의 연속이었지만, 나에겐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줬다.
일이 끝난 뒤엔 평가를 받고, 감사 인사를 받았다.
나 자신에게도 사회인으로써 활약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옆에서 보면 매우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그것이 매우 기뻤다.
84
나도...노력해볼까....
88
임시 직원인 덕분에 자유 시간이 많다는 점도 메리트가 됐다.
일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참고서를 보며 공부를 했다.
집에 있을 때보다 공부하기엔 훨씬 더 좋은 환경이었다.
거기에 급료까지 받을 수 있다. 실로 이상적인 환경이 아닌가.
91
이건 정말 약이 되는 이야기다....
96
힘내라!! >>4
힘내라!! VIPPER
힘내라!! 나
100
어떤 한심한 스레가 펼쳐질까 했더니....
좋은 의미로 배신당했다.
104
임시 직원 일을 하는 동안, 여러가지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직장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고, 서류 작성법도 배웠다.
솔직히 처음 들어갔을 때는 별로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열심히 하는 동안 여러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 1년간을 나는 정말로 고맙게 생각한다.
107
그리고 현재, 공무원 시험에 무사히 합격해서 일에 힘쓰고 있다.
소망대로 나아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좀 더 노력하고 싶다.
꼴사납지만, 이쯤에서 내 반생에 대한 정리를 마친다.
끝
110
>>107
공무원 시험 합격 축하해
네 덕분에 기운낼 수 있었어.
113
>>4
수고했어.
최근 낙담하고 있었는데, 희망이 생긴 기분이야.
130
>>4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
고마워
139
지정하는 게 좋으려나.
>>144
그럼 난 이만 자러간다. 안녕
141
>>139
잘자
144
가속
145
>>144
기대한다.
151
허들이 너무 높은데...
>>4 같이 좋은 이야기 쓸 수도 없고, 장문을 쓰는 것도 처음이니까.
시간 때우기 정도로 생각해줘.
155
>>151
문제 없다
158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일단 초등학생때부터 이야기해볼까.
초등학생 무렵의 나는 친구도 많고, 인기도 많았다.
반에는 전부 좋은 애들 뿐이라, 왕따 같은 것도 없었다.
점심 시간에는 모두 함께 피구를 하기도 했다.
이따금 여러명 모여서 마을 쓰레기 줍기를 하기도 했다.
163
좋은 이야기다
166
매일이 즐거웠다.
감기 걸려서 학교 쉬었을 때, 학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4학년에서 6학년때까지 육상을 했었다.
연습 하고 싶은 녀석만 남아서 대회를 목표로 연습에 매진했다.
100m 달리, 릴레이, 장거리 달리기.
1년에 대회가 3개 있었기에 전부 참가했다.
발이 빠른 것도 아니었지만.
169
모든 대회에서 별 다른 기록은 낼 수 없었지만, 즐거웠다.
특히 장거리가 즐거웠다.
장거리는 제법 기록이 나왔다.
3초 정도만 줄였어도 입상할 수 있었을 텐데...
같은 반에 육상을 하는 여자애가 4명 정도 있었다.
그 애들은 언제나 사이가 좋았다.
남자애들은 대개 그 4명중 누군가를 좋아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173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는 마칭밴드
나는 트럼본에 흥미있단 핑계로 6학년때 밴드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칭 밴드에는 여자뿐으로 남자라곤 나뿐이었다.
175
처음으로 악기를 불었을 때, 생각과는 달리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아서 놀랬다.
소리를 내는 연습만 계속해서 처음엔 별로 재미없었다.
그러면서 차츰 여러가지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낼 수 있다 생각하는데.
179
밴드에 들어가서 얼마 뒤, 같이 트럼본을 맡은 M이란 여자애와 이야기를 하다
좋아하는 사람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트럼펫 맡고 있는 S를 좋아해.
M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181
M이랑 그런 대화를 한 것을 잊었을 무렵, 연습을 끝내고 돌아가던중 M이 다가와서 말했다.
M [S한테 지금 고백해!]
나는 초조해졌다.
184
역시나 바로 고백하거나 하는 건 무리였다.
이유를 물어봐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M은 나를 계속 재촉했고, 결국 3일 뒤로 고백하기로 했다.
그 때의 M이 너무 하이텐션이었기 때문에 내가 화를 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나질 않아.
188
고백하기 전날, 교외 학습을 나갔다.
거의 소풍과 같았다.
어디에 갔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센베를 파는 가게 같은 느낌이었다.
교외 학습은 언제나 즐거웠지만, 고백에 대한 긴장감때문에 그때는 별로 즐겁지 않았다.
계속 내일 일만을 생각했다.
집에 와서도 그 생각만 계속나서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189
그리고 다음날
지금도 날짜를 기억한다.
6월 21일
192
아침부터 고백에 대한 생각에 계속해서 긴장한 상태였다.
심장이 두근 두근 거렸다.
학교에 도착하고 나서도
앞으로 x 시간....앞으로 x 시간....
이런 생각만 했다.
중간에
M [앞으로 x 시간 남았네 wwwwwwwwwwwww]
젠자아아아아앙!!!
193
M, 심하다 wwwwwwwwwwwwwwwwwwwww
195
수업시간이 끝나고, 하교할 시간이 되었다.
밴드 연습까지 끝내고, 마침내 고백할 시간이 온 것이다.
심장이 터질듯 두근 거렸다.
인생 첫 고백.
헌데 밴드 멤버들이 아직 부실에 남아 있는 상황이라,
어디론가 따로 불러내야하는데, 그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 때 M가 협력해줬다.
S와 둘만 있게 해준 것이다.
M, 좋은 녀석이었다...
200
어떻게 고백할까.... 생각해둔 게 하나도 없었다.
우선 적당하게 대화를 나누던 중,
S는 좋아하는 사람있어?
라고 물어봤다.
201
S는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S [xx군도 좋아하는 사람 있어?]
나 [있어.]
S [누구, 누구 www]
나 [너야.]
구토가 나올 정도로 긴장했지만, 어떻게든 말할 수 있었다.
203
첫고백이라면서 뭐야, 이 드라마틱 wwwwwwwwww
206
S [거짓말이야~]
나 [진짜야, 진짜]
S [...진짜...?]
나 [응! 그런데 S는 누구 좋아해?]
S [......]
나 [나...인거야?]
S [정답입니다....]
굉장히 기뻤다
210
축하....하는데...
어째서지...내 눈에서 육수가 흘러.
213
너무나 기쁘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둘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부실에 돌아갔더니.
M [어땠어? 어땠어? wwww]
나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M의 텐션이 올라가더니 나보다 더 기뻐해줬다.
M, 좋은 녀석이었구나.
217
그 후로 졸업까지 즐거운 매일이었다.
학교에 가는 게 이전보다 즐거워서, 매일 해피한 상태.
방과 후나 휴일에는 근처 공원등에서 놀았다.
하지만 단둘이서 논 적은 없었다.
초등학생이었으니까.
키스하거나 손을 잡은 적도 없었다.
초등학생인데다, 나 겁쟁이니까.
가장 진한 애정 표현은 수학 여행 때
담력 시험이 무서웠다고 말하는 S의 어깨를 껴안은 정도.
222
세월은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졸업할 때가 됐다.
초등학교 때는 정말 즐거웠다.
중학생이 되면 데이트를 해보고 싶어...
S랑 같은 반이면 좋을 텐데...
S랑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러며 기대를 부풀리곤 했다.
그리고 중학교 입학.
즐거운 매일이 계속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순식간에 박살났다.
225
입학하자마 나와 S가 사귀는 게 알려졌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녀석도 우리를 놀리곤 했다.
그래서 일까, S랑 말하는 게 부끄러워져서 친근하게 다가서질 못하게 됐다.
휴대폰을 갖게된 이후로는 메일 교환만 하였다.
중학교 입학 후 3개월.
이별을 선고 당했다.
227
반도 달랐기 때문에 S랑 대화를 하지도 않게 됐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다른 여자애 두명에게 반해 고백까지 했다.
메일은 편리했다. 문자를 치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남자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고백은 실패.
너무나 한심했다.
230
그 때 나는 테니스 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느 날 선배들과 임금님 게임을 하고 있었을 때 였다.
그러다 내가 벌게임을 하게 됐다.
그 내용은 여자 테니스 부의 아무나에게 음담 패설을 하는 거 였다.
나는 벌게임 내용을 실행했고, 이 이야기는 바로 여자 테니스 부원들에게 알려졌다.
아...인생 끝났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벌게임이었단 이야기를 하려 했으나 바로 앞에서 말하지 못하고
언제나 처럼 메일로 사과했다.
나란 녀석은 정말 최악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여자애들이 나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나를 보는 시선이 따가웠다.
따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위가 아파서 조퇴까지 했다.
234
그 후 학교에선 여자애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복도를 지날 때도 모두 나를 피했다.
S도 나를 보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렇게 해서 복도에 나가는 것도 다른 교실에 가는 것도 무서웠기 때문에
계속 자기 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내 성격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사이 좋았던 친구도 멀어졌고, 나는 결국 왕따 당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은 대충 이렇게 보냈다.
236
아아아아아아아아
237
그대로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때, 나는 온라인 게임을 만났다.
수험 공부를 해야 될 때 였지만, 온라인 게임에 빠졌던 나는 공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하교하면 온라인 게임, 하교하면 온라인 게임.
이런 매일을 보냈다.
성적은 그렇저렇 나왔기 때문에 사립 고등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그 고등학교는 우리 중학교에서 나밖에 지원하지 않을 정도로 먼 곳에 있는 학교였다.
같은 중학교 출신이 있으면 나쁜 소문이 퍼질테니 그걸 생각해서도 거길 가기로 했다.
입학 시험을 간단하게 합격했다.
그리고 마침내 암울했던 중학생 시절이 끝났다.
240
하지만 나는 성격이 어두웠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도 친구를 만들 수 없었다.
솔직히 될대로 되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는 별일 없이 집과 학교를 왕복했을 뿐이다.
허나 우리 가족은 그 때 붕괴했다.
아버지가 불륜에 어머니가 자살하려 한 적도 있고.
아버지가 명퇴 당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빚 때문에 집세를 내지 못해 이사까지 했다.
이런 저런 일로 내 성격은 더욱 어두워져 PC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241
>>4 와는 반대로 우울한 전개인데....
243
밤만 되면 부모님이 싸웠기 때문에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에로 게임에 몰두했다.
나는 현실에서 눈을 돌렸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중학교 3학년 때의 동급생
나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 없는 듯 했다.
그러니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집안 사정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자나 깨나 그녀에 대한 생각에만 몰두 했기에 수험 공부는 전혀 못했다.
결국 나는 재수생이 되었다.
244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일날 이었다.
그 날 여자 친구에게서 만날 수 없냐는 메일을 받은 나는 두근거리며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리고...
이별 선고를 당했다.
그 이유는 좀 더 공부에 전념해줬으면 해서...라고.
나는 한심한 표정으로 울면서 반드시 합격할 거야!!
라고 소리치며 집에 왔다.
246
눈물나는 이야기다...
247
방을 얻어 나갈 돈이 없기 때문에 친가에서 재수 생활을 시작했다.
3월, 4월.
매일 의지를 불태우며 공부했다. 매일 10시간 이상 공부했다.
일용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모의 시험 응시 비용을 벌기도 했다.
대부업자에게 사정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울었다.
5월,
의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6월, 7월, 8월.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매일 인터넷만 했다.
여름이 끝난 것에 초조해졌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248
....작년의 내 모습이다...
249
내 모습의 현재 진행형인데...
251
9월.
계속해서 타락해가는 내 모습이 싫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아버지 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가난한 집안은 싫다고.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중학생 시절 동창들을 놀라게 해주겠다고 결의했다.
운동도 시작했다.
그러다 오늘 >>4의 이야기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
그러니까 오늘부로 인터넷 끊습니다.
반드시 합격하고 싶으니까요.
끝
254
>>251
남은 시간 열심히 해!!!
255
>>251
수고했습니다!!
라스트 스퍼트!! 노력합시다!!
257
>>251
수고했어!!
합격 기원할께!
258
끝까지 봐준 사람들, 고마워요!
이런 거 처음이라, 재미없는 이야기를 길게 써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쓰면서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262
>>258
네 이야기를 보고 나도 결의를 할 수 있었어.
264
다음은 >>270
쓰고나니 재미없는 인생이었네요.
하지만 남은 인생은 재미있게 살 생각입니다.
합격나고 나면 다시 올께요!
그럼 모두 안녕!
265
수고했어!
천천히 쉬어.
그리고 잘가!!
270
자아~ 그럼 아래에 있는 사람.
노력하세요.
272
>>270
너다 wwwwwwwwwwwwwwwwwwww
275
>>270
노력해서 써봐 wwwwwwwwwww
277
이거참 곤란하게 됐네...
281
나는 뇌가 쪼그라든 채로 태어났어 ww
결국 교육은 특별 학급에서 받았어 wwww
나는 특히 대화를 나누는 기능이 떨어졌어 www
중학교에 가도 친구 하나 없이 외토리 wwww
가족들도 나를 조금 따돌리는 상태 wwww
하지만 졸업하고 나서 나 스스로를 바꾸고 싶어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해서 오프라인 모음에 참가하거나 해보곤 했다.
하지만 결국 안됐어 wwww
추악한 정신 박약아는 결국 외토리 wwwwwwww
인생 끝났다 \(^0^)/
이렇게 태어나서 미안해요. 엄마...
283
>>281
내가 보고 있어.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끝까지 봐줄께.
285
>>281
너.....
286
이렇게 써놓고 보니 엄청 짧은걸.
>>283
고마워...
이야기하고 싶은 거라...
고민은 많지만... 이 스레는 그런 거 적는 곳이 아니니까.
287
자아, 그럼 분위기를 바꿔서 밝은 이야기 부탁해요.
>>295
295
미안 ww
밝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써본다.
298
>>295
기대할께 w
299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소문난 똥통 학교.
나는 깡패같은 건 아니었지만, 주위가 주위다 보니...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런 나에게도 꿈이 생겼다.
미대에 가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미술 학원을 찾았다.
301
처음 학원에 갔을 때 너무 조용해서 놀랐다.
모두들 발걸음 소리까지 줄여가며 걷고 있었다.
얼마 안지나 깨달은 거지만, 수험이 코앞인 상태여서 그런 것 같았다.
수험도 까먹고 있던 바보 같은 나, 사실 대학교 이름도 잘 몰랐다.
302
미대에 가려면 우선 뎃생이 기본인 듯 했다.
과에 따라 다르지만...
처음으로 그린 뎃셍은 아직도 기억난다.
강사의 지도 아래 그린 텐구 그림이다.
305
솔직히 말해 나는 뎃셍실력이 엉망진창인데다 평면 구성 자체를 못했다.
우리 고등학교에서 대학 입학 시험을 치는 녀석은 나 밖에 없었다.
다들 졸업후 취직할 자리를 정해둔 상태였다.
나는 머리가 별로 안좋기 때문에 공부하는 방법 같은 건 전혀 몰랐고.
시험은 연필을 굴려서 때려 맞췄다.
308
당연히 불합격.
나는 재수생이 되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떨어질거라 생각도 안했기에 울었다.
학원에서 알게된 사람들은 유명 미대에 갔고 나 혼자만 재수생이 되었다.
그 후 학원을 전전하며 말도 안되는 스케줄로 공부에 몰두했고,
결국 건강까지 해치게 됐다.
주위 사람들은 대학 생활을 만끽하며, 겉으로는 나를 응원한다고 말했다.
결국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됐을 때, 내 몸에 이상이 발생했다.
309
점차 혼자서 자는 걸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내 방에 누워 혼자서 '괜찮아, 괜찮아.' 라는 말만 거듭ㅎ랬다.
뎃셍 실력도 늘지 않고 줄어가는 시간에 초조해지기만 했다.
그 때쯤에는 미술 학원과 일반 학원을 왕복하는 일이 잦았다.
전철에 타면 언제나 참고서를 들고 읽었다.
태어나서 한가지 일에 이렇게나 몰두한 것 처음이었다.
부모님도 나를 응원해줬다.
낙관적으로 생각해준 건 부모님 뿐이었다.
현실의 벽은 두터웠다.
나는 또 떨어졌다.
그리고 울었다.
부모님에게 어떤 얼굴로 떨어졌단 말을 해야 할지...
310
안타까운 느낌이다.
나도 비슷한 똥통 학교 출신이라 일반적인 진학교와의 차이를 가슴이 저릴만큼 잘알았아.
그러니까 힘내!!
312
부모님 앞에서 울면서 또 떨어졌단 사실을 고했다.
부모님은 그럼에도 나를 응원해줬다.
그래서 나는 삼수생이 되었다.
수험 공부를 다시 하게 된 건 괜찮았지만, 6월쯤 부터 어째서인지 학원에 가지 않게 됐다.
2주일 정도 방에 틀어박혀만 있었다.
가벼운 우울증이 생겨, 약을 처방받아 먹으며 인터넷만 했다.
대학 같은 건 안가도 괜찮잖아...
이런 생각도 했다.
314
>>310
고마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내 주위 사람 모두가 사라졌다.
부모님도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메일이나 전화는 모두 무시했다.
나 자신이 너무 비참했으니까.
위험한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315
그래서?
317
조금 회복된 게 지금.
며칠 전, 미술 학원에 갑자기 돌아갔다.
강사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받아 주었다.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니까...
꼭 합격하고야 말겠어.
역시 자신의 길은 주위 사람과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여는 수밖에 없으니까.
...이런 생각을 한 삼수생이었습니다.
어설픈 문장이라 미안해요.
끝
320
>>317
수고했어!
322
>>317
환경은 다르지만...나도 미대를 목표로 하고 있어.
그러니까 널 응원하고 싶어.
320
수고했어!
유명한 화가가 되면 꼭 싸인해줘야 해!!
323
>>320
좋아 www 기다리고 있도록 wwww
그럼 다음 사람
>>325
다음이야말로 밝은 이야기 부탁해.
325
잡았나...?
328
기대한다!!
330
좋아. 재미있는 인생은 아니지만 노력해서 써볼까.
우리집은 부모님에 15살 연상 언니, 10살 연상 오빠, 2살 연상 오빠가 있는 나름 대가족.
조금 낡은 집에서 살았다.
둘째 오빠가 심술 궂었기 때문에 언제나 시달리며 살았다.
언니는 미인에 상냥했다.
이 가족구성은 내가 3살쯤 됐을 때이다.
그 떄 일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느 날 잔뜩 취한 아버지가 칼을 들고 어머니에게,
[너를 죽이고 나도 죽는다!!]
라고 소리쳤다.
둘째 오빠가 나를 꼭 안고 코타츠 아래에 숨었던 게 기억난다.
그러던 중 내가 4살이 됐을 때였다.
어머니가 커다란 가방에 짐을 챙기더니,
[일하러 갔다올께.]
그러면서 나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333
유치원에서,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
라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보모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복도로 데리고 가선,
[무슨 말이니?]
라고 물어봤던 걸 기억한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초등학교는 1학년에서 3학년까지 같은 사람이 담임을 맡는 시스템이었다.
담임 선생은 화장이 굉장히 진한 아줌마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우리반 아이중 한명은 맞아서 멍까지 들었다.
화를 내기 시작하면 반 아이들 한명 한명이 전부 사과할 때까지 화를 풀지 않았다.
교실의 오르간도 몇대 때려 부셨다.
한참 뒤에 알게 된 거지만, 이 담임은 아이를 싫어했다는 것 같다.
학교가 그런 상태라 나는 학교에 가는 게 싫었다.
336
쓰는 거 잊어버렸네.
우리 큰 오빠랑 큰 언니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집을 나갔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우리 집안 사정은 상당히 복잡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결혼을 안한 동거 상태였고, 큰오빠와 언니는 어머니가 데려온 아이였다고.
그래서 아버지가 덤으로 데려온 애들을 키울 돈은 낼 수 없다고 해서
어머니가 술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면 바람피우는 거랑 똑같잖아.
라면서 싸웠고, 그러다 결국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이야기로 되돌아 와서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해도
우리 아버지도 화나면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기 때문에
학교를 쉴 때도 굉장히 고생했다.
아침에 오빠랑 아버지랑 함께 집을 나서는 게 일과였기 때문에
집을 나선 뒤 나중에 혼자 집에 돌아오곤 했다.
338
무거운 이야기에도 정도가 있어. 너 w
339
>>336
어라....
화면이 희미해져서 안보인다.
340
>>338
미안 www
하지만 끝까지 쓸테니까 제대로 따라와줘.
그렇게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계속될리는 없었다.
어느 날 휴일, 아버지에게 엄청나게 맞았다.
통지료에 결석 날짜가 써있었던 것이다.
그게 맹점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엄청나게 화는 내면서,
[거짓말로 나를 속이지 말고 나한테 당당히 말해라!!]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음부턴 아버지가 공인한 상태로 학교를 쉬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일하러 나간 뒤 나 혼자에게 집 지키게 하는 건 걱정된다면서
회사에 함께 가게 되었다.
회사라 해도 아버지는 트럭 운전수 였기 때문에 그 트럭을 타고 전국을 함께 다녔다.
341
굉장한 걸...
그건 그것대로 귀중한 체험.
342
그래서 아버지랑 어머니는 좋아해?
343
>>342
응? 나한테 묻는 거야?
아버지는 좋아해. 어머니는....조금 복잡한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좋아해.
굉장히 즐거웠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아버지와 둘이서 주먹밥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이러면 안된다는 것도 알았다.
공부를 해야 된다는 것도.
오빠는 착실하게 학교에 나가서 친구도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오빠 친구와 자주 놀았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오빠의 1~3학년까지의 담임이 우리집에 와서
[너희 오빠 담임도 올해로 끝나는데. 내가 국어 담당이니까...국어 학습방에 나오지 않을래?]
이런 말을 했다.
이 선생님은 아버지와도 친한 사이로 신뢰하고 있었기에 승낙하기로 했다.
345
보고 있어. 힘내라!!
346
3년 정도 학습방에 다녔다.
그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갈 때까지.
그 선생님의 전근과 동시에 오빠의 4~6학년 담임이,
[너를 위해서 특별 학급을 만들었어. 오지 않을래?]
이런 연락을 줬다.
뭐가 뭔지 몰랐지만, 일단 승락했다.
우리 학교에 처음으로 불등교아를 위한 학급이 생겨난 것이다.
여기에 나가게 되면서 반에도 얼굴을 내밀려 노력했다.
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았던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나는 반에서 붕뜬 상태였다.
1 학년 무렵 친구라 생각했던 아이의 집에서 놀고 있을 때,
[다른 애들이 너랑 같이 노는 걸 아는 건 싫으니까. 만약 누가 오면 베란다로 나가.]
그러면서 베란다에 신발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덧붙여 그 아이가 말하길, 반아이들을 대상으로
[xx(나)를 싫어하는 애는 손들어.]
그런 앙케이트를 했을 때 손을 들지 않은 애가 없었다고.
나의 초등학교 추억은 이런 느낌이다.
다음은 중학교인데...너무 길었나? 괜찮을까?
347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길지 않았어. 괜찮아.
348
괜찮아. 계속 써줘.
352
내가 다른 사람의 인생속에 있는 듯한...
그런 착각이 드는 이상한 스레다.
353
괜찮아.
그러니까 너의 페이스대로 적어줘.
354
결국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나는 집단 생활을 조금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 대하는 게 눈물이 나올 정도로 서툴러.
초등학교 때 친구였던 아이 A와 같은 반이었다.
입학 초, 앞자리에 앉은 여자애 B가 친근하게 굴어줘서 엄청 기뻤다.
그 아이의 초등학교 동창이랑 같이 세명이서 교환 노트하자는 권유도 받았다.
글씨 엄청 못써지만, 노력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적었다.
A와는 우연찮게도 같은 동아리가 소속되었다.
귀가하는 길도 같았기에 같이 하교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B가 나한테,
[내가 초등학교때부터 알고 지내는 선배가 A를 싫어하니까 이제 이야기하는 거 그만둬.]
이렇게 말했다.
그런 불합리한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 나는 계속해서 A와 하교했다.
결국 B가 나한테 벌컥 화를 냈다.
[A한테 이 노트 보여주고 있지? 이런 노트 필요없어!!]
B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하며 노트를 내던지듯 돌려줬다.
B의 친구들한테 무시당했기에 굉장히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초등학교때부터 나를 싫어한 애들이 학교에 잔뜩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에 맞물려 나는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357
아...........
359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반의 남자애들은 내 옆을 지나갈 때마다.
[어이~ 뚱땡이.]
라고 말했고, 신발장 안에는
[나도 당신처럼 기분 나쁜 인간입니다. 좋아합니다.]
이런 편지가 들어있기도 했다.
화장실 청소 당번을 정할 때,
[xx는 화장실 청소에 어울려.]
라며 냉소썩인 말을 들었다.
동아리와 우리집만이 내 마음의 오아시스였다.
이 표현 조금 기분 나쁘네.
나와 A는 귀찮은 일만 반의 귀찮은 일은 전부 떠맡아야 했다.
특히 가정과 수업때가 힘들었다.
어느 날인가 진짜 다치는 바람에 담임한테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담임이 그애들을 호출해 물었지만 시종일관 모르는 일이란 말만 했다.
너무나 분했다.
몇번이나 부엌칼을 내 배에 꾹꾹 찔러대곤 했다.
반항하고 싶어도 너무 무서워서 무리였다.
모두를 죽여버리고 싶단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애들한테도 가족이 있단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나서 할 수없었다.
그렇게 중학교때는 우울한 일상이 계속됐다.
363
.....화면이 잘 안보인다...
364
중학교때도 학교에 잘 가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내신 점수가 좋았다.
성적도 자신있는 과목의 경우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다 진학할 고등학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공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가고 싶은 고등학교도 없었다.
동아리 친구한테
[공업 고등학교라면 같은 학교에 갈수 있을지 몰라!]
라는 말을 듣고 그러기로 승낙했다.
그렇게 해서 공업 고등학교에 추천을 받아 들어가게 되었다.
같은 반에 중학교때 같은 반이었던 남자애 두명이 있어서
입학과 동시에 나에 대한 험담을 시작했지만,
여자애들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가 없는, 남자뿐인 공업 고등학교라서 인가.
[고등학생이나 되서 유치하게 무슨 헛소리야. 네놈들은.]
다른 남자애들은 나에 대한 험담을 이런 자세로 받아들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소문이 사라지자 학교나 공부도 재미있어졌다.
왠지 인생이 즐거워졌다.
그렇게 점차 텐션이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버지가 죽었다.
365
아아아아아....안돼에에에에에에.....
367
..............................
370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조금 전에 좋아해? 라고 물어봐서 미안해에에에에에에에!
371
눈물 나오는 스레다....
375
오빠는 그 무렵 고등학교를 졸업해, 회사에서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날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저녁 10시쯤이었을까.
아르바이트가 슬슬 끝날 무렵 전화가 울렸다.
아르바이트 동료들이, 남자친구에게 전화왔냐고 놀렸지만.
그런 게 있을리 없는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먼 곳에서 살고 있던 삼촌의 전화였다.
[아버지가 쓰러졌어! 빨리 병원에 가봐라!]
삼촌은 그렇게 말했다.
당황한 나는 아르바이트를 조퇴하고 자전거를 타고 재빨리 병원으로 향했다.
가면서 오빠한테도 연락했다.
병원까지 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평상시 냉정한 상태였다면 좀 더 빨리 갈 수 있었을 텐데.
병원에 가니 아버지의 회사 동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의사가 말하길, 뇌일혈이라고 했다.
의사는 몇번이나,
[괜찮아요. 간단한 수술로 어떻게든 되니까.]
이 말을 반복했다.
그림을 보여주며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울면서 수술 동의서에 싸인했다.
380
수술이 시작되고 대기실에서 계속 기다렸다.
아버지랑 잘 알고 지내던 회사 동료가 친척들에게 일일히 연락을 해줬다.
몇 시간 뒤 오빠가 택시로 도착했다.
나는 간단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본 적도 없는 친척들이 한명씩 모여들었다.
친척 중에서 부자인 사람들도 달려와 줬다.
그러던 중 의사가 나와서 가족들에게 할말이 있다고 했다.
가족 두 사람이 10대라는 걸 안 의사는 친척 어른 한명을 불러왔다.
[유감입니다만, 수술은 실패했습니다. 환자 분은 뇌사 상태에 빠졌습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의미를 알지 못했다.
[연명 조치를 하시겠습니까?]
친척 어른은 우선 먼곳에 사는 삼촌이 올 때까지 살아 있게 해달라 말했다.
나는 패닉 상태였다.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병원 복도에서 오빠랑 등을 맞대고 앉아,
[어머니도 없는데, 아버지까지 사라지는 거야?! 너무 하잖아!!]
그러면서 울었다.
381
이런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나는...
383
내가 얼마나 인생을 낭비중인지 잘 알았다.
384
힘내라는 말밖에 할 게 없네...
385
그때를 생각하니 조금 눈물이 나왔지만, 너희들을 생각하니 기운이 났어.
모두들, 다른 사람과 인생을 비교하며 우울해하지마.
불행이 인생보다 위에 있는 건 아니잖아?
자신은 자신의 인생을 살면 되는 거야.
386
넌 어째서 그렇게 적극적인 거야...
더이상 나를 울리지마...
387
의료 사고가 아니라 손쓸 방도가 없었다는 건가.
389
>>387
아마도 그것.
우리 아버지 고혈압이었으니까.
그리고 새벽쯤되서 삼촌 가족이 도착했다.
삼촌이랑 오빠가 아버지를 보러 가자고 말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건강했던 아버지가...
오빠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매년마다 함께 캠프를 하러 가서 웃고 떠들던 아버지.
아직도 50대인 아버지가...
지금 집중 치료실에서 머리를 박박 깍은 채 혀를 내물고 누워 있다는 거야?
거짓말이야...
그렇게 생각했다.
[저런 거 아버지가 아니야!!]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 하면서 아버지를 보러가길 거절했다.
그렇게 혼자 대기실에 앉아 있자니, 친천 어른 중 부자인 사람이 나한테 와서
[할머니네 집 권리서를 찾아야 되니까. 너희 집에 가자!]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의미를 몰랐지만, 너무 강경한 기세라서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그 사람 차로 집까지 갔다.
난 울었다.
왜냐면 이 집에는 더이상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렇게 울면서 그 권리서인가 하는 걸 찾았다.
헌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친척은 나를 다시 병원까지 데려다줬다.
391
...싫다...이런 전개....
393
너무 탐욕스럽잖아...
397
드라마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저런 사람을 봤기 때문에 공감한다.
400
우와...아직도 잠이 안와.
슬슬 자고 싶은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잘 수가 없어.
401
아버지가 쓰러지고 하루가 지났을 무렵,
간호사가 고비라면서 나와 오빠, 삼촌을 호출했다.
숙모가,
[마지막 인사를 하세요. 지금까지 고마웠다고. 천천히 쉬라고.]
나는 역시나 인정할 수 없었기에 싫다고, 다음주 생일 축하해달라며 울면서 아우성쳤다.
그러다 아버지의 심박이 안정되었다.
결국 고비를 넘겼다.
나는 숙모한테 지독하게 혼났다.
어째서 아버지를 안심시킬만한 말을 안한거냐고
생일은 대체 무슨 소리냐고.
언제나 내 생일이 되면 일하고 돌아와 부엌에 서있는 아버지에게,
[오늘 무슨 날인지 알고 있어?]
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아버지는,
[모르겠는데. w]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 날의 저녁 식사는 평소보다 좀 더 호화롭고 케이크도 같이 올라오곤 했다.
평상시와 같은 그런 하루를 맞이하고 싶었다.
단지 그것 뿐이었다.
406
그 고비 이전 의사가
[2단계 연명 조치는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었다.
친척들은 자신들에게 결정할 권리가 없다며 우리에게 맡겼다.
오빠는 내 얼굴을 보며 내게 맡긴다고 했다.
멍해 있던 나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고비가 오면 울면서 아우성치는 걸 반복했다.
아버지가 쓰러진지 3일이 지났다.
그러자 친척들 사이에서 점차 불만이 솟기 시작했다.
[내일 회사에 가야 된다구.]
[저런 상태에서 계속 살려둬도...]
[솔직히 민폐네요...]
모두들 피곤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들리지 않게 말해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
3일 째 되던 날, 또 고비가 왔다.
그 때 삼촌과 오빠는 밖에 나가고 없었다.
의사가 안정된 상태니까 계속 붙어있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나도 며칠째 계속 울며 조금도 자지 않았기에 초췌해진 상태였다.
숙모는 내 이름을 조금 강한 어조로 부르며 말했다.
[이제, 아버지 없이 살아가야 해. 알겠지?]
그렇게 무정한 어투로 말했다.
아버지의 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멈췄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오빠와 삼촌이 달려 들어왔다.
두 사람은 임종에 늦었다.
408
....눈이 흐려져서 모니터가 안보이지만 계속 보고 싶어....
409
제발...그녀를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410
아버지는 너를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 있었던 거야...
412
그 후 오빠가 상주로 장례식을 치뤘다.
오빠나 나나 아직 미성년 이었지만, 친척이 필요한 건 아니었기에
지금까지 처럼 원래 살던 집에서 계속 살기로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될대라 되란 심정이었던 나는 학교를 자주 쉬었다.
그러다 숙모의 충고를 받고 근처 국공립 대학에 추천을 받아 기적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 독신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봤자 오빠와 떨어져 사는 것 뿐이지만.
그러다 왠지 컨디션이 나빠졌다.
강의실에 있을 때 가슴이 답답했다.
자기 전 안좋은 일만 생각나 잠에 들 수 없었다.
대학에서 알게 된 친구랑 대화를 나누다 깨닫고 보니
옷도 안갈아 입은 채 이불속에 쓰러져 있었다.
다음 날 친구에게 확인한 결과,
꿈이 아니라 확실히 어제 대화를 했고, 집근처에서 헤어졌다고.
결국 정신과 카운셀링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원에 가는 게 힘들었기 때문에 그러다 가지 않게 되었다.
417
예전부터 계속,
아버지를 죽인 건 나다.
그 때, 좀 더 빨리 병원에 도착했다면...
연명 조치를 해달라고 했다면...
이제 괜찮다고 거짓말하지 않았다면...
이 생각이 매일 저녁 되풀이됐다.
초등학교때나 중학교때 왕따 당하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모두들, 모두들 나를 싫어했다.
나랑 사이 좋게 이야기나누던 친구도 내가 없는 곳에서 내 욕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렇게 생각하니 정신이 이상해졌다.
그러다 20살이 되기 전에 뭔가를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 맥락 없이.
우선 시청에 가서 호적을 확인했다.
그걸 토대로 어머니의 호적을 확인, 현재 살고 있는 주소를 알아냈다.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420
급전개
422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4살 무렵의 기억에는 아주 키가 컸던 것 같은데...
굉장히 작아져 있었다.
너무나 작은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엄청 시골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봤을 때는 의심스러워 하는 표정이었지만,
호적을 내보이니 눈물을 흘리며 맞아주었다.
우선.
[낳아줘서 고맙습니다.]
이 말을 하고 하니 눈물을 왈칵 쏟아졌다.
어머니는 고관절이 나빠져서 인공 관절을 넣었다고 했다.
그래서 바닥에 앉을 수 없다고.
의자에 앉아 옛날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버지랑 헤어진 뒤 나랑 오빠를 보러 집 근처에 왔던 적이 있다고 했다.
큰 오빠는 지금 교도소에 있다
언니는 결혼해서 아이를 3명이나 낳았다고 했다.
그간 쌓였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429
오빠는 대체 무슨 짓을....
430
큰 오빠는 마약에 손을 댔다고 했어.
어머니한테는 내 상태를 말할 수 없었다.
언젠가 제대로 돈을 벌게 되면 지금까지 함께 살 수 없었던 만큼 효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에 복귀하는 건 힘들다 생각해서 올해 3월 대학은 그만두었다.
중학교 때의 아는 사람을 만나기 싫었기에 먼곳으로 나왔다.
지금은 아르바이트하면서 쓸쓸하게 살고 있어.
환경이 바뀐 탓인지 컨디션은 점차 좋아지고 있어.
밤에도 제대로 잘 수 있게 됐지.
오늘은 밤을 새게 됐지만...
대인 관계도 개선되서 이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일도 적어졌어.
좀 더 시간이 걸리지도 모르지만, 정사원이 되는 게 지금의 꿈.
마지막이 엉망진창이라 미안하지만 이걸로 끝.
긴 이야기에 따라와줘서 고마워.
다음을 부탁해.
>>433
432
굉장한 이야기였다...
수고했어.
433
가속
436
>>433
다음은 네 이야기를 들어볼까?
440
음? 나인가?
유치원때 선생님, 이렇게나 똑똑한 아이는 처음본다.
초등학교 1학년때 선생님. XX는 좋은 아이야.
초등학교 3학년때 선생님, XX는 우수해.
그러다 중학교 수험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학원을 다녔다.
그 무렵에는 꽤 성적이 좋았다.
442
숙제 같은 거나 공부에 노력하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해가 지날수록 라이벌은 증가하고 성적은 마구 떨어졌다.
하지만 자존심은 남들 두배로 높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
결국 떨어졌다.
445
공립 중학교에 진학했다.
성적은 중상위권.
헌데 수험 공부 도중 내 몸의 밤낮이 역전된 것 같았다.
새벽에는 깨어있고, 아침 나절이 되면 잠이 들어 깨어나질 못했다.
447
병원에 가니 혈압이 낮아졌다고 했다.
그렇게 약을 먹으며 일주일에 1회 정도 저녁에 등교, 물론 출석으로 쳐주진 않았다.
밤에는 PC와 라디오.
시험도 어떻게든 쳤다. 성적을 떨어졌다.
중학교 2학년, 약 먹는 걸 멈추고 상태를 보기로 했다.
아침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어서 저녁 등교는 멈추지 않았다.
성적은 더욱 떨어졌다.
그리고 지금 침대 위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지금 14살...
제대로 학교에 가고 싶다.
끝
다음은
>>450
450
가속
457
쓸 수 있을 만큼만 쓴다.
초등학교때
야구를 좋아했지만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기에 근처 소프트볼 팀에 들어갔다.
우리 학교 애들 중 가입한 건 나뿐이었다.
소프트볼 경험을 없었지만, 4번 타자가 되었다.
초라한 타이틀이지만, 우리 지구 연간 홈런 기록을 가졌던 건 나의 조그만 자랑거리다.
괴롭힘은 변함없었지만.
458
중학교에 들어갔다.
야구부 선배가 깡패였다.
얼굴이 짜증난다.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불합리한 이유로 모두들 두드려 맞았다.
다행이 그동안은 괴롭힘 당한 적 없지만.
무릎이 망가져 야구를 더이상 할 수 없게 됐기에 생물부로 이적했다.
459
생물부는 남자가 나 빼고 1명밖에 없었다.
1학년 위인 선배들은 6명에 전부 동인녀였다.
동급생은 두 사람이었는데, 둘 다 뚱뚱했다.
한명의 아버지가 진짜 야쿠자라고 였다.
그 아버지는 그 애가 관련된 도둑 소동때 한번 봤지만,
옷소매로 문신이 보이는 리얼 야쿠자라서 뿜었다.
460
날라리로 보이는 사람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다른 선배들과 친해졌다.
동아리 시간은 거의 독서 타임으로 보냈기에 나도 적당히 BL 책을 읽거나 했다.
처음 봤을 때는 기분 나빴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져서
결국 나 스스로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다.
461
처음에는 생물부안에서만 알려졌지만, 날라리가 내가 그린 일러스트를 반 애들에게
알리는 바람에 나는 그날부터 호모라 불리며 다시 괴롭힘 당하게 되었다.
464
호모 기분 나빠, 라는 말을 들으며 특히 여자애들은 나를 멀리했지만.
초등학교 때보단 덜했다.
그러다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A가 나를 감싸주었다.
농구부 주장 후보에 멋진 녀석이었던 A는 나랑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지만,
여자애들과의 사이를 중재하며 나랑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여자애들의 비난도 점차 줄어들었다.
465
어느 날, A가 나한테 일러스트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걸 보여주자 그는 내가 진짜 호모가 아니냐고 물었다.
당연히 아니라고 말하자, A가 자신은 호모라고 말했다.
466
에에에에에에에엣?!!
467
사귀어달란 말을 들었지만, 지금까지의 은혜를 공제해도 그건 무리라고 거절했다.
그러자 A가 말하길, 자신이 나를 도와준 건 내가 그린 일러스트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A의 그림을 그렸다.
알몸이었던 A는 엄청 흥분한 것 같았다.
그렇게 1 시간에 걸쳐 A4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려준 뒤에도 친구로 남아있었달란 A가 말했다.
그 말을 할 때의 A는 멋있었다.
468
미안, 웃었다 wwwww
469
이건 좀 wwwwwwwwww
470
나를 감싸 준 것은 A 말고도 있었다.
동아리 선배들이다.
그녀들은 재미로 나한테 일러스트를 그리게 한 것에 책임을 느껴서
동아리 도중 직접 만든 쿠키를 주기도 했다.
그 중 한사람과는 사귀는 사이로 발전했다.
일단 B라고 할까.
473
A 한테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걸 숨겼다.
그는 현재 내 고향에서 게이바의 점장을 하고 있다.
한번씩 고향에 갈 때마다 얼굴을 보곤 한다.
그 그림은 어떻게 했어? 라고 물은 적 있는데.
소중히 보관해뒀다고 말했다.
조금 기뻤다.
B와는 학년도 집으로 가는 방향도 달랐기에 학교에서 만나 이야기 나눈 게 다였다.
BL책은 나눠봐도, 실제로 야한 일은 하지 않았다.
서로 부끄러웠기 때문에.
474
A, 좋은 녀석이다. wwwwwwwwwwww
476
결국 B와는 아무 일 없이 헤어졌고
지금 나는 미대에서 제품 디자인 공부하고 있다.
끝!
477
수고했어.
481
수고했어.
너의 역사.
잘 봤다.
485
좋은 이야기...
정말 고마웠어.
이런 이야기들 하나 하나가 얶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거겠지.
490
모두에겐 각자의 드라마가 있어.
그 드라마에선 자신이 주역이고 각본가다.
드라마가 희극이 될 지 비극이 될 지는
결국 주인공인 자신의 몫인 거야.
====================================================================
1
그러니 >>4의 인생이야기라도 듣자.
노력해라!!
4
(´・ω・`)
6
>>4
기대한다.
10
이야기해볼까.
대학까지는 순조로웠다고 생각해.
그 이후부터 방황했다는 느낌.
11
초, 중, 고를 지나는 동안 공부는 나름대로 잘했고, 대학에서도 별 문제는 없었다.
공부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그럼 교수를 목표로할까.
...생각했지만, 현실은 무리였다.
12
교수 자리는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외에는 될 수 없다는 걸 알게되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남을 위해 자신을 낮출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결국 포기했다.
14
공부는 좋아하지만, 새로운 사물을 추구하는 일은 잘 못한다.
공부라는 건 이미 있는 걸 알고나면 끝이지만, 교수의 길은 그것과는 다르기도 하니까.
그걸 깨닫고 결국 학교에도 나가지 않게 됐다.
13
좀 안타깝다.
15
계속해줘.
17
매일 매일 별생각 없이 보냈다. 멍한 상태로 보낸 적도 잦았다.
일단 학교에 얼굴을 내도, 몇시간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다 돌아오곤 했다.
시간을 정말로 헛되게 보냈다.
21
나는 나아가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장래는 어떻게 하지. 내일은 어떻게 할까.
어느 것 하나 알 수 없었다.
24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시간만 보내선 학교에 있어도 무의하다.
결국 퇴학 수속을 밟기로 했다.
이 후의 일에 대한 생각이라도 전혀 없었다.
26
학교 홈페이지로 퇴학 수속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담당 사무실에서 종이를 받아, 필요한 것을 써서 제출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그 사무실이 어디있는지 알 수 없었다.
29
이제 아무래도 좋으려나.
이런 생각을 하며 흔들 흔들 학교안을 걷던 중, [학생 상담실] 이란 명패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런 곳도 있었지.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일단 진로 상담이니까, 이곳에서 수속을 하는 사무실이 어디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31
[실례합니다. 퇴학 수속을 어디서 하는지 알고 싶은데요.]
상대는 곤혹스런 얼굴이었지만,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용건이 끝났기에 바로 돌아가려 했는데...
상대가 나를 불렀다.
35
아무래도 퇴학하는 이유를 알고 싶은 것 같았다.
어차피 한가했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학교에서 아무 것도 안하는 날만 계속 되고 있어서...]
[뒷일에 생각한 건 없지만, 일단 학교는 그만두려고...]
상대는 부정도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다만 내 말이 끝날 때마다 비슷한 맞장구만 쳤다.
이런 짓을 해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37
10분 정도로 내 이야기를 끝났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에 돌아가려 했더니, 내일 일정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러다 결국 또 이곳에 와서 이야기를 하잔 약속을 하게 되었다.
상대방 의도에 흘러가기 쉬운 나...
39
완전히 나같은 녀석이다. wwwwwwwwwwww
41
실제로 할 것도 없는데다, 약속을 어기는 것도 개운치 않았기에 다시 상담실로 갔다.
이번에는 이야기를 하면서 약간의 게임을 했다.
모형정원 게임이란 것으로 일정 범위안에 모형을 늘어놓으며 장식 하는 게임이었다.
유치한 놀이였지만, 나 자신은 그 놀이가 너무 즐거워서 두근거릴 정도였다.
작품이 완성되고 사진을 찍었을 때는 달성감까지 느꼈다.
또 와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 다음에 언제 시간을 낼 수 있는지 알려줬다.
43
다음에 왔을 때는 다른 게임을 했는데, 그것 역시 재미있었다.
부품을 준비하고, 이를 늘어놓아 작품을 만든다.
그게 완성되었을 때는 정말 감개무량한 기분에 빠졌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나지만,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싶은 기분.
46
나에겐 학교외엔 길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취직해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기분이 샘솟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취직한다..... 새로운 나 자신의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49
하지만 현실은 역시나 어려웠다.
구할 수 있는 직장은 전부 내 전공과는 관련이 없는 곳 뿐.
지금까지 배워온 모든 것이 백지가 되는 걸, 나는 견딜 수 없었다.
53
그러면 공무원은 어떨까?
법률을 0부터 공부해가는 건 괴롭지만...
하지만 공부하는 것에는 자신 있고, 공무원 시험을 치는 것 외엔 방도가 없을 거 같았으니까.
글러먹은 생각을 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55
헌데 공교롭게도 그해의 공무원 시험은 전부 끝난 상태.
있는 거라곤 임시 채용 관련 밖에 없었다.
....일단 연습이나 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시험을 치기로 했다.
고졸 레벨이니까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할 필요도 없다 생각했다.
그리고 시험 당일.
사람이 지나치게 많았기에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59
소설처럼 일석일조로 각성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든다.
60
2개월 뒤 결과가 나왔다.
일단 [채용 후보자]로 선택되었다.
일손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연락을 주겠단 말을 들었다.
시험에는 합격했지만....마냥 기뻐할 순 없었다.
61
며칠 뒤, 상담실에 가서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임시 직원으로 합격했지만, 채용은 안됐다고.
그랬더니,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시험에 붙었다는 것과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단 것 때문에.
듣고 보니, 바뀐 건지도 모른다. 나 자신.
왠지 그게 기뻤다.
71
임시 직업 시험을 거쳐, 얻은 것은 분명 있다.
지금부터라도 나에게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학교를 1년 휴학하기로 했다.
퇴학하는 쪽이 좋을지도 모르지만...안전 장치는 하나 정도 마련해두고 싶다.
떨어지고 나서 아무 것도 없다....라는 건 역시 아직 무서우니까.
77
그렇게 새로운 생활을 준비하던 중 3월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설마....하는 생각을 했더니, 확실히 그 설마가 맞았다.
임시 직원으로 올 수 없는지....질문을 받았다.
80
학교를 1년간 쉬는 수속을 마쳤을 때를 노린 듯한 타이밍.
임시 채용 기간도 정확히 1년 정도라고 했다.
시험 공부와 양립하는 건 힘들지도 모르지만....모처럼의 기회니까.
다음날부터 임시 직원으로 일하기로 결정했다.
83
임시 직원을 하면서 여러가지로 컬쳐 쇼크를 받았다.
차 끓이기, 도시락 주문, 쓰레기통 비우기, 복사 용지 채워넣기.
아랫사람으로써 당연한 일의 연속이었지만, 나에겐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줬다.
일이 끝난 뒤엔 평가를 받고, 감사 인사를 받았다.
나 자신에게도 사회인으로써 활약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옆에서 보면 매우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그것이 매우 기뻤다.
84
나도...노력해볼까....
88
임시 직원인 덕분에 자유 시간이 많다는 점도 메리트가 됐다.
일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참고서를 보며 공부를 했다.
집에 있을 때보다 공부하기엔 훨씬 더 좋은 환경이었다.
거기에 급료까지 받을 수 있다. 실로 이상적인 환경이 아닌가.
91
이건 정말 약이 되는 이야기다....
96
힘내라!! >>4
힘내라!! VIPPER
힘내라!! 나
100
어떤 한심한 스레가 펼쳐질까 했더니....
좋은 의미로 배신당했다.
104
임시 직원 일을 하는 동안, 여러가지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직장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고, 서류 작성법도 배웠다.
솔직히 처음 들어갔을 때는 별로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열심히 하는 동안 여러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 1년간을 나는 정말로 고맙게 생각한다.
107
그리고 현재, 공무원 시험에 무사히 합격해서 일에 힘쓰고 있다.
소망대로 나아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좀 더 노력하고 싶다.
꼴사납지만, 이쯤에서 내 반생에 대한 정리를 마친다.
끝
110
>>107
공무원 시험 합격 축하해
네 덕분에 기운낼 수 있었어.
113
>>4
수고했어.
최근 낙담하고 있었는데, 희망이 생긴 기분이야.
130
>>4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
고마워
139
지정하는 게 좋으려나.
>>144
그럼 난 이만 자러간다. 안녕
141
>>139
잘자
144
가속
145
>>144
기대한다.
151
허들이 너무 높은데...
>>4 같이 좋은 이야기 쓸 수도 없고, 장문을 쓰는 것도 처음이니까.
시간 때우기 정도로 생각해줘.
155
>>151
문제 없다
158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일단 초등학생때부터 이야기해볼까.
초등학생 무렵의 나는 친구도 많고, 인기도 많았다.
반에는 전부 좋은 애들 뿐이라, 왕따 같은 것도 없었다.
점심 시간에는 모두 함께 피구를 하기도 했다.
이따금 여러명 모여서 마을 쓰레기 줍기를 하기도 했다.
163
좋은 이야기다
166
매일이 즐거웠다.
감기 걸려서 학교 쉬었을 때, 학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4학년에서 6학년때까지 육상을 했었다.
연습 하고 싶은 녀석만 남아서 대회를 목표로 연습에 매진했다.
100m 달리, 릴레이, 장거리 달리기.
1년에 대회가 3개 있었기에 전부 참가했다.
발이 빠른 것도 아니었지만.
169
모든 대회에서 별 다른 기록은 낼 수 없었지만, 즐거웠다.
특히 장거리가 즐거웠다.
장거리는 제법 기록이 나왔다.
3초 정도만 줄였어도 입상할 수 있었을 텐데...
같은 반에 육상을 하는 여자애가 4명 정도 있었다.
그 애들은 언제나 사이가 좋았다.
남자애들은 대개 그 4명중 누군가를 좋아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173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는 마칭밴드
나는 트럼본에 흥미있단 핑계로 6학년때 밴드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칭 밴드에는 여자뿐으로 남자라곤 나뿐이었다.
175
처음으로 악기를 불었을 때, 생각과는 달리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아서 놀랬다.
소리를 내는 연습만 계속해서 처음엔 별로 재미없었다.
그러면서 차츰 여러가지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낼 수 있다 생각하는데.
179
밴드에 들어가서 얼마 뒤, 같이 트럼본을 맡은 M이란 여자애와 이야기를 하다
좋아하는 사람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트럼펫 맡고 있는 S를 좋아해.
M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181
M이랑 그런 대화를 한 것을 잊었을 무렵, 연습을 끝내고 돌아가던중 M이 다가와서 말했다.
M [S한테 지금 고백해!]
나는 초조해졌다.
184
역시나 바로 고백하거나 하는 건 무리였다.
이유를 물어봐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M은 나를 계속 재촉했고, 결국 3일 뒤로 고백하기로 했다.
그 때의 M이 너무 하이텐션이었기 때문에 내가 화를 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나질 않아.
188
고백하기 전날, 교외 학습을 나갔다.
거의 소풍과 같았다.
어디에 갔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센베를 파는 가게 같은 느낌이었다.
교외 학습은 언제나 즐거웠지만, 고백에 대한 긴장감때문에 그때는 별로 즐겁지 않았다.
계속 내일 일만을 생각했다.
집에 와서도 그 생각만 계속나서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189
그리고 다음날
지금도 날짜를 기억한다.
6월 21일
192
아침부터 고백에 대한 생각에 계속해서 긴장한 상태였다.
심장이 두근 두근 거렸다.
학교에 도착하고 나서도
앞으로 x 시간....앞으로 x 시간....
이런 생각만 했다.
중간에
M [앞으로 x 시간 남았네 wwwwwwwwwwwww]
젠자아아아아앙!!!
193
M, 심하다 wwwwwwwwwwwwwwwwwwwww
195
수업시간이 끝나고, 하교할 시간이 되었다.
밴드 연습까지 끝내고, 마침내 고백할 시간이 온 것이다.
심장이 터질듯 두근 거렸다.
인생 첫 고백.
헌데 밴드 멤버들이 아직 부실에 남아 있는 상황이라,
어디론가 따로 불러내야하는데, 그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 때 M가 협력해줬다.
S와 둘만 있게 해준 것이다.
M, 좋은 녀석이었다...
200
어떻게 고백할까.... 생각해둔 게 하나도 없었다.
우선 적당하게 대화를 나누던 중,
S는 좋아하는 사람있어?
라고 물어봤다.
201
S는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S [xx군도 좋아하는 사람 있어?]
나 [있어.]
S [누구, 누구 www]
나 [너야.]
구토가 나올 정도로 긴장했지만, 어떻게든 말할 수 있었다.
203
첫고백이라면서 뭐야, 이 드라마틱 wwwwwwwwww
206
S [거짓말이야~]
나 [진짜야, 진짜]
S [...진짜...?]
나 [응! 그런데 S는 누구 좋아해?]
S [......]
나 [나...인거야?]
S [정답입니다....]
굉장히 기뻤다
210
축하....하는데...
어째서지...내 눈에서 육수가 흘러.
213
너무나 기쁘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둘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부실에 돌아갔더니.
M [어땠어? 어땠어? wwww]
나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M의 텐션이 올라가더니 나보다 더 기뻐해줬다.
M, 좋은 녀석이었구나.
217
그 후로 졸업까지 즐거운 매일이었다.
학교에 가는 게 이전보다 즐거워서, 매일 해피한 상태.
방과 후나 휴일에는 근처 공원등에서 놀았다.
하지만 단둘이서 논 적은 없었다.
초등학생이었으니까.
키스하거나 손을 잡은 적도 없었다.
초등학생인데다, 나 겁쟁이니까.
가장 진한 애정 표현은 수학 여행 때
담력 시험이 무서웠다고 말하는 S의 어깨를 껴안은 정도.
222
세월은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졸업할 때가 됐다.
초등학교 때는 정말 즐거웠다.
중학생이 되면 데이트를 해보고 싶어...
S랑 같은 반이면 좋을 텐데...
S랑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러며 기대를 부풀리곤 했다.
그리고 중학교 입학.
즐거운 매일이 계속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순식간에 박살났다.
225
입학하자마 나와 S가 사귀는 게 알려졌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녀석도 우리를 놀리곤 했다.
그래서 일까, S랑 말하는 게 부끄러워져서 친근하게 다가서질 못하게 됐다.
휴대폰을 갖게된 이후로는 메일 교환만 하였다.
중학교 입학 후 3개월.
이별을 선고 당했다.
227
반도 달랐기 때문에 S랑 대화를 하지도 않게 됐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다른 여자애 두명에게 반해 고백까지 했다.
메일은 편리했다. 문자를 치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남자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고백은 실패.
너무나 한심했다.
230
그 때 나는 테니스 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느 날 선배들과 임금님 게임을 하고 있었을 때 였다.
그러다 내가 벌게임을 하게 됐다.
그 내용은 여자 테니스 부의 아무나에게 음담 패설을 하는 거 였다.
나는 벌게임 내용을 실행했고, 이 이야기는 바로 여자 테니스 부원들에게 알려졌다.
아...인생 끝났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벌게임이었단 이야기를 하려 했으나 바로 앞에서 말하지 못하고
언제나 처럼 메일로 사과했다.
나란 녀석은 정말 최악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여자애들이 나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나를 보는 시선이 따가웠다.
따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위가 아파서 조퇴까지 했다.
234
그 후 학교에선 여자애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복도를 지날 때도 모두 나를 피했다.
S도 나를 보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렇게 해서 복도에 나가는 것도 다른 교실에 가는 것도 무서웠기 때문에
계속 자기 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내 성격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사이 좋았던 친구도 멀어졌고, 나는 결국 왕따 당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은 대충 이렇게 보냈다.
236
아아아아아아아아
237
그대로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때, 나는 온라인 게임을 만났다.
수험 공부를 해야 될 때 였지만, 온라인 게임에 빠졌던 나는 공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하교하면 온라인 게임, 하교하면 온라인 게임.
이런 매일을 보냈다.
성적은 그렇저렇 나왔기 때문에 사립 고등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그 고등학교는 우리 중학교에서 나밖에 지원하지 않을 정도로 먼 곳에 있는 학교였다.
같은 중학교 출신이 있으면 나쁜 소문이 퍼질테니 그걸 생각해서도 거길 가기로 했다.
입학 시험을 간단하게 합격했다.
그리고 마침내 암울했던 중학생 시절이 끝났다.
240
하지만 나는 성격이 어두웠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도 친구를 만들 수 없었다.
솔직히 될대로 되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는 별일 없이 집과 학교를 왕복했을 뿐이다.
허나 우리 가족은 그 때 붕괴했다.
아버지가 불륜에 어머니가 자살하려 한 적도 있고.
아버지가 명퇴 당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빚 때문에 집세를 내지 못해 이사까지 했다.
이런 저런 일로 내 성격은 더욱 어두워져 PC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241
>>4 와는 반대로 우울한 전개인데....
243
밤만 되면 부모님이 싸웠기 때문에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에로 게임에 몰두했다.
나는 현실에서 눈을 돌렸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중학교 3학년 때의 동급생
나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 없는 듯 했다.
그러니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집안 사정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자나 깨나 그녀에 대한 생각에만 몰두 했기에 수험 공부는 전혀 못했다.
결국 나는 재수생이 되었다.
244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일날 이었다.
그 날 여자 친구에게서 만날 수 없냐는 메일을 받은 나는 두근거리며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리고...
이별 선고를 당했다.
그 이유는 좀 더 공부에 전념해줬으면 해서...라고.
나는 한심한 표정으로 울면서 반드시 합격할 거야!!
라고 소리치며 집에 왔다.
246
눈물나는 이야기다...
247
방을 얻어 나갈 돈이 없기 때문에 친가에서 재수 생활을 시작했다.
3월, 4월.
매일 의지를 불태우며 공부했다. 매일 10시간 이상 공부했다.
일용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모의 시험 응시 비용을 벌기도 했다.
대부업자에게 사정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울었다.
5월,
의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6월, 7월, 8월.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매일 인터넷만 했다.
여름이 끝난 것에 초조해졌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248
....작년의 내 모습이다...
249
내 모습의 현재 진행형인데...
251
9월.
계속해서 타락해가는 내 모습이 싫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아버지 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가난한 집안은 싫다고.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중학생 시절 동창들을 놀라게 해주겠다고 결의했다.
운동도 시작했다.
그러다 오늘 >>4의 이야기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
그러니까 오늘부로 인터넷 끊습니다.
반드시 합격하고 싶으니까요.
끝
254
>>251
남은 시간 열심히 해!!!
255
>>251
수고했습니다!!
라스트 스퍼트!! 노력합시다!!
257
>>251
수고했어!!
합격 기원할께!
258
끝까지 봐준 사람들, 고마워요!
이런 거 처음이라, 재미없는 이야기를 길게 써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쓰면서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262
>>258
네 이야기를 보고 나도 결의를 할 수 있었어.
264
다음은 >>270
쓰고나니 재미없는 인생이었네요.
하지만 남은 인생은 재미있게 살 생각입니다.
합격나고 나면 다시 올께요!
그럼 모두 안녕!
265
수고했어!
천천히 쉬어.
그리고 잘가!!
270
자아~ 그럼 아래에 있는 사람.
노력하세요.
272
>>270
너다 wwwwwwwwwwwwwwwwwwww
275
>>270
노력해서 써봐 wwwwwwwwwww
277
이거참 곤란하게 됐네...
281
나는 뇌가 쪼그라든 채로 태어났어 ww
결국 교육은 특별 학급에서 받았어 wwww
나는 특히 대화를 나누는 기능이 떨어졌어 www
중학교에 가도 친구 하나 없이 외토리 wwww
가족들도 나를 조금 따돌리는 상태 wwww
하지만 졸업하고 나서 나 스스로를 바꾸고 싶어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해서 오프라인 모음에 참가하거나 해보곤 했다.
하지만 결국 안됐어 wwww
추악한 정신 박약아는 결국 외토리 wwwwwwww
인생 끝났다 \(^0^)/
이렇게 태어나서 미안해요. 엄마...
283
>>281
내가 보고 있어.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끝까지 봐줄께.
285
>>281
너.....
286
이렇게 써놓고 보니 엄청 짧은걸.
>>283
고마워...
이야기하고 싶은 거라...
고민은 많지만... 이 스레는 그런 거 적는 곳이 아니니까.
287
자아, 그럼 분위기를 바꿔서 밝은 이야기 부탁해요.
>>295
295
미안 ww
밝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써본다.
298
>>295
기대할께 w
299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소문난 똥통 학교.
나는 깡패같은 건 아니었지만, 주위가 주위다 보니...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런 나에게도 꿈이 생겼다.
미대에 가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미술 학원을 찾았다.
301
처음 학원에 갔을 때 너무 조용해서 놀랐다.
모두들 발걸음 소리까지 줄여가며 걷고 있었다.
얼마 안지나 깨달은 거지만, 수험이 코앞인 상태여서 그런 것 같았다.
수험도 까먹고 있던 바보 같은 나, 사실 대학교 이름도 잘 몰랐다.
302
미대에 가려면 우선 뎃생이 기본인 듯 했다.
과에 따라 다르지만...
처음으로 그린 뎃셍은 아직도 기억난다.
강사의 지도 아래 그린 텐구 그림이다.
305
솔직히 말해 나는 뎃셍실력이 엉망진창인데다 평면 구성 자체를 못했다.
우리 고등학교에서 대학 입학 시험을 치는 녀석은 나 밖에 없었다.
다들 졸업후 취직할 자리를 정해둔 상태였다.
나는 머리가 별로 안좋기 때문에 공부하는 방법 같은 건 전혀 몰랐고.
시험은 연필을 굴려서 때려 맞췄다.
308
당연히 불합격.
나는 재수생이 되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떨어질거라 생각도 안했기에 울었다.
학원에서 알게된 사람들은 유명 미대에 갔고 나 혼자만 재수생이 되었다.
그 후 학원을 전전하며 말도 안되는 스케줄로 공부에 몰두했고,
결국 건강까지 해치게 됐다.
주위 사람들은 대학 생활을 만끽하며, 겉으로는 나를 응원한다고 말했다.
결국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됐을 때, 내 몸에 이상이 발생했다.
309
점차 혼자서 자는 걸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내 방에 누워 혼자서 '괜찮아, 괜찮아.' 라는 말만 거듭ㅎ랬다.
뎃셍 실력도 늘지 않고 줄어가는 시간에 초조해지기만 했다.
그 때쯤에는 미술 학원과 일반 학원을 왕복하는 일이 잦았다.
전철에 타면 언제나 참고서를 들고 읽었다.
태어나서 한가지 일에 이렇게나 몰두한 것 처음이었다.
부모님도 나를 응원해줬다.
낙관적으로 생각해준 건 부모님 뿐이었다.
현실의 벽은 두터웠다.
나는 또 떨어졌다.
그리고 울었다.
부모님에게 어떤 얼굴로 떨어졌단 말을 해야 할지...
310
안타까운 느낌이다.
나도 비슷한 똥통 학교 출신이라 일반적인 진학교와의 차이를 가슴이 저릴만큼 잘알았아.
그러니까 힘내!!
312
부모님 앞에서 울면서 또 떨어졌단 사실을 고했다.
부모님은 그럼에도 나를 응원해줬다.
그래서 나는 삼수생이 되었다.
수험 공부를 다시 하게 된 건 괜찮았지만, 6월쯤 부터 어째서인지 학원에 가지 않게 됐다.
2주일 정도 방에 틀어박혀만 있었다.
가벼운 우울증이 생겨, 약을 처방받아 먹으며 인터넷만 했다.
대학 같은 건 안가도 괜찮잖아...
이런 생각도 했다.
314
>>310
고마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내 주위 사람 모두가 사라졌다.
부모님도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메일이나 전화는 모두 무시했다.
나 자신이 너무 비참했으니까.
위험한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315
그래서?
317
조금 회복된 게 지금.
며칠 전, 미술 학원에 갑자기 돌아갔다.
강사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받아 주었다.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니까...
꼭 합격하고야 말겠어.
역시 자신의 길은 주위 사람과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여는 수밖에 없으니까.
...이런 생각을 한 삼수생이었습니다.
어설픈 문장이라 미안해요.
끝
320
>>317
수고했어!
322
>>317
환경은 다르지만...나도 미대를 목표로 하고 있어.
그러니까 널 응원하고 싶어.
320
수고했어!
유명한 화가가 되면 꼭 싸인해줘야 해!!
323
>>320
좋아 www 기다리고 있도록 wwww
그럼 다음 사람
>>325
다음이야말로 밝은 이야기 부탁해.
325
잡았나...?
328
기대한다!!
330
좋아. 재미있는 인생은 아니지만 노력해서 써볼까.
우리집은 부모님에 15살 연상 언니, 10살 연상 오빠, 2살 연상 오빠가 있는 나름 대가족.
조금 낡은 집에서 살았다.
둘째 오빠가 심술 궂었기 때문에 언제나 시달리며 살았다.
언니는 미인에 상냥했다.
이 가족구성은 내가 3살쯤 됐을 때이다.
그 떄 일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느 날 잔뜩 취한 아버지가 칼을 들고 어머니에게,
[너를 죽이고 나도 죽는다!!]
라고 소리쳤다.
둘째 오빠가 나를 꼭 안고 코타츠 아래에 숨었던 게 기억난다.
그러던 중 내가 4살이 됐을 때였다.
어머니가 커다란 가방에 짐을 챙기더니,
[일하러 갔다올께.]
그러면서 나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333
유치원에서,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
라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보모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복도로 데리고 가선,
[무슨 말이니?]
라고 물어봤던 걸 기억한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초등학교는 1학년에서 3학년까지 같은 사람이 담임을 맡는 시스템이었다.
담임 선생은 화장이 굉장히 진한 아줌마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우리반 아이중 한명은 맞아서 멍까지 들었다.
화를 내기 시작하면 반 아이들 한명 한명이 전부 사과할 때까지 화를 풀지 않았다.
교실의 오르간도 몇대 때려 부셨다.
한참 뒤에 알게 된 거지만, 이 담임은 아이를 싫어했다는 것 같다.
학교가 그런 상태라 나는 학교에 가는 게 싫었다.
336
쓰는 거 잊어버렸네.
우리 큰 오빠랑 큰 언니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집을 나갔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우리 집안 사정은 상당히 복잡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결혼을 안한 동거 상태였고, 큰오빠와 언니는 어머니가 데려온 아이였다고.
그래서 아버지가 덤으로 데려온 애들을 키울 돈은 낼 수 없다고 해서
어머니가 술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면 바람피우는 거랑 똑같잖아.
라면서 싸웠고, 그러다 결국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이야기로 되돌아 와서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해도
우리 아버지도 화나면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기 때문에
학교를 쉴 때도 굉장히 고생했다.
아침에 오빠랑 아버지랑 함께 집을 나서는 게 일과였기 때문에
집을 나선 뒤 나중에 혼자 집에 돌아오곤 했다.
338
무거운 이야기에도 정도가 있어. 너 w
339
>>336
어라....
화면이 희미해져서 안보인다.
340
>>338
미안 www
하지만 끝까지 쓸테니까 제대로 따라와줘.
그렇게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계속될리는 없었다.
어느 날 휴일, 아버지에게 엄청나게 맞았다.
통지료에 결석 날짜가 써있었던 것이다.
그게 맹점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엄청나게 화는 내면서,
[거짓말로 나를 속이지 말고 나한테 당당히 말해라!!]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음부턴 아버지가 공인한 상태로 학교를 쉬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일하러 나간 뒤 나 혼자에게 집 지키게 하는 건 걱정된다면서
회사에 함께 가게 되었다.
회사라 해도 아버지는 트럭 운전수 였기 때문에 그 트럭을 타고 전국을 함께 다녔다.
341
굉장한 걸...
그건 그것대로 귀중한 체험.
342
그래서 아버지랑 어머니는 좋아해?
343
>>342
응? 나한테 묻는 거야?
아버지는 좋아해. 어머니는....조금 복잡한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좋아해.
굉장히 즐거웠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아버지와 둘이서 주먹밥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이러면 안된다는 것도 알았다.
공부를 해야 된다는 것도.
오빠는 착실하게 학교에 나가서 친구도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오빠 친구와 자주 놀았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오빠의 1~3학년까지의 담임이 우리집에 와서
[너희 오빠 담임도 올해로 끝나는데. 내가 국어 담당이니까...국어 학습방에 나오지 않을래?]
이런 말을 했다.
이 선생님은 아버지와도 친한 사이로 신뢰하고 있었기에 승낙하기로 했다.
345
보고 있어. 힘내라!!
346
3년 정도 학습방에 다녔다.
그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갈 때까지.
그 선생님의 전근과 동시에 오빠의 4~6학년 담임이,
[너를 위해서 특별 학급을 만들었어. 오지 않을래?]
이런 연락을 줬다.
뭐가 뭔지 몰랐지만, 일단 승락했다.
우리 학교에 처음으로 불등교아를 위한 학급이 생겨난 것이다.
여기에 나가게 되면서 반에도 얼굴을 내밀려 노력했다.
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았던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나는 반에서 붕뜬 상태였다.
1 학년 무렵 친구라 생각했던 아이의 집에서 놀고 있을 때,
[다른 애들이 너랑 같이 노는 걸 아는 건 싫으니까. 만약 누가 오면 베란다로 나가.]
그러면서 베란다에 신발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덧붙여 그 아이가 말하길, 반아이들을 대상으로
[xx(나)를 싫어하는 애는 손들어.]
그런 앙케이트를 했을 때 손을 들지 않은 애가 없었다고.
나의 초등학교 추억은 이런 느낌이다.
다음은 중학교인데...너무 길었나? 괜찮을까?
347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길지 않았어. 괜찮아.
348
괜찮아. 계속 써줘.
352
내가 다른 사람의 인생속에 있는 듯한...
그런 착각이 드는 이상한 스레다.
353
괜찮아.
그러니까 너의 페이스대로 적어줘.
354
결국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나는 집단 생활을 조금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 대하는 게 눈물이 나올 정도로 서툴러.
초등학교 때 친구였던 아이 A와 같은 반이었다.
입학 초, 앞자리에 앉은 여자애 B가 친근하게 굴어줘서 엄청 기뻤다.
그 아이의 초등학교 동창이랑 같이 세명이서 교환 노트하자는 권유도 받았다.
글씨 엄청 못써지만, 노력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적었다.
A와는 우연찮게도 같은 동아리가 소속되었다.
귀가하는 길도 같았기에 같이 하교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B가 나한테,
[내가 초등학교때부터 알고 지내는 선배가 A를 싫어하니까 이제 이야기하는 거 그만둬.]
이렇게 말했다.
그런 불합리한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 나는 계속해서 A와 하교했다.
결국 B가 나한테 벌컥 화를 냈다.
[A한테 이 노트 보여주고 있지? 이런 노트 필요없어!!]
B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하며 노트를 내던지듯 돌려줬다.
B의 친구들한테 무시당했기에 굉장히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초등학교때부터 나를 싫어한 애들이 학교에 잔뜩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에 맞물려 나는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357
아...........
359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반의 남자애들은 내 옆을 지나갈 때마다.
[어이~ 뚱땡이.]
라고 말했고, 신발장 안에는
[나도 당신처럼 기분 나쁜 인간입니다. 좋아합니다.]
이런 편지가 들어있기도 했다.
화장실 청소 당번을 정할 때,
[xx는 화장실 청소에 어울려.]
라며 냉소썩인 말을 들었다.
동아리와 우리집만이 내 마음의 오아시스였다.
이 표현 조금 기분 나쁘네.
나와 A는 귀찮은 일만 반의 귀찮은 일은 전부 떠맡아야 했다.
특히 가정과 수업때가 힘들었다.
어느 날인가 진짜 다치는 바람에 담임한테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담임이 그애들을 호출해 물었지만 시종일관 모르는 일이란 말만 했다.
너무나 분했다.
몇번이나 부엌칼을 내 배에 꾹꾹 찔러대곤 했다.
반항하고 싶어도 너무 무서워서 무리였다.
모두를 죽여버리고 싶단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애들한테도 가족이 있단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나서 할 수없었다.
그렇게 중학교때는 우울한 일상이 계속됐다.
363
.....화면이 잘 안보인다...
364
중학교때도 학교에 잘 가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내신 점수가 좋았다.
성적도 자신있는 과목의 경우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다 진학할 고등학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공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가고 싶은 고등학교도 없었다.
동아리 친구한테
[공업 고등학교라면 같은 학교에 갈수 있을지 몰라!]
라는 말을 듣고 그러기로 승낙했다.
그렇게 해서 공업 고등학교에 추천을 받아 들어가게 되었다.
같은 반에 중학교때 같은 반이었던 남자애 두명이 있어서
입학과 동시에 나에 대한 험담을 시작했지만,
여자애들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가 없는, 남자뿐인 공업 고등학교라서 인가.
[고등학생이나 되서 유치하게 무슨 헛소리야. 네놈들은.]
다른 남자애들은 나에 대한 험담을 이런 자세로 받아들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소문이 사라지자 학교나 공부도 재미있어졌다.
왠지 인생이 즐거워졌다.
그렇게 점차 텐션이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버지가 죽었다.
365
아아아아아....안돼에에에에에에.....
367
..............................
370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조금 전에 좋아해? 라고 물어봐서 미안해에에에에에에에!
371
눈물 나오는 스레다....
375
오빠는 그 무렵 고등학교를 졸업해, 회사에서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날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저녁 10시쯤이었을까.
아르바이트가 슬슬 끝날 무렵 전화가 울렸다.
아르바이트 동료들이, 남자친구에게 전화왔냐고 놀렸지만.
그런 게 있을리 없는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먼 곳에서 살고 있던 삼촌의 전화였다.
[아버지가 쓰러졌어! 빨리 병원에 가봐라!]
삼촌은 그렇게 말했다.
당황한 나는 아르바이트를 조퇴하고 자전거를 타고 재빨리 병원으로 향했다.
가면서 오빠한테도 연락했다.
병원까지 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평상시 냉정한 상태였다면 좀 더 빨리 갈 수 있었을 텐데.
병원에 가니 아버지의 회사 동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의사가 말하길, 뇌일혈이라고 했다.
의사는 몇번이나,
[괜찮아요. 간단한 수술로 어떻게든 되니까.]
이 말을 반복했다.
그림을 보여주며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울면서 수술 동의서에 싸인했다.
380
수술이 시작되고 대기실에서 계속 기다렸다.
아버지랑 잘 알고 지내던 회사 동료가 친척들에게 일일히 연락을 해줬다.
몇 시간 뒤 오빠가 택시로 도착했다.
나는 간단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본 적도 없는 친척들이 한명씩 모여들었다.
친척 중에서 부자인 사람들도 달려와 줬다.
그러던 중 의사가 나와서 가족들에게 할말이 있다고 했다.
가족 두 사람이 10대라는 걸 안 의사는 친척 어른 한명을 불러왔다.
[유감입니다만, 수술은 실패했습니다. 환자 분은 뇌사 상태에 빠졌습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의미를 알지 못했다.
[연명 조치를 하시겠습니까?]
친척 어른은 우선 먼곳에 사는 삼촌이 올 때까지 살아 있게 해달라 말했다.
나는 패닉 상태였다.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병원 복도에서 오빠랑 등을 맞대고 앉아,
[어머니도 없는데, 아버지까지 사라지는 거야?! 너무 하잖아!!]
그러면서 울었다.
381
이런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나는...
383
내가 얼마나 인생을 낭비중인지 잘 알았다.
384
힘내라는 말밖에 할 게 없네...
385
그때를 생각하니 조금 눈물이 나왔지만, 너희들을 생각하니 기운이 났어.
모두들, 다른 사람과 인생을 비교하며 우울해하지마.
불행이 인생보다 위에 있는 건 아니잖아?
자신은 자신의 인생을 살면 되는 거야.
386
넌 어째서 그렇게 적극적인 거야...
더이상 나를 울리지마...
387
의료 사고가 아니라 손쓸 방도가 없었다는 건가.
389
>>387
아마도 그것.
우리 아버지 고혈압이었으니까.
그리고 새벽쯤되서 삼촌 가족이 도착했다.
삼촌이랑 오빠가 아버지를 보러 가자고 말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건강했던 아버지가...
오빠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매년마다 함께 캠프를 하러 가서 웃고 떠들던 아버지.
아직도 50대인 아버지가...
지금 집중 치료실에서 머리를 박박 깍은 채 혀를 내물고 누워 있다는 거야?
거짓말이야...
그렇게 생각했다.
[저런 거 아버지가 아니야!!]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 하면서 아버지를 보러가길 거절했다.
그렇게 혼자 대기실에 앉아 있자니, 친천 어른 중 부자인 사람이 나한테 와서
[할머니네 집 권리서를 찾아야 되니까. 너희 집에 가자!]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의미를 몰랐지만, 너무 강경한 기세라서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그 사람 차로 집까지 갔다.
난 울었다.
왜냐면 이 집에는 더이상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렇게 울면서 그 권리서인가 하는 걸 찾았다.
헌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친척은 나를 다시 병원까지 데려다줬다.
391
...싫다...이런 전개....
393
너무 탐욕스럽잖아...
397
드라마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저런 사람을 봤기 때문에 공감한다.
400
우와...아직도 잠이 안와.
슬슬 자고 싶은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잘 수가 없어.
401
아버지가 쓰러지고 하루가 지났을 무렵,
간호사가 고비라면서 나와 오빠, 삼촌을 호출했다.
숙모가,
[마지막 인사를 하세요. 지금까지 고마웠다고. 천천히 쉬라고.]
나는 역시나 인정할 수 없었기에 싫다고, 다음주 생일 축하해달라며 울면서 아우성쳤다.
그러다 아버지의 심박이 안정되었다.
결국 고비를 넘겼다.
나는 숙모한테 지독하게 혼났다.
어째서 아버지를 안심시킬만한 말을 안한거냐고
생일은 대체 무슨 소리냐고.
언제나 내 생일이 되면 일하고 돌아와 부엌에 서있는 아버지에게,
[오늘 무슨 날인지 알고 있어?]
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아버지는,
[모르겠는데. w]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 날의 저녁 식사는 평소보다 좀 더 호화롭고 케이크도 같이 올라오곤 했다.
평상시와 같은 그런 하루를 맞이하고 싶었다.
단지 그것 뿐이었다.
406
그 고비 이전 의사가
[2단계 연명 조치는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었다.
친척들은 자신들에게 결정할 권리가 없다며 우리에게 맡겼다.
오빠는 내 얼굴을 보며 내게 맡긴다고 했다.
멍해 있던 나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고비가 오면 울면서 아우성치는 걸 반복했다.
아버지가 쓰러진지 3일이 지났다.
그러자 친척들 사이에서 점차 불만이 솟기 시작했다.
[내일 회사에 가야 된다구.]
[저런 상태에서 계속 살려둬도...]
[솔직히 민폐네요...]
모두들 피곤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들리지 않게 말해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
3일 째 되던 날, 또 고비가 왔다.
그 때 삼촌과 오빠는 밖에 나가고 없었다.
의사가 안정된 상태니까 계속 붙어있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나도 며칠째 계속 울며 조금도 자지 않았기에 초췌해진 상태였다.
숙모는 내 이름을 조금 강한 어조로 부르며 말했다.
[이제, 아버지 없이 살아가야 해. 알겠지?]
그렇게 무정한 어투로 말했다.
아버지의 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멈췄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오빠와 삼촌이 달려 들어왔다.
두 사람은 임종에 늦었다.
408
....눈이 흐려져서 모니터가 안보이지만 계속 보고 싶어....
409
제발...그녀를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410
아버지는 너를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 있었던 거야...
412
그 후 오빠가 상주로 장례식을 치뤘다.
오빠나 나나 아직 미성년 이었지만, 친척이 필요한 건 아니었기에
지금까지 처럼 원래 살던 집에서 계속 살기로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될대라 되란 심정이었던 나는 학교를 자주 쉬었다.
그러다 숙모의 충고를 받고 근처 국공립 대학에 추천을 받아 기적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 독신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봤자 오빠와 떨어져 사는 것 뿐이지만.
그러다 왠지 컨디션이 나빠졌다.
강의실에 있을 때 가슴이 답답했다.
자기 전 안좋은 일만 생각나 잠에 들 수 없었다.
대학에서 알게 된 친구랑 대화를 나누다 깨닫고 보니
옷도 안갈아 입은 채 이불속에 쓰러져 있었다.
다음 날 친구에게 확인한 결과,
꿈이 아니라 확실히 어제 대화를 했고, 집근처에서 헤어졌다고.
결국 정신과 카운셀링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원에 가는 게 힘들었기 때문에 그러다 가지 않게 되었다.
417
예전부터 계속,
아버지를 죽인 건 나다.
그 때, 좀 더 빨리 병원에 도착했다면...
연명 조치를 해달라고 했다면...
이제 괜찮다고 거짓말하지 않았다면...
이 생각이 매일 저녁 되풀이됐다.
초등학교때나 중학교때 왕따 당하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모두들, 모두들 나를 싫어했다.
나랑 사이 좋게 이야기나누던 친구도 내가 없는 곳에서 내 욕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렇게 생각하니 정신이 이상해졌다.
그러다 20살이 되기 전에 뭔가를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 맥락 없이.
우선 시청에 가서 호적을 확인했다.
그걸 토대로 어머니의 호적을 확인, 현재 살고 있는 주소를 알아냈다.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420
급전개
422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4살 무렵의 기억에는 아주 키가 컸던 것 같은데...
굉장히 작아져 있었다.
너무나 작은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엄청 시골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봤을 때는 의심스러워 하는 표정이었지만,
호적을 내보이니 눈물을 흘리며 맞아주었다.
우선.
[낳아줘서 고맙습니다.]
이 말을 하고 하니 눈물을 왈칵 쏟아졌다.
어머니는 고관절이 나빠져서 인공 관절을 넣었다고 했다.
그래서 바닥에 앉을 수 없다고.
의자에 앉아 옛날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버지랑 헤어진 뒤 나랑 오빠를 보러 집 근처에 왔던 적이 있다고 했다.
큰 오빠는 지금 교도소에 있다
언니는 결혼해서 아이를 3명이나 낳았다고 했다.
그간 쌓였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429
오빠는 대체 무슨 짓을....
430
큰 오빠는 마약에 손을 댔다고 했어.
어머니한테는 내 상태를 말할 수 없었다.
언젠가 제대로 돈을 벌게 되면 지금까지 함께 살 수 없었던 만큼 효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에 복귀하는 건 힘들다 생각해서 올해 3월 대학은 그만두었다.
중학교 때의 아는 사람을 만나기 싫었기에 먼곳으로 나왔다.
지금은 아르바이트하면서 쓸쓸하게 살고 있어.
환경이 바뀐 탓인지 컨디션은 점차 좋아지고 있어.
밤에도 제대로 잘 수 있게 됐지.
오늘은 밤을 새게 됐지만...
대인 관계도 개선되서 이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일도 적어졌어.
좀 더 시간이 걸리지도 모르지만, 정사원이 되는 게 지금의 꿈.
마지막이 엉망진창이라 미안하지만 이걸로 끝.
긴 이야기에 따라와줘서 고마워.
다음을 부탁해.
>>433
432
굉장한 이야기였다...
수고했어.
433
가속
436
>>433
다음은 네 이야기를 들어볼까?
440
음? 나인가?
유치원때 선생님, 이렇게나 똑똑한 아이는 처음본다.
초등학교 1학년때 선생님. XX는 좋은 아이야.
초등학교 3학년때 선생님, XX는 우수해.
그러다 중학교 수험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학원을 다녔다.
그 무렵에는 꽤 성적이 좋았다.
442
숙제 같은 거나 공부에 노력하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해가 지날수록 라이벌은 증가하고 성적은 마구 떨어졌다.
하지만 자존심은 남들 두배로 높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
결국 떨어졌다.
445
공립 중학교에 진학했다.
성적은 중상위권.
헌데 수험 공부 도중 내 몸의 밤낮이 역전된 것 같았다.
새벽에는 깨어있고, 아침 나절이 되면 잠이 들어 깨어나질 못했다.
447
병원에 가니 혈압이 낮아졌다고 했다.
그렇게 약을 먹으며 일주일에 1회 정도 저녁에 등교, 물론 출석으로 쳐주진 않았다.
밤에는 PC와 라디오.
시험도 어떻게든 쳤다. 성적을 떨어졌다.
중학교 2학년, 약 먹는 걸 멈추고 상태를 보기로 했다.
아침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어서 저녁 등교는 멈추지 않았다.
성적은 더욱 떨어졌다.
그리고 지금 침대 위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지금 14살...
제대로 학교에 가고 싶다.
끝
다음은
>>450
450
가속
457
쓸 수 있을 만큼만 쓴다.
초등학교때
야구를 좋아했지만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기에 근처 소프트볼 팀에 들어갔다.
우리 학교 애들 중 가입한 건 나뿐이었다.
소프트볼 경험을 없었지만, 4번 타자가 되었다.
초라한 타이틀이지만, 우리 지구 연간 홈런 기록을 가졌던 건 나의 조그만 자랑거리다.
괴롭힘은 변함없었지만.
458
중학교에 들어갔다.
야구부 선배가 깡패였다.
얼굴이 짜증난다.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불합리한 이유로 모두들 두드려 맞았다.
다행이 그동안은 괴롭힘 당한 적 없지만.
무릎이 망가져 야구를 더이상 할 수 없게 됐기에 생물부로 이적했다.
459
생물부는 남자가 나 빼고 1명밖에 없었다.
1학년 위인 선배들은 6명에 전부 동인녀였다.
동급생은 두 사람이었는데, 둘 다 뚱뚱했다.
한명의 아버지가 진짜 야쿠자라고 였다.
그 아버지는 그 애가 관련된 도둑 소동때 한번 봤지만,
옷소매로 문신이 보이는 리얼 야쿠자라서 뿜었다.
460
날라리로 보이는 사람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다른 선배들과 친해졌다.
동아리 시간은 거의 독서 타임으로 보냈기에 나도 적당히 BL 책을 읽거나 했다.
처음 봤을 때는 기분 나빴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져서
결국 나 스스로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다.
461
처음에는 생물부안에서만 알려졌지만, 날라리가 내가 그린 일러스트를 반 애들에게
알리는 바람에 나는 그날부터 호모라 불리며 다시 괴롭힘 당하게 되었다.
464
호모 기분 나빠, 라는 말을 들으며 특히 여자애들은 나를 멀리했지만.
초등학교 때보단 덜했다.
그러다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A가 나를 감싸주었다.
농구부 주장 후보에 멋진 녀석이었던 A는 나랑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지만,
여자애들과의 사이를 중재하며 나랑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여자애들의 비난도 점차 줄어들었다.
465
어느 날, A가 나한테 일러스트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걸 보여주자 그는 내가 진짜 호모가 아니냐고 물었다.
당연히 아니라고 말하자, A가 자신은 호모라고 말했다.
466
에에에에에에에엣?!!
467
사귀어달란 말을 들었지만, 지금까지의 은혜를 공제해도 그건 무리라고 거절했다.
그러자 A가 말하길, 자신이 나를 도와준 건 내가 그린 일러스트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A의 그림을 그렸다.
알몸이었던 A는 엄청 흥분한 것 같았다.
그렇게 1 시간에 걸쳐 A4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려준 뒤에도 친구로 남아있었달란 A가 말했다.
그 말을 할 때의 A는 멋있었다.
468
미안, 웃었다 wwwww
469
이건 좀 wwwwwwwwww
470
나를 감싸 준 것은 A 말고도 있었다.
동아리 선배들이다.
그녀들은 재미로 나한테 일러스트를 그리게 한 것에 책임을 느껴서
동아리 도중 직접 만든 쿠키를 주기도 했다.
그 중 한사람과는 사귀는 사이로 발전했다.
일단 B라고 할까.
473
A 한테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걸 숨겼다.
그는 현재 내 고향에서 게이바의 점장을 하고 있다.
한번씩 고향에 갈 때마다 얼굴을 보곤 한다.
그 그림은 어떻게 했어? 라고 물은 적 있는데.
소중히 보관해뒀다고 말했다.
조금 기뻤다.
B와는 학년도 집으로 가는 방향도 달랐기에 학교에서 만나 이야기 나눈 게 다였다.
BL책은 나눠봐도, 실제로 야한 일은 하지 않았다.
서로 부끄러웠기 때문에.
474
A, 좋은 녀석이다. wwwwwwwwwwww
476
결국 B와는 아무 일 없이 헤어졌고
지금 나는 미대에서 제품 디자인 공부하고 있다.
끝!
477
수고했어.
481
수고했어.
너의 역사.
잘 봤다.
485
좋은 이야기...
정말 고마웠어.
이런 이야기들 하나 하나가 얶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거겠지.
490
모두에겐 각자의 드라마가 있어.
그 드라마에선 자신이 주역이고 각본가다.
드라마가 희극이 될 지 비극이 될 지는
결국 주인공인 자신의 몫인 거야.
1위 ㅋㅋㅋㅋㅋㅋㅋㅋ
답글삭제이것이 인생..
답글삭제오우
답글삭제여러인생이있지요
답글삭제선리플 후감상
답글삭제...오오선리플후감상
답글삭제순위권!
답글삭제마지막글이 가슴에 와닿네요..ㅠㅠ
답글삭제........... 이제 고3이되는나는 무얼하고있는거지
답글삭제너무 좋은 스레네요 ㅠㅠ
답글삭제익명을 통해서 저렇게 자신의 반생을 숨김없이 얘기할수 있어 읽는것은 굉장히 감동적이군요. 간단하게 옆에다가 나의 이야기는 어땠는지 쓰고나서 잠깐 눈에서 물을 짰습니다.
답글삭제한국에도 누군가가 이렇게 스레 세워서 착실하게 이야기 세워주지 않으려나. (←떠넘기지마)
아 결국 울고 말았다.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언제부터 잊어버렸던 것일까...
답글삭제ㅠㅠ 좋은 스레다
답글삭제왠지 마지막 말이 감동적이군요..
답글삭제이제 인생을 시작한 학생이라는신분...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담고 살아왔던 인생이
갑자기 아직은 희망적이라는걸 느끼게 해주네요
인생에서 자기 자신은 주연이긴 하나 각본가는 못 되는듯.
답글삭제뭘 하던 간에 보조 연출가들이 길을 틀어버리기 때문에...
이것이, 무언가 긍정적인 영감을 느끼게 해주는 류의 스레군요 !
답글삭제그러나 제 드라마는 망했습니다.
답글삭제내 인생은 어떤가....그냥 흘러만 가고있는건가....
답글삭제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모두 움직여라!!!아...지금은 자는시간인가..
뭔가 와닿는 스레네요
답글삭제내가 하고 있는 드라마는 주인공이 내가 아닌것 같아....
답글삭제위의 스레 처럼 문득 쓰고 싶어졌습니다.
답글삭제나는 그럭저럭 사는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형, 나.
단촐한 가족구성.
하지만 행복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꽤나 공부를 잘했습니다. 다른 아이들 처럼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예습, 복습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위의 스레를 쓴 사람들 처럼 왕따를 당하거나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평범적인 것 보다 더 행복한 초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간암에 걸리면서 모든 것이 붕괴되었습니다.
간암 말기. 지금이야 이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조금 아프시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있다. 어머니가 일을 하신다. 정도로 인식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약 한달쯤이 지났을까요. 아버지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복부에 이상한 것을 꽂으시고....
아버지는 무척이나 쇄약해져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아파했습니다. 짜증을 많이 부리셨습니다. 그런 것과 관계 없이, 새해는 밝아왔습니다.
새해만 되면 우리 가족은 할머니 집에 갔지만, 이번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 누워서 2 만원을 꺼내주며 미안하다고, 우셨습니다. 어머니도 우셨습니다. 형도 울었습니다. 나도 울었습니다....
형과 나는 밖에서 놀고 오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에 나갔습니다... 밖은 추웠습니다. 뭘하고 시간을 보낸지는 기억 안 납니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그네에 앉아 있기도 했고, 문구점에서 오락기를 만지작 거리기도 했고, 형제는 밤이 어둑어둑해질 때 쯤에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약속한대로 웃었습니다.
활짝..... 잊혀지지 않는 기억입니다.
새해가 지나고 아버지는 다시 병원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 아버지는 다시 병원에서 나오셨습니다.... 아마,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주말에 아버지와 나 단 둘이서만 산에 갔습니다. 형은 자격증 시험같은 걸로 어딘가 갔기 때문에 단 둘이서만 갔습니다.
아파트 뒤의 작은 뒷산.
아버지는 굉장히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기셨습니다. 가다가 휘청하셔서 아버지를 잡았을 때, 뼈 밖에 남지 않은 아버지의 몸을 만졌을 때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아프시구나...
평소에 올라가는 시간보다 배는 더 걸려서 정상에 도착했을 때,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정상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이럴 때는 말이지. 뭔가 굉장히 중요한 말을 해야하는데, 딱히 생각안나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다음 번에 올라 올 때 말해주면 되잖아요"
웃으면서
.
.
.
이틀 뒤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수요일 날, 3교시 수업을 듣고 있을 때, 처음보는 선생님이 들어와서 저를 급히 찾았습니다. 그 때 예상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밖에 나가서 계단에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말로 슬프게도,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울면서, 반에 들어가 드르륵하고 문을 열고, 가방을 가지고 황급히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몇번이나 집 문을 두들겼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시겠지하면서..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삼촌이 찾아와서 나를 차에 태우고 갔습니다.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멍하니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삼촌도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울었습니다. 그 것 이외에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울다가 잠들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울고 잠들고 울고 잠들고 그것만을 반복했습니다.
고운 삼베옷을 입고 있는 아버지를 볼 때도, 아버지가 화장당할 때도, 작은 상자에 담겨 나왔을 때도 우는 것 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집에 돌아왔습니다.
몇 일간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집을 팔았습니다. 전학을 갔습니다. 전학을 갔습니다. 집안의 사정은 극히 열악했지만, 어머니는 버텼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쉬지도 않고 일해서.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졸업했습니다. 뭘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를 가거나, 집에 남아서 PC를 하거나, 티비를 보거나... 형에게 정말로 많이 맞았습니다.
지역의 가장 꼴통 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하던 시점에 운 좋게 서울로 전학을 가, 그 지역에서 나름 좋다고 하는 학교로 들어갔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로 열심히 했습니다. 중학교 때 백분율로 30%의 성적을 첫 시험에서 70%까지 올렸습니다. 2학년 2학기 기말고사. 내신을 96%까지 올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왜 공부해야하는 지 몰라서, 그냥 집에서 멍하니 학교도 나가지 않은 체 하루종일 컴퓨터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도, 왜 해야 할지도..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를 아버지가 보시면 무어라 말 하실 까요...
쓰고나니, 장문이 되어버렸다......
답글삭제아아 .. 나의 앞날이 보이는거 같아서 걱정 되기 시작하는데 ..
답글삭제↑공부만이라고 생각하지말고 다른것도 해보는것도 좋겠죠[하지만 요즘사회에선 공부를 따지니;;]
답글삭제@... - 2010/01/17 03:11
답글삭제있죠 되게 도움 안되고 참 논리적이지도 않은 말이지만요.. 정말 공부는 일단 잘해두면 좋아요. 왜해야하는지 그런 고민도 없이 그냥 일단 잘해놓고보면돼요. 혼자 힘으로 그렇게 열심히해서 성적 올렸다면 앞으로도 쭉 그럴 수 있잖아요? 공부란 게 원래 한번 성적 오르고 요령 생기면 웬만큼 심경의 변화가 없는 이상 절대 떨어지진 않으니까요. 우리 사회가 대부분 학벌위주다보니까 일단 공부만 잘하면 어딜 가든 이쁨받고 대접받는 게 사실이에요. 그렇게 잘하는데 갑자기 손 놨다니까 내가 다 안타깝네요ㅠ 일단 무조건 해요 공부. 해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게 공부에요. 이유를 찾으려하지도말고 그냥 렙업하는 기쁨을 느끼듯이 성적올리는 재미로 하면돼요. 현재 상황에서 님이 할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의 삶의 방식은 공부하는 것뿐이에요...일단 잘해놓고보면 세상 사는게 참 쉬워져요. 대학만 해도 성적 높으면 4년장학금받고 다닐 수 있고, 아르바이트만해도 그래요. 페이높은 학원알바같은 거 웬만하면 고학력으로 뽑잖아요? 아아 저도 말이란 걸 좀 조리있게 잘했음 좋겠는데1 암튼 너무 안타까워서 적어봐요ㅠㅠㅠ
제 마음 속 1위인 길가다가 꿈을 주웠다는 스레를 넘어선 최고의 스레입니다. 진짜 우연도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요..!! 이야기들이 다들 파란만장해요... 어썰님 이런 좋은 스레 번역해주셔서 감사해요.
답글삭제@... - 2010/01/17 03:11
답글삭제계속 생각하고 있는거지만..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잘하도록 하는게 좋습니다. 나중에 차차 시간이 지난다음에 하고싶은 것을 찾게 되면 그 이유를 아시게 될거에요.
이유가 없다면.. 나중에 하고싶은 것을 찾았을 때를 위해서라고 생각해두세요. 그게 큰 동기가 될지는 반신반의입니다만...
(그 댓가를 뼈저리게 치르고 있는 사람이 적어보았습니다.)
거의다가 현재진행형이군요. 좋습니다.
답글삭제나도 위 스레처럼 써볼까. 이미 저질러버린 사람 잇고.
답글삭제내 탄생은 꽤 유복했다.
아버지는 영화를 한편 내서 돈이들어올때엿고, 어머니도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차근차근 싸아놓고있엇다.
어렷을때는 생일이라고 여행을 가기도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친척들과 해외에 섬같은곳으로 자주 놀러가곤했다. 지금은 잘 기억도 안나지만.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할할때쯔음부터 약간 뒤틀리기 시작햇다.
유치원때부터 약간 소외돼는 경향이잇는 말수없는 아이엿는대
초등학교때부터 집안 사정도 나빠지기 시작.
1,2 학년때는 실제로 왕따로 등교를 거부하기도햇다.
하지만 저기 스레처럼 나한태도 잘해주는 그런 아이가 잇엇다. 이젠 이름도 기억 안나므로 역시 A라 칭함 ㅋ
A와 만난건 2학년때엿다. 왠지 반에 하나씩은 잇을듯한 머리좋고 착한 그런아이.
A는 왕따당하고잇는 나한태 쉽게 말을 걸어주엇고, 친구들에게 소개도 해주었다.
3학년이 돼어 이제야 익숙해진다... 싶을때쯤 이사를 가게돼엇다.
이유는 어머니가 페러글라이딩의 선수인대, 원래 살던곳에선 너무 멀기때문..
이사가게 됀곳은 시골....아니 도시화가 꽤 진행됀 그런 시골이였다. 지명 대라고하면 이천 ㅋ
A의 도움으로 아이들과 말하는게 어느정도 익숙해진 나는 친구들도 쉽게 사귀엇다. 여자아이들과는 여전히 대화가 어려웟지만 남자아이들은 몇십명씩 모여서 집에 가기도햇다. 도시화가 돼고잇다곤해도 상당히 변두리인곳이여서 완전한 시골학교엿기때문일까....왕따라던지 그런것도 없엇다.
초등학교는 매우 순탄하게 지나갈터엿다. 학교에선 잠만 자는대도 학원때문인지 뭣때문인진 몰라도 성적은 상위권. 애들이 모르는 문제도 잘 생각해보면 모두 답이 나와 아이들에게 풀어주곤하엿다.
가정도 화목.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이 조금씩 줄긴 햇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대회에서 상을 휩쓸엇고 아버지도 연극으로 원하는일을 하면서 잘 지냇다.
그러나 5학년 2학기때 어머니가 다리가 부러졋다.
그 소식을 아빠한태 들엇을때 우리 아빠 왠 농담이야...ㅋ.... 라며 받아쳣으나
뉴스에서 패러글라이딩 경기중 갑자기 분 강풍으로 3명의 중상자 발생. 그 사람의 명단에 우리 어머니가 들어잇엇다.
몇달간 어머니는 병원의 신세를 지게돼엇고, 그다지 저축이 없는 우리집은 할머니의 유산과 착한 친척분들의 조력으로 어찌어찌 어머니의 수술을 하긴하엿으나, 나는 돈이 부족하여 학원을 못 가게돼고 집에선 어머니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매꾸기위해 공부를 할 틈도 없엇다. 아버지는 직장이 멀기 때문에 들어오지못하는 날도 많앗고. 뭐 당연히 성적은 하락.엎친대 덮친 격으로 어머니외의 중상자 2명은 사망햇다는 소리가 들리고 우리 어머니는 2차례의 수술에 실패하엿다. 학교에선 더 이상 자지 않겟단 신념만으로 6학년때까진 중위권에 악착같이 버텻다. 울고싶은 나날이엿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성적도 좋으면서 게임기를 가지고 학교에와서 자랑하며 놀때 나는 집에서 부모님의 빈곳을 매우기위해 밥을 하고 설거지를하고 빨래를하고 동생을 돌보앗다. 그런 생활이엿다.
중학교때엔 공부가 힘들어졋다.
우선 자습만으론 공부가 힘들뿐더러, 중학교에선 처음으로 불량 이란것들을 만난것. 나는 기억이 안나지만 친구의 말로는 2~3번 정도 싸움도 일어낫다고한다.
이래저래 기가 죽어서 모든 일에 의욕이 없엇기 때문에 학교에서 하던 방송부에서도 퇴출돼고 내 사상 최악의 성적이 3연속으로 나왓다.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돼던 성적미달로 인한 보충. 당시엔 말도안됀다고 생각햇던것같다. 1학년때 그나마 다행이엿던건 어머니가 다리가 나아서 일을하여 2학기때부터 학원에도 다니게 돼엇단것정도.
2학년때도 상황이 좋아지진않앗다. 학원에 다니게 돼긴 햇지만 이미 공부하는 법을 잊어버린 나는 성적은 그대로 중하위권. 남자애들과는 그럭저럭 잘 사귀지만 여자애들한태는 뒷담이나 까이는 그런 생활. 그나마 좋앗던건 도서부 활동. 나는 독서가 좋앗다. 왜인지는 몰라도 책을 읽는걸 좋아하엿고 도서부에는 친한 아이도잇고 여자애들과도 그럭저럭 지냇다. 평균보단 아니지만 2학년은 내 기준으론 순탄한인생.
그리고 끝.
지금이 3학년돼는 해. 이제 곳 다시 이사.
그런대도 이 새벽에 이러고 잇습니다만....스레를 보고 나도 하면 돼지 않을까. 라는 희망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햇네요
감사합니다. 새로 전학가는 곳에선 열심히 해볼게요
@써커 - 2010/01/17 04:07
답글삭제이런 ㅋ 쓰고보니까 쓸대없이 길고 읽기도 어렵고 문법 바보같고 오타 엄청많아!
사실 중간에 부모님이 크게 싸운 일이라던가, 당시 분위기라던가 여러가지 빠졋습니다만..뭐 괜찮겟죠
이거 배경음 제목 알고 싶어요
답글삭제어설트레인님 안녕하세요 !
답글삭제항상 번역스레 재밌게 보고있는 눈팅족입니다 ㅠㅠ;;
전 대학발표 기다리면서 겨울방학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고3인데요
이스레 읽고나니까 정말 참.. 여러가지로 반성도 되고 앞으로 잘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 새벽에 적적해서 왔는데 정말 감동받고 가네요 ㅠㅠ
제 인생을 돌아보게 해주는 스레였어요 !!
같이 면접본 친구는 붙고 저혼자 떨어진상황에서 자포자기 하고있었는데..
인생은 앞으로 시작이네요 !! 정말 어비스에서 힘들때마다 스레보면서 기운얻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새벽에 긴댓글 죄송합니당 ㅠㅠ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이런사람도 있다는걸 , 스레 정말 감사히 보고있다는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수고하세요♡
이 아저씨..오늘 좋은이야기 들었다..
답글삭제@어비스님 - 2010/01/17 04:53
답글삭제하울의 움직이는성ost "인생의 회전목마" 에요 !!
아....뭔가 맘속에 남는듯한 기분이...그래도 여전히....음 아닙니다.
답글삭제글 잘읽고 갑니다^^
현재 미대생.
답글삭제난 진짜 이 스레의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오르막길같은 인생을 살아왔는가..-_-;;
초등학교,중학교때는 괴롭힘도 많이 당해왔다만.
집안도 유복한 편이라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고,지금도 살고있고. 부모님 두분도 건강에 사이도 좋으시고.
나만 잘하면 인생 드라마 완전 희극. 아 초등학교,종학교 시절은 편집으로 삭제하자[...]
대학생활이 힘들긴하지만 우울해지진 말아야겠다.
익명의 좋은점이네
답글삭제셀프 이코노미... 라는 걸 체험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짧게 써볼까요.
답글삭제남들 다 있는 유치원 졸업장이 없습니다. 애들이랑 어울리지를 못해서 제발로 나와 버렸으니까요.
유치원에 있을 시간 동안 책 읽는 게 일상이 되었는지 초등학교 때는 언제나 상위권이었지만... 나중에 얘기를 들어 보니 어무이도 아부지도 제가 애들이랑 잘 못 어울릴까봐 걱정하셨다고 하셨더군요. 1학년 선생님께 부탁할 정도로.
그리고 과연 전 잘 어울리지를 못했습니다. 3학년 때 왕따를 당하기 시작하고, 학교의 껄렁한 놈들은 놀림감으로 써먹고, 5학년 때는 반에 갇힐 뻔한 적도 있었고, 6학년 때는 본의 아니게 삥까지 뜯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학교 때는 조용히 지내서 덜했지만 이래저래 놀려먹고 하는 놈들도 많았어요. (중3 때 알았던 날라리 하나는 정말...) 그래도 초등학교 때보다는 통하는 친구들도 많아졌고, 저도 저대로 즐거웠으니까. 다행히 중학교 때도 성적이 좋아서, 중3 중반 때 '내가 정말 이런 놈들이랑 같은 학교에 가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어서 외고를 준비, 어쩌다 붙게 되었습니다. 그게 2년 전.
외고 와서도 지난 9년간 지냈던 게 몸에 뱄는지 애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건 여전합니다. 아니, 이젠 오히려 편해졌군요. 워낙에 말주변도 없고 관심사도 판이하게 달라서 (기숙학교라 TV 못 본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최신 가요도 관심 없고, MP3에 넣고 다니는 곡들도 최소 30년 묵은 해외 락메탈이 태반이라서) 애들과 말 붙이는 것도 힘들고, 혼자 돌아다니는 게 원래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해서, 지금은 2년 일찍 아싸를 체험하는 기분입니다.
이런 저지만, 솔직히 재수 하나는 좋았던 게 아닐까 하네요. 중2 때 버스에 치였을 때도 한 달 간 오른팔이 불편했던 거 말고는 멀쩡했었고, 친구가 거의 없다시피한 학교 생활이지만 있는 (그리고 있었던) 친구들은 전부 죽이 착착 맞고 하니까요.
이 아저s... 아니, 이 중생, 오랜만에 좋은 이야기를 들었는지 별 걸 다 적어버렸군요. 정말 자기성찰을 유발케 하는 스레입니다... 아아, 셀프 이코노미...
하늘색은 읽으면서 울 뻔했다...
답글삭제저는, 그닥 불행하게 살아오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제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제 자신도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윗사람들에 비하면 한없이 행복한 거였군요.
답글삭제오랜만에 좋은 스레가 올라왔네요 길기도 하고
답글삭제하나하나 전부 빛나는 이야기네요...
답글삭제마지막글에서눈물이....
답글삭제게이크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이 게이 게이 게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얼 웃겼지만 게이라던가 해서가 아니고 리얼 급반전에 당황한거. 순수한 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랄카 잘보고갑니다 ㅇㅇ 아 원래 눈팅만 할라그랬는데 게이반전이 너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답글삭제@엔비 - 2010/01/17 02:31
답글삭제순탄한 , 올곧은 길로만 가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틀어진 길의 갈림길에서 옳은 길을 선택하려는
노력이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지 않는가 라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주제넘게 끄적이다 갑니다. (_ _ )
Life isn't about finding yourself.
Life is about creating yourself.
- George Vernard Shaw -
@써커 - 2010/01/17 04:07
답글삭제새로운곳 가서 열심히 하세요 :)
심오한 예술영화도 아닌데 왠지 흥행은 대실패인것같네요..
답글삭제조연이나 엑스트라도 거의 등장하지 않구요. 대신 CG는 충만하지만..
결정적으로 왠지 여배우가 등장하지 않고있어요.
@인조인간 - 2010/01/17 02:10
답글삭제저도(........)
아.. 골고루 나랑 비슷비슷한 삶을 살았구나
답글삭제아..다들 슬프네요..
답글삭제학교 왕따이야기에 공감이 가는군요.
답글삭제뭐,,, 본인은 그래도 유복한(아버지가 전문직이고 어머니가 초등교사인)
집안이었지만.
근데, 왕따나 이런거 보면 여자가 더잔인합디다.
여자만 있으면 세상이 평화롭다니 그런거 다 거짓말일것 같군요.
그렇다고 남자는 괜찮다는건 절대 아니지만.
사람이란게 결국 해봐야 선악과 먹은 동물일 뿐 이란걸 깨닫는 인생이었습니다.
아직 얼마 살지도 못했지만.(선악과 먹고 더나빠졌다 랄까요, 자기 줏대로
남을 마음대로 해버리니..)
학교선생이라는게 결코 믿을존재가 되지 못한다는점, 이점을 꼭알아두셨으면
좋겠군요. 하긴, 좋은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니까요.
저 자신도 이기적인 인간인걸 언제나 느끼고 있지만.....(가끔 자기가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느끼시는 분도 있으려나..?)
@허리가아프군 - 2010/01/17 11:57
답글삭제뭐 인간이 굉장히 이기적이고 잔인한 존재지만,
그렇게 이기적인 본성에도 불구하고 이타심을 가지고
행동할수 있다는게 인간의 대단한점 이긴합니다.
아래글만 봐도 알수 있듯이...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펑펑 울었습니다.
답글삭제보통 사람들의 보통 이야기는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했어요
@요시노야 - 2010/01/17 01:47
답글삭제으아앗 제발!!!!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아도 이것보단 덜한 충격이 올거같습니다...
답글삭제오랫만에 훈훈한글이네요...
답글삭제평범하게 산다.. 라는게 얼마나 소중한건지 깨닳게되는글..
중간부터 정말 울었습니다...
답글삭제정말 좋은 스레군요 ㅠㅠ
이렇게 다양한 삶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랍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걸 보고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지막 말이 정말 가슴에 남는군요. 눈물이 나지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좋은 스레였습니다.
답글삭제이런, 눈에서 콧물이 흐르고 있어...
답글삭제이걸보니깐 우와 난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답글삭제뭐, 쓸대없이 인생을 낭비한다는 생각을 하고는있지만...
답글삭제후회하진 않습니다. 덕분에, 헤피엔딩으로 갈수있는
'길'을 찾게되었으니까요.
다른사람의 인생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도대체 뭘하고있었던거지?'하고
자학하지마세요, 비록 남들보다 행복하게 살았지만, 조금 인생낭비를한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도, 자신만을위한 '길'이 존재하니까요.
@히노 - 2010/01/17 13:47
답글삭제우와...써놓고보니, 이건 뭐 혼자 잘난척한것같네요;;;
아 결심해놓고 이자리를 떠나지못하는 내가 너무ㅄ같다 제길 착잡하네
답글삭제읽다가 음악이 멈춘건 나뿐인가?!
답글삭제좋은 의미로 배신당했다...(...)
답글삭제고해성사하는자리인가
답글삭제@시간의마술사 - 2010/01/17 14:23
답글삭제22여기, 나도...
기분이 묘해집니다
답글삭제왠지 지금도 늦지 않앗다는 생각이 드는....
답글삭제30년 뒤, 나는 나를 뒤돌아 보았을때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수 있을까..?
답글삭제눈에서 육즙이 흘러나오고 있다..ㅠ
답글삭제흐..흐흐흑...
답글삭제난 하고싶은거 공부때문에 포기한 파탄자!
답글삭제친구복도 없어서 배신으로 인한 왕따가 두번정도
그래도 배신한 친구이외에 친구는 많았으므로
혼자있는 시간이 길어야 한달이었징
긍데 배신한사람은 하나같이 뻔뻔해서 자기가 불리해지면 다시 나랑
친해지려고 한다 역겹게도
별로 주위사람 신경쓰지 않는타입이라 혼자있을때는 책을 읽는다던가
잔다던가 했지만 역시 심심해서 지금은 잘 놀구있다.
뭐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너무 좋은걸ㅋ
인생은 드라마군..
답글삭제에... 저도 한번 써볼까요...
답글삭제일단 저는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부모님이 여행사업을 하셔서 몇년동안 말레이시아에 계셨을때 태어났거든요]. 그리고 한 7년? 그정도 살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5학년 까지 한국에서 살았지요. 뭐, 다른 초등학생들과 다를것 없이 친구들이랑 같이 놀고, 어쩔때는 싸우고, 혼나서 울고 등등... 그러다가 영어공부를 하러 말레이시아에 다시 왔습니다. 여기서도 뭐,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여친은 없었지만요], 공부도 그럭저럭 하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9월쯤에 무릎 인대가 나갔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1달간 있다가 다시 돌아왔지요. 그리고 저번주. 또다시 무릎인대가 나갔습니다. 한번 끊어져서 약해진게 또 끊어졌데요. 이번에는 한국에 들어가면 미래가 보장이 안됩니다. 한국에서 있어야할지, 말레이시아에 또 다시 들어와야할지...
.
..
...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은따입니다. 이렇게 다쳤어도 방문안은 커녕 통화나 문자도 안날라 옵니다. 저는 그냥 그들에게 있으나 마나한 존재이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딱히 특출한 데가 없거든요. 외모도 평범, 키도 평범, 공부도 평범, 운동도 평범. 게다가 저도 왠지모르게 친구들이랑 어울릴려고 해도 어울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부터 학교 안에서는 몰라도 학교 밖에서는 전혀 어울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맨날 집에돌아오면 컴퓨터. 그 이외에는 하는게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한국에 비하면 낳습니다. 한국에는 아는 친구들은 커녕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리고 그 공부량을 제가 따라갈수 있을런지...
하지만 이 스레를 읽고보니 약간은 희망이 생기네요.
저도 저의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P.s. 참, 왜 5년간 한국에 있었을때의 친구들이랑 연락이 안되냐는분들, 그때 저희들은 세이클럽 타키라는 메신저를 사용했지만, 여기 말레이시아에서는 그 메신저의 사용이 불가능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연락이 끊겨버렸습니다. 남겨둔 전화번호나 주소도 없었고요.
P.s.2 약간 두서가 없어져 버린 글이라 읽는데 약간 지장이 있으실겁니다...;;; 죄송합니다. 글재주가 워낙 없는지라...
모두에겐 각자의 드라마가 있어.
답글삭제그 드라마에선 자신이 주역이고 각본가다.
드라마가 희극이 될 지 비극이 될 지는
결국 주인공인 자신의 몫인 거야.
----------------------------
이건 명대사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무대 위에서 모든 남자와 여자는 단지 배우일 뿐일지니
답글삭제- 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 中
....
답글삭제사람의 인생은 놀라움과 행복, 슬픔과기쁨의 연속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닳게된 스레였습니다.
최고입니다...가끔 저는 왜 이런 삶을 살게 됬을까 원망도 했지만 이 글을 보니까 좀 눈물나고 저는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살고있다는걸 알게됬습니다..
답글삭제왕따도 당한 적 없고 친구랑도 잘 사귀고 아빠는 자주 술 먹고 들어오시고 엄마와 가끔 술때문에 싸우기는 하셨지만 이제 다시 사이가 좋아지시고 있으니까..
가족들 모두 사이가 좋은편.아니, 좋습니다. 오빠는 지금 서울에서 일하고 있지만요. 어찌됐든간에..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정말 명대사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저 위의 사건만큼 아픔을 겼었습니다.
답글삭제하지만 지금은 가족하고 친구하고 행복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웃기위해서 마음 속으로 수없이 울었던것처럼
그건 아마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웃음이던 다른 사람의 웃음이던
행복이란 것이 굉장히 고맙고 감사하게 여겨집니다.
<모두들 웃으면서 사세요^^>
저도 고딩때 학교수업을 따라가지못해 점점추락을하고 지금에 와서는 공대에들어가서 그것도 힘든상태로 점점하는일없이 지내지만 이글을읽고 저는 의지가없었을뿐이구나라는 생각이듭니다....
답글삭제압도적으로 무거운 스레다.....
답글삭제나도 상당히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마지막글 너무 인상깊네요
답글삭제흐어어어어어어어엉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답글삭제꼭 한번씩 이렇게 눈물을 쏙 빼시는군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엔비 - 2010/01/17 02:31
답글삭제BoWn님과 생각이 같습니다.
아무리 보조 연출가들이 길을 틀어버린다 할지라도
틀어진 길을 올바르게 고치면서 나아가는 삶과
틀어진 길 그대로 가는 삶의 선택, 노력은 자신이
행하는 것이니깐요..
... 그런거네요, 하아 ㅡ
답글삭제다 좋아
답글삭제다 좋긴 좋은데..
자기연민에 빠지는거야말로 가장비굴하다는거.
이 점도 잊지말자.
감동을 주는 스레입니다.ㅠㅠ 저 배경음악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습니다. 분위기에 딱이네요. 제목도 '인생의 회전목마'..
답글삭제본문을 보고 감동을 받고나서 밑의 댓글을 보니 정말 동정받아 마땅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누구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한 사람이 몇명 보이는 것 같아서 아쉽다.
답글삭제그게 나쁘다는건 아니야
근데 뭐랄까...
불행하면 빨리 행복해지려고 하질 않고 불행한게 마치 자기 자랑이라는 듯이 하고
난 불행하니까 누군가가 도와줬음 좋겠어. 또는
난 불행하니까 이런 이야기하면 누군가 동정해줄거야. 같은 생각.
하지만 양심은 조금 있어서 대놓고는 말 못하고 간접적으로 자기 주위 환경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돌려 말하는 거
이런건 어때?
내가 너무 나쁜걸까? 생각이 너무 어린걸까?
정말 감동적이네요....저도 왕따이지만 힘내서 살아가야겠습니다.
답글삭제@써커 - 2010/01/17 04:07
답글삭제기운을 내시고 좋은 나날들이 펼치기를 저도 기원을 할께요..
그저... 인생무상 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답글삭제인생 이라는 무대에서 굴곡이 이리저리 움직여서 치고 무너져도
그저 포기 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게.. 가슴이 아프긴 해도
열심히 노력을 해야겠네요..
모두, 다 힘냅시다! 화이팅...
p.s '혼자' 라는거 힘들어도 이겨내보렵니다 :)
@사이키 - 2010/01/17 05:20
답글삭제감사합니다
@RHCP - 2010/01/17 17:56
답글삭제누구에게 의지하려 하는 사람도 정이 필요하고 관심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힘든 일을 견디는 힘이 다르고, 그 힘에 벅찬 일을 겪으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마련 아닐까요.
하지만 누군가를 보고 동정받아 마땅하다, 아니면 그 정도로 엄살부리지 마라, 이렇게 생각하는 건 조금 어린 생각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는 그 사람의 입장에 설 수 없으니까, 그저 공감하고 이해하는 게 전부니까, 섣불리 누군가를 판단하는 건 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말 좋네요 . 이런 스레 . . . . .
답글삭제너무 좋은 스레였습니다. 제 삶을 돌아보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어요!
답글삭제@死門 - 2010/01/17 15:20
답글삭제금방 나으실 수 있을 거에요.
난 지금 뭐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가뿐히 한계치를 벗어났다.
답글삭제중2 올라가는 지금 난 대체...
열심히 살야야겠다.
이걸보니 제인생을 글로 나기고싶어졌습니다 (17년인생이지만요)
답글삭제제생각으로 얼굴평범 , 몸 통통한편 , 공부 하위 , 얼굴피부 좋음 ,
팔/다리 의 안쪽(?)잘안보이는피부 더러움?
제가족은 아버지,어머니,11살차이누나,9살차이누나,4살차이누나,나 입니다
저는 일단유치원을5살때들어같습니다 (94년2월생)
초등학교1학년때에는 친구들과 어룰리며 평범하게지냈어요
2학년때 아버지가 입원하셨어요
지금은 잘기억안나지만 병원에만 계셨어요
병은 버거스라는 병인데 혈관이폐쇠되는병입니다
[아버지는 36살때쯤부터(현58) 걸려있어서 보험을 들수가없었습니다]
결국 다리쪽의 혈관이 폐쇠되서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제가기억하는 아버지모습은 바둑 , 낚시를좋아하고
과자를 몰래 숨어서 우리들에게 주기싫어서 바둑판밑에 숨겨놓고 몰래먹는 분이셨습니다
2학년 겨울방학때쯤 아버지가 집에오셨습니다
저는 다나았구나했습니다.
3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셧습니다 장례식할때
그냥 그렇구나 하고 사촌과 놀았습니다
너무어려서 죽음이란걸 몰랐던거 같습니다..
4학년때부턴 왠지모르겠지면 친구들한테 배C 불렸습니다 1명빼고
5학년때 어머니가 중국으로 돈을벌로가셨습니다
저희는 친척집에 살다가 빌라고 이사를같습니다
이때는 누나가 저희를 먹여살렸습니다
6학년때 다른지역으로 이사가게되서 친하던 친구들과 해어지게됬습다
아 초등학교때는 남들처럼 학원이나 예습,복습을안했는데
시험을치면 10등안에는들었습니다 최고4등
선생님들도 신기해했습니다 매일 학교에서 잠을잤거든요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중국에서 사업이 실패하신것같았습니다
들으니 산에서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다고했습니다
다행히 이상은없었습니다
그리고 큰누나는 혼자 원룸에살고
둘째누나는 대학
막내누나와저는 어머니와같이 방2개+복도주방(거실x)인생활하게됬습니다
막내누나는 자퇴를하고 알바를하면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고기집에서 주방장(?)일을하게되었습니다
1학년까지는 행복하게보냈습니다
2학년때 ...........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과도한일과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수술을하셨고 다행히 수술은 설공하였습니다
다만 눈쪽의 시신경이 잘려나가서 시력이 안좋아지셨습니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언제 죽을지모르는 상태이십니다
아니면 눈이 갑가지 실명되거나요..
아또 마음을 조절못한다고할까 화를조절못합니다
갑자기 아무일도아닌거에 뻥 터져버린달까요...
의사선생님이 그런일은 안좋으니 조심하라셔서
되도록 어머니한테 잘보이려고 합니다
그것빼고는 정상이십니다 의사말로는 기적이라는군요
다른 뇌출혈환자는 집앞 시장가는 거까지도 힘들다는데
어머니는 팔팔 하신것같습니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고기집일을그만두고
화장품일을다니다가 그만두고 현재는 보험일을하십니다
다행히 누나들이 어머니에게 돈을 보태줍니다..
저와막내누나의 보험료도 내주고요
아무튼 3학년때 절망했습니다
제성적이 너무 낮더군요 결국 운동을그만두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르지않았습니다 중위권이한계였습니다
또한 살이불어났습니다
고등학교는 어찌어찌해서 입문계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반에는 질안좋은 학생이 몰려있었습니다
다행히 왕따같은건 되지않았습니다
하지만 진정한친구는 없습니다 학교에선잘지내도
하교하면 별로 같이있지않고
집에서 컴퓨터만 깨작깨작거립니다
성적은 중하위권...
몸은 계속불어나서 운동을다시하였습니다
결국다시 10키로를 뺐습니다
비만 --> 과체중이 된거죠..
현재 2학년으로 올라갑니다 일단 프로그래머가 꿈입니다
공부를 열심히해서 어머니에게 효도를 해드리고싶어요..
누나는 현재 회사원 / 간호사 / 간호과학생입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101번째 댓글! 이라고나 할까 이제 고3인 나에게 인터넷은 사치일뿐...
답글삭제다른곳에서 읽고 혹시 여기서 가져온게 아닐까 하고 봤더니 역시 있네요
답글삭제처음엔 길어서 어떻게 다 읽나했는데 읽다보니까 빠져서 다 읽었네요 ㅠㅠ
정말 하나하나 드라마 ㅠㅠ 번역하시느랴 힘드셨겠어요 ㅠㅠ
정말 잘 읽고 갑니다 ㅠㅠ
@배C - 2010/01/17 21:46
답글삭제쓰고보니까 오타랑 문법이 틀린게많네.
음.
답글삭제여자애들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가 없는, 남자뿐인 공업 고등학교라서 인가.
라고 적혀있는 글을 보고...
그 스레에서 분명히 형이 아니라 오빠고, 누나가 아니라 언니인데...
남자뿐인 공업 고등학교...
여자애들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가 없는,
당신같은 기분나쁜 사람을 좋아합니다라는 편지를 받는다 던지...
남자야 여자야..
@요시노야 - 2010/01/17 01:47
답글삭제킁킁킁킁킁ㅋ킁
@RHCP - 2010/01/17 17:56
답글삭제내가 너무너무 힘들때가 있었는데
친구가 써준 편지한장에 기운내고 그다음날부터
힘내고 잘 살았지요..사람이 힘들때는 동정받고싶고 기대고싶은건 당연한거라생각해요;
너희들도 스레를 이어나가는거냐!!?
답글삭제혹시나 하고 코챈에 갔더니 이런 타래가..
답글삭제http://korchan.com/ch/?id=4aab168895481f3e091c3539aa54c637
할말 많은 사람들 여기로 가보는건 어떠신지?
으음;;; 어쨌든 처음부터 여기까지 정주행 성공;;
답글삭제근데 어째 너무 슬픈 스레다ㅠㅠ
나는 일단 고2인데 좋은부모 만나서 너무 편하게 살아와서;;
이런거 보면 이해는 안되는데 너무 슬퍼ㅠㅠ
BGM으로 릴리슈슈의 모든것 ost 중에 공명共鳴을 듣고 있는데, 4<<에서부터 바톤을 넘겨받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아 스레 하나를 채우는 모습이 마치 공명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눈물이 났습니다.
답글삭제저는 부모님과 한 살 위의 오빠가 있는 평범한 여대생입니다. 부산의 5남매 중에 홀로 상경한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탓에 친적집을 전전하며 살던 어머니가 만나서 오빠와 저를 가지셨고요.
봉투를 붙이고 인형 눈을 붙이고 책을 제본하고 회로에 납땜을 하고……그렇게 일한 돈을 사기를 당해 다 날리고, 설상가상으로 IMF 때문에 아버지 친구들과 벌였던 작은 정비사업도 망하고……. 어릴 땐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가던 겨울, 없는 세간살이에 알콜중독에 걸리신 아버지 탓에 어머니는 제 손만 붙잡고 집을 나오셨습니다. 어른의 발에 등을 밟힌 건 숨막히게 아팠지만 그래도 어머니께 애원하고 아버지께 악을 쓰며 간신히 이혼은 막았습니다.
집안이 엉망이 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였네요. 어머니께 버림받았다는 충격 탓에 오빠는 엇나가고, 절 때리고……몸에 피멍들고 자꾸 토해서 보건소만 몇 번을 갔는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집에 돈이 없으니 뼈가 부러지지 않는 한 병원은 못 갔습니다. 그럴 때 아버지는 사이비종교에 빠져서 우리집이 이렇게 된 건 전부 자기가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 뜻이라며 거기에 목을 매시더군요. 어머니가 산 송장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나만 이 집에 돌아오고 어머니는 외가로 가시게 했어야 한다고 하루에도 몇번씩 후회하며 울었습니다.
중학생이 무너지는 집을 추스릴 방법은 사실 없었습니다. 목숨걸고 공부했지요. 교과서 말고 참고서라는 게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헌책방 가서 참고서 한 권 사는 그 천 얼마는 두 끼 밥값이었으니까요. 선생님들께 엄청 도움을 받았습니다. 교사용 참고서에 급식비 지원, 그리고 백일장에서 타오는 문화상품권 몇 만원. 우여곡절끝에 고등학교 입학식 때, 장학금 증서를 받았을 땐 혼자 한참동안 울었습니다. 하지만 여유가 주어지는 건 잠시뿐이더군요. 고등학교의 생활패턴 탓에 몸은 있는대로 망가지고, 성적도 떨어져 장학금도 못 받고, 아버지의 수입이 늘었던 탓에(집이 아니라 교회로 가는 돈이었지만) 급식비지원도 못 받았습니다. 어머니께는 지원을 받았다고 거짓말하고, 점심은 굶고 야자는 빠지고 집에 돌아오는 그런 생활의 계속이었습니다.
고2때는, 생일이 빠른 오빠가 대학을 가야 해서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데, 그 이자만으로도 가세가 기울더군요. 그렇게 기껏 간 대학에서 애인을 임신시키고 낙태시킨 탓에 평판이 나빠졌다며 자퇴를 하고 저와 같이 수능을 쳤습니다. 술에 취해 절 건드리려고 한 적도 있었지요.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자기는 기억이 안 난다며 발뺌했지만요.
고3때 무단결석만 서른번을 했습니다. 정신과에 다닌다고 해도 항우울제를 먹으면 겉으로는 멀쩡해보이기 때문에, 출석일수를 깎이지 않으려면 진단서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결국 담임선생님께 진단서를 내밀고, 집안일을 털어놓고,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한 마디를 하며 울었습니다. 죽고싶다고.
너같은 애가 죽는 건 아깝다고 말씀해주신 그분께 논술을 배워서, 우여곡절끝에 수도권의 사범대에 붙었습니다. 1학년 1학기에 과 수석도 해봤지요. 씀씀이 작은 학교는 3분지 2밖에 장학금을 안줬습니다만은.
그런데, 딱히 변하는 건 없더군요. 그쪽교회사람은 구원을 못받네 어쩌네하며 어머니를 욕하고, 오빠는 담배 피우는 년은 싫다며 제 턱을 걷어차 그 다음날 부터 있던 시험을 줄줄이 망치게 만들고, 아버지는 집에서 내내 성경만 들여다보고 계시지ㅋㅋㅋㅋ해피엔딩같은 건 정말로 드라마에나 있는 거예요.
며칠 전, 결국 학교 앞에 원룸을 구했습니다. 지금도 이삿짐 싸는 중입니다. 원래는 혼자 살려다, 도저히 집에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어서 같이 나가게 됐습니다. 생활비가 문제였는데, 절 좋게 봐주시는 교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연구팀에서 일을 도울 수 있게 해주시더군요. 아버지도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은 대주시겠다고 하셨구요.
사실 여전히 괴롭습니다. 가족과의 연을 끊는 것도,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것도, 몇 년 뒤에 임용을 봐야 한다는 것도. 만일, 제 인생이 드라마라면, '평범한 사람 1'이라는 배역을 받고 싶습니다. 아마, 그 정도만 되더라도 행복할 거예요.
@카페인 - 2010/01/17 08:23
답글삭제오르막길이면 올라가기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ㅋㅋㅋㅋㅋ
힘들면 우울해질 수 있어요. 그래도 그 뒤에 힘껏 털고 일어나서 웃을 수 있다면 참 멋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ㅋㅋㅋㅋ같이 힘내요.
@死門 - 2010/01/17 15:20
답글삭제저도 발목 인대가 몇 번 나갔는데, 조심해서 걸어다니는 정도는 괜찮더라고요. 뜀박질은 얄짤없이 못하지만... 무릎은 조금 사정이 다를지 모르지만, 병원에서 처치만 잘 받으면 그렇게까지 희망은 없는 건 아니에요. 너무 낙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없긴 왜 없어요, 여기 있잖아요ㅋㅋㅋㅋ괜찮아요, 분명 잘 될거예요. 뭐든지.
@... - 2010/01/17 03:11
답글삭제지금은 조금 지쳐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해왔으니까 그만큼 맥이 풀려버린거죠. 그러니까 자책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아버지가 그리우시다면 다시 한 번 열심히 해봐요. 충분히 할 수 있는 분이시잖아요. 그렇죠?
으음. 늦은 감이 있지만 저의 조그마한 일이라도 적어볼까 합니다...
답글삭제저는 초6까지는 정말로, 아무리 생각해도 별 탈없는 평범한 인생이었습니다.
제 기억력이 나빠서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사건이 터진 것은 초등학교 졸업을 3~4주 앞둬 놓고 입니다.
그때당시 저의 가족은 조부모까지 계신 대가족이었습니다.
그날은 무슨 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들께서 술을 드셨지요.
그때 저는 방에서 시끄러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할아버지의 괴성이 들리더군요.
그리고 무언가 깨지고, 제 동생(여)이 소리지르는 것이 들렸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런 것인지, 겁을 먹은 것인지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계속 방안에서 떨며 무슨 사태인지 소리만으로 알아들어야 했습니다.
잠시후 아파트 경비원 두분까지 집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렇게 소란은 사그라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괜찮다고, 아무일도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절대 괜찮지 않다는 것은 몸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희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심하게 다투었던 것입니다.
이후 저희 가족은 서먹서먹해지고, 저는 가족이 서먹서먹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몇일이 지났습니다.
그 몇일이 지나고 나서야 저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저를 웃는 얼굴로 대해주시던 할아버지의 눈빛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눈빛은 아마 평생이 가도 잊혀지지 않을 듯 싶습니다.
할아버지는 저를 쳐다볼때, 손자를 쳐다보는 얼굴이 아닌, 인생의 원수를 쳐다보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는 저의 인사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몇일 뒤. 사건이 일어나고 정확히 1주일 뒤.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저와 동생을 보고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집을 사느라 제대로 저축된 통장하나 없이 옷과 몇가지만 가지고 나와 근처에 사는 이모네 집에서 눌러앉아 살았습니다.
졸업을 하기 전까지 아침에 동생을 데리고 버스를 타며 등교할 때, 언제 할아버지가 원수를 보는 눈빛을 하며 나타날 지 몰랐기에 항상 겁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고 저희는 전세를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1.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저의 정신이 뭐가 어떻게 되었는진 몰라도,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두려움에서 분노로 바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중2. 저의 감정은 분노로 심하게 휩싸여 있었습니다.
저의 친구들에게 인간으로 하지 못할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절대 그 인간의 장례에는 고개를 내밀지 않겠다고. 만약 간다면 그건 그 인간 때문이 아니라 가족의 체면을 위해서라고.
그렇게 망발을 해대며 중3.
여름방학 쯤에 할아버지께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저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병원에 같이 가자는 가족의 부탁을 침묵으로 거절했습니다.
저의 예상대로 할아버지는 회복을 했고(저는 나중에 들었습니다.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났지요.
그리고 중학교 졸업을 앞둔 상태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다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때조차도 저는 분노때문에 가족의 부탁을 두번씩이나 뿌리쳤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간곡한 부탁에 3번째로 가게 되었지요.
그곳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앞으로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TV에서만 보던 수많은 전극. 저는 이때 저의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때조차도 아마 저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온갖 욕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때 할아버지께서 고통스러워 하시면서도 저에게 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고통때문에 목소리조차 나오시지 않아도 단한마디. 입모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미안"
지금도 확실하지 않지만 할아버지께서는 그 말씀을 마지막으로, 제가 병원을 간 다음날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돌아가셨다는 소식에도 아주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어차피 나와는 인연이 끊긴 사람이라고.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어째선지 마음한쪽이 답답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도 언제나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몸에 염을 할 때.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뵈었습니다.
마음속 한구석 응어리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그래도 울진 않았습니다. 목놓아 울고 싶어도 3년간 메마른 눈물은 끝까지 나오지 않더군요.
장례가 끝나고 가족은 할아버지가 찍힌 생전의 사진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볼 수 없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버리고 할아버지인 걸 알면서도 욕을 서슴치 않은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도저히, 도저히 사진을 올려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 눈, 해맑게 웃고 계신 그 눈. 그눈을 보기에는 너무나도 지은 죄가 크기에.
저는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6개월을 보냈습니다.
부모님께 저의 감정을 말씀 드렸을 때.
그제야 장례식장에서 나와야 했던 눈물이 나오더군요.
울었습니다. 마음껏 울었습니다.
메말랐다고, 그렇게 자부했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날 부모님은 저를 위로해 주셨고, 그것으로 끝나셨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십니다.
저는 제가 적은 이 모든 것을 잊을 생각이 없습니다.
죄인이기에. 너무나도 큰 것을 잃었기에.
잘못된, 너무나도 잘못된 3년을 산 죄책감은 절대로 저를 놔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놓지 않겠지요. 앞으로도 이 감정만은 지울 수 없는, 저의 인생의 한 부분이 되겠지요.
죄송합니다. 감정에 휩쓸려 길게 쓰고 말았네요.
이렇게 긴글을 읽어주신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성큰콜로니 - 2010/01/17 22:44
답글삭제... 저와 같은 고2시군요...
읽어보니 정말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신 분이 많이 있네요..
답글삭제전 정말 평범하게 초등학교를 나와서
정말 평범하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뭐 1학년때 왕따 비슷한 경험이나 2학년때 빵셔틀 비슷한거 한 경험이 있긴 하네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그냥저냥 살다가,
재수해서 대학 와서 이제 본과 1학년 올라가는 별 굴곡도 없고 그렇다고 재미 없는것도 아니고 그냥저냥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쓰고보니 정말로 평범한 인생이네요
30대 부터는 평범하지 않은 삶도 살아보고 싶어요
@thanatos - 2010/01/17 23:33
답글삭제평범하진 않다고 해도, 절대 부정적으로 특별한 삶을 사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thanatos - 2010/01/17 23:33
답글삭제평범한게 제일 좋아요....
>>325 글보고 진짜 울었습니다ㅠㅠㅠ
답글삭제다른 분들도 힘든 사연이 많으시네요;
스레 제목과 다르게 내용은 너무 슬픈 스레ㅠㅠ
한가해서 나온단게 이런이야기일 줄이야 좋은 의미로 배신 당했군
답글삭제좋은 스레...참으로 많은걸 생각하게 해주는..
답글삭제노력하자....
음..정말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는 스레군요.나도 앞으로는 착실하게 살아야지..
답글삭제뭐랄까,
답글삭제전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만해도 평범하게 살았던것 같아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런데 3학년때인가 하여간에 아버지가 사업을 벌이셨습니다.
큰 식당을 차리셨는데, 여기서 성공하면 말이 안되겠지요.
쫄딱 망해가지고는, 저는 그때 잘 몰랐지만 그때 진 빚이 5억이였던가..그랬다더라고요 최근에 알았지만. 외삼촌을 보증인으로 세웠던 탓에 외가하고도 사이가 서먹해지고 어머니와는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저하고 동생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싸우셨었어요. 아직도 기억나네요. 말싸움만이 아니라 쾅 하는 소리가 났던걸 봐선 몸싸움도 했던것 같은데..가물가물.
전 굉장히 성격이 민감한데다 소심하고 조용조용하게 생겼다..랄까 하여간에 누군가 말하길 입만 다물면 모범생같이 보인다, 라더군요. 그냥 쉽게말에 논다는 애들이 건드리기 딱 좋게 생겼다 이거죠. 초등학교 6년중 3년을 왕따당했을거에요. 어떻게 버텼는지도 모르겠어요. 남자애 여자애 할것없이 여튼 좋게 못살았네요.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끝날줄 알았지만 초등학교 3년치를 중1때 전부 당한것 같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좀 지방인데다 매점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빵셔틀이라던가 삥을 뜯긴다던가 일진 집단폭행..뭐 이런건 없었지만 왜 여자애들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 거이 성추행 미수에 가까울 정도의 것도 있었고...2학기때 몇 없던 제 친구까지 울게 만들고 이러다 너무 싫어서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그냥 울었습니다. 누가 있든 없든 정말 서럽게 울었어요. 결국 부모님 소환도 되고 어찌저찌 된것 같지만..1학기를 어떻게 버틴것도 동아리에서 좋은 친구를 못만났으면 그냥 죽었을거에요.
2학년땐 큰 일은 없었지만...가정사정이 많이 기울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결혼한것도 중매쟁이가 거진 반 사기쳤던것이였고 어머니도 애초에 집안일만 하기로 생각하고 결혼을 했다는데, 가게가 망하면서 빚이 늘자 어머니도 결국 일을 나가셨습니다. 하지만 아줌마 혼자 벌어야 얼마나 벌겠나요. 아버지로부터 생활비 한푼도 없이 혼자서 벌고 하지만 지출에 비해 수입이 못버티니 카드로 긁고...그렇게 되다보니 카드빚만 늘어나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랄까 그런건 더 늘어만가고..그런게 극대화됐던게 제가 중2때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1~2학년을 거치며 사춘기가 심해진지라 성적때문에 부모님과 많이 싸우고 중학교에 적응을 도무지 못해서 지각도 많이하고..그렇게 또 싸우고...거기다 제가 쓰는 용돈의 지출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습니다. 부산 코믹월드라던가..그런데 자주 다니게 되면서 오덕생활[..]에 거이 미친듯 심취했었거든요. 제가 비정한 성격이 못되는지라 부모님한테 독한말 하고 후회하고 또 그러고..알면서도 그런말을 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싫었습니다. 정말 죽고싶다 이런 생각이 깊어진것도 이때였던것 같네요. 겉보기엔 멀쩡한데 2학년 말때 성격 진단이랄까..담임선생님이 그것을 결과를 보고 결국 부모님과 상담을 하셨는데..바뀐건 없었어요. 성격 진단에서 사교성 뭐 이런부분 전부다 D~F를 맴돌았던게...누가 봐도 놀랬을거에요.
3학년이 되면서 사춘기가 지나고, 친구는 친구대로 사귈수 있었고 왕따문제는 나름대로 해결도 되고(여전히 좀 그런 애들은 있었지만 본성이 그런것들이니 때려서 고치지 않는한은 어쩔수 없죠) 성격적으로는 편해졌지만...고등학교 진학이 문제가 되니 성적과 집안 문제가 또 계속 터졌었습니다. 친구가 늘어나니 제가 쓰는 지출이 늘어나고,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학원도 다니고..아버지도 직장을 찾긴 하셨지만(솔직히 아버지가 이때까지 뭘 어떻게 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글 쓰면서 이 사이의 기억이 텅 비어있던걸 깨달았네요) 수입이 들쭉날쭉했고 어머니는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셨습니다. 하지만 제쪽에서의 지출이 장난아니게된지라 용돈 + 학원비 등등...학원비는 밀리고 용돈은 그거대로 못받고...코믹월드라던가는 거이 안다녔지만 오덕짓 하는건 똑같아서는 지출은 그대로였지만 수입은 못따라오는데 저는 왜 나는 취미생활 하나도 제대로 못즐기는거냐 싶게 너무 화가나서 컴퓨터만 붙잡고있고...성적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중간이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좋은 친구도 만나고 굉장히 안정됐지만, 또 돈이 문제더라고요. 그냥 버는거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빚때문에 그쪽으로 지출이 계속 나가기 때문에 결국 기록상으로는 수입만 기록되니 운영지원비, 급식비, 보충수업비 전부 밀려댔습니다. 선생님은 계속 독촉하시지만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고 담임선생님이 굉장히 보수적인 분이여서..저희집의 상황을 좀 이해 못하시는것 같았거든요. 남들과 제가 더더욱 비교됐습니다. 왜 얘는 이런데 난 못하는거야 왜 안되는거야. 친구들과는 허물없이 지낸다..고도 할수 있지만, 같이 노는 친구들이 전부 공부로는 거이 탑클래스고, 공부를 못해도 그 나름대로의 특기가 있는 애고...저는 아무것도 없는, 너무 특징없는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술을 하려고 생떼를 한번 써봤습니다. 역시 안되더군요. 그놈의 돈이 또 문제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오면서 지출은 곱빼기로 늘고 제가 필요로하는 용돈도 더더욱 늘었습니다. 하지만 수입이 늘어난것도 아니고 빚이 줄어든것도 아니였습니다. 전 점점 더 계산적이 되어버렸습니다. 밥을 먹어도 돈을 씹는것 같고, 생활비와 제 용돈을 분리해갔습니다. 하지만 제 계산대로 현실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전 모든게 점점 더 싫어졌습니다. 친구에게 생일 선물도 제때 못줄만한 제 금전상황이 너무 싫고 그렇게 만든 부모님이 너무 미웠습니다. 왜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면서 낳은줄도 모르겠습니다. 이딴식으로 살거면 속아서 결혼했으면 이혼을 할 것이지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상가상..이랄까 제 동생과 사이가 안좋습니다. 동생이라고 말하기도 싫습니다. 저건 이미 집에서 서식하는 거대한 쥐, 바퀴벌레로밖에 안보입니다. 너무너무 싫습니다. 정말, 지금 모든게 너무너무 싫어요. 저딴 동생과는 대화도 불가능합니다. 이미 생각하는 구조 자체가 다른데 '대화로 해결해보세요' 그런 소리가 너무너무 싫습니다. 몇년간 작게작게 쌓여온 앙금이 확 터져서 미치겠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게 서로를 증오합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싫고 나라라는건 이미 돈 빠는 기계로만 보입니다. 아버지가 정치에 좀 손을 대시고 있는덕에(톡 까놓고 말해 노무현&유시민 지지..그런걸 좌파라 하던가요) 생각 구조가 약간 다릅니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됩니다.
제 성적은 정말 잘하는거 못하는거 좋아하는거 싫어하는거 티가 확 나는 성적이라...국어, 국사같은건 1~2등급 나오는데 영어, 수학 이런게 4~5등급 바닥을 치는지라...공부가 안될수록, 오히려 환경을 탓하게 되더군요. 아무리 공부 못하는놈이 환경탓부터 한다지만 집안 빚은 거이 청산했다고 말은 하지만 이제 어린애도 아닌데, 2년만 있으면 성인인데 집안 사정에 대해 알건 다 압니다. 빚은 남아있고 부모님 사이도 좋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제가 있는 공간은 제 방에서 문 잠궈놓고 있을때가 가장 좋습니다.
글이 두서없지만....전 이제 모든게 돈으로 보이고, 인간이 싫고 모든게 싫습니다. 만화&애니&게임에 빠진것도 그런 덕분일까요. 그리고 성적은 딱 중간입니다. 좋아하는건 1~2등급 나오지만 단적으로 싫어하는 수학같은건 7등급도 나와봤습니다..좋은 대학갈 성적은 못되먹죠. 어떻게 해야될까요 전...이제 금전적으로 행복해지지 못한다면, 제 인생에 행복이란건 없을것 같습니다. 용돈을 어떻게든 받아서 악착같이 모으면, 어이없게도 밀린 휴대폰요금 같은걸 결국 제 용돈으로 내버리게 됩니다. 3,4만원도 아니고 15만원이였습니다. 생리대, 속옷 이런것도 결국 용돈 모..
종교라도 믿고싶지만, 여러모로 신은 믿음직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되서..지금 당장 꿈에서 나타나 로또 번호라도 가르쳐주지 않으면 평생 종교 믿을일은 없을것 같네요. 이제 삶의 버팀목은 만화네요.
답글삭제살면서 제 말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좀 더 달라졌을텐데..살면서 친구도 부모님도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질 않았어요. 컴퓨터로 계속해서 적는것밖에..끊기지 않고 말하는 방법이 없었어요.
누군가와 상담이든 뭐든, 제가 목소리가 작은편이라지만. 진심으로 끝까지 계속 진지하게 누군가가 좀 들어줬으면 훨씬 편했을텐데. 저도 제 진심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건 힘들겠지만...여러모로 혼란스러워서...
그래도 이런 스레(?)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채소 - 2010/01/17 22:49
답글삭제교수님께 사정을 말한 것 만으로 일을 받다니, 저같은 사람은 생각도 못할 일이네요ㅠㅠㅠㅠ부럽습니다.
열심히 해오신 만큼, 이제는 충분히 행복해지세요!
@thanatos - 2010/01/17 23:33
답글삭제자기 인생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멋진 걸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원하신다면 평범하지 않은 일을 질러보는 것도 좋아요, 오히려 30대가 되기 전에ㅋㅋㅋㅋ
좋은 글이네요.
답글삭제살아온 인생을 다시금 생각하게 됬어요.
하아...... 잘 살아볼까나... 좀더 힘내야지.........
답글삭제@배C - 2010/01/17 21:46
답글삭제힘내세요~
또 고등학교때에 좋은 친구만나서 즐겁게 학교생활 했으면 좋겠네요 ^^
@아카리나 - 2010/01/17 22:10
답글삭제여자이겠지요..마치 예술 고등학교?? 이런 거의 여자밖에없는 곳에서 남자들이 몇명있거나 그런식으로
공업고등학교라고해서 남고는 아니자나요. 그러니까 여자분들이 거의없으니까 여자들 특유의 무언가?가 없는걸 말하는 것같네요. 편지는 이지메인가.. 남자가 여자에게 편지쓰는건 당연한거아닌가 하는생각이드네요.
@채소 - 2010/01/17 22:49
답글삭제힘내세요.. 마지막말이 와닸네요.
저도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는 되고싶은게뭐야?
라고하면 평범한 가족에서 태어나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고 평범하게 대학을 가서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다..라는게 제 꿈이였지요..
대학교 와서도 열심히 힘내게 계시네요!
사랑합니다 ~ 힘내세요^^
@리모콘 - 2010/01/18 02:20
답글삭제우선...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말고 힘내세요..라고 말하고 싶네요.
저도 학교다닐때에 정말로 돈이없어서 힘들었고 지금도 돈이없어서 허덕거리고 있는대학생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핸드폰 하나없이 생활했고(지금 핸드폰이 있지만 제통장에서 요금이 나가고 있지요.) 옷살 돈도없어서 거의 교복생활했었고 지금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과외하고 학원한번 다녀보지 못한 그런 보잘것 없는 사람입니다만... 언제나 주위에 보면 돈많아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죠. 정말 고등학교때에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하고 방황하게 할 수 도 있지만 너무 자신을 비하하지 말아요.. 재활용도 불가능한 쓰레기라니요 ㅠㅠ 그럼전 길가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담배 꽁초보다 못한인생일 수도 있어요. 저는 힘들때에 친구에게 위로를 받았어요. 아... 실제로도 말잘못하고 글도 잘 못써서 이상하게 보이지만..
아이런 .. 저도 생각이 짧아서 무슨 말을 해야 조심스럽네요.. 단지 누구군가가 당신을"사랑합니다. 힘내세요!" 라고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안그래도 스레를 읽으면서 쓰고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먼저 길을 터주신 분들이 있기에 저도 한번 남겨봅니다.
답글삭제제 인생 최초의 기억은 세 들어 살던 집, 어느날 저녁. 그곳에서 일어난 부부싸움이었습니다. 머릿속에 크게 남을법도 했죠. 그 부부싸움에서 싱크대가 우그러졌으니까 말입니다.
유치원도 그럭저럭 잘 보냈고, 초등학교도 1년 일찍 들어갔지만-친했던 친구가 1살 많아서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길래 저도 덩달아서 들어갔습니다-. 그때의 저는 어느 애와 다를 것 없이 밖에서 잘 뛰어노는 애였습니다. 단지 책을 너무 읽어서 안경을 쓰며 남들보다 더 빨리 머릿속이 차있었다는 것을 빼고는 말입니다.
어느때 부터였을까요. 아버지는 일도 나가시지 않고 하루종일 집안에 드러누워서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셨고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사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도 썩 좋은것은 아니었습니다. 요리사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회삿일 하시던 어머니를 보고 반해서, 결국 반 납치나 다름없는 상태로 결혼. 그때 어머니의 뱃속에는 제 형이 자리잡았다더군요. 그래도. 그래도 거기까지면 좋으련만, 이 아버지란 작자(말이 심하다 해도 할말이없습니다. 저는 이 사람을 아버지로 봐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는 일도 재대로 안하고 매일 이 일 저 일 시도하다가 결국 IMF때 짤려버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놀라움을 느낍니다. 악착같이 일해서 결국 세들어 살던 집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새로운 학교. 네. 잘 지냈습니다. 한동안은 말입니다.
어른이 무서운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때로는 애들이 어른보다 더 무서울때가 있습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악착같이 괴롭히니까요.
코를 파다 걸렸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죠. 생각해 보면 정말 완벽한 조합이었습니다. 전학온지 얼마 안돼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책 읽어 허구한날 모를 소리만 지껄이는데다가+사교럭도 없다. 어라, 근데 이런 일이 생겼네? 놀려먹어야지.
...여기서 부터 어긋났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학교대로 팍팍하지. 집에 오면 아버지란 작자는 놀기만 하고 도박에다 부부싸움. 심지어는 인터넷 채팅으로 바람까지(제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게다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보내준 학원에서도 애들은 구박하지. 진짜 하루는 애들이 워낙 심하게 굴길래 가방 싸들고 학원을 나가버린 적도 있습니다. 물론 학원 선생이 목격해서 다시 자리로 돌아갈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몇년을 버텼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였을겁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티비에서는 그때 한참 인기를 끌던 드라마가 틀어져있었고. 안방에서는 한참동안 시끌벅적하더니 아버지가 짐을 싸고 나가려고 하시더군요. 그때 저는 처음으로 가장 용기있는 행동을 했습니다. 집을 나가시려던 아버지를 온 몸으로 가로막았습니다. 그러자 그 작자는 저를 걷어차버리더군요. 구석지로 밀려나가 온 몸이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어머니의 만류에 저는 방안으로 들어가서 머릿속에 들어가지도 않는 책을 펼쳤습니다. 한참후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네. 그 빌어먹을 작자는 결국 집을 나갔고, 얼마뒤 어머니와 이혼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게 더 좋았지요. 적어도 집에서는 평안해질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별로 나아진건 없더군요. 여전히 학교와 학원에서는 소문난 병신이었으니까.
그리고 1년뒤. 또 한번 제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어머니의 재혼.
새아버지(지금은 이분을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고마우신 분이죠.)는 좋은 분이셨습니다. 이제까지의 형이 아닌, 앞으로 큰형이 될 사람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쪽 가정의 막내. 그러니까 앞으로의 둘째 형이 될 사람.
정말로 그때 당시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놈이었습니다.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지금 물어볼 생각도 없지만. 아마도 화풀이 상대가 필요했나봅니다. 레슬링을 한다면서 허구한날 침대위를 들썩였습니다. 오죽하면 침대 매트릭스 스프링이 나가버렸을까. 말을 안들으면 때렸습니다. 그때(당시 초6~중1) 저는 참 가관이었습니다. 구레나룻 쪽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고, 정신과 의사랑 상담도 받았으니까요. 결국 저는 그 둘째 형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시키면 싵키는 대로 하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 편이 훨씬 편했으니까요. 그나마 거기서 끝났더라면 버틸수는 있었을 텐데. 중학교 1학년. 저는 다시 왕따가 되었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때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잔인하고...더 끔찍한.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저를 버티게 해줄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교실 독서대에서 우연히 발견한 퇴마록 세계편 2권. 그리고 도서관에서 발견한 퇴마록과 치우천황기는 제가 처음으로 알게된 판타지라는 미지의 세계이자 저를 버틸수 있게 해주는 힘이었습니다. 뭐, 하지만 결국 판타지라는 장르를 혐오하시던 담임이 (왕따 해결은 해주지도 않았으면서 간섭만 잔뜩. 하하하.) 대출 금지를 내려서 몰래 몰래 봐야 했지요.
어머니는 참 괴로워 하셨던것 같습니다. 사실 재혼을 하시면서 이 기회를 통해 저와 형이 잘됬으면 하는 마음도 있으셨겠지요. 그런데 이 꼴이 나버렸으니...
결국 어머니는 결단을 내리시게 됩니다. 저는 겨울 방학때 김해에 사시던 이모집으로 내려갔습니다. 휴양 겸 도피죠. 그리고 지금 저는 어머니의 그 결정을 19년 인생에서 제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고향이란 말이 있죠. 김해에서 두 달동안 행복하게 전원 생활을 보낸 저는 그곳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겨울 방학이 끝나는 것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정말 기적같은 일이 생기더군요. 어머니가 아예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는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셨을때. 정말 기뻤습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왠지 제가 집으로 돌아오면 그 다음 일을 견디기 힘들어서 그러신것 같지만...그래도 그 결정 자체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것이...모든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을 낮선 곳에서 시작한지 며칠 뒤, 저는 놀랍게도 여자들 자리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그때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남자들과 여자들을 분단별로 구분해서 앉다보니 가운데의 여자 분단 가운데 한자리가 비었고, 앉을 사람을 물어보았을 때 제가 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여자들이 바글바글한 자리의 정중앙에 앉게 되었고, 더욱이 먼 곳에서 온 전학생이라는 요소 덕분에 궁금도는 무지막지하게 상승. 그 결과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이런 질문 저런 질문에 정신없이 대답해줘야 했다.
답글삭제바로 그때였습니다. 저의 첫사랑의 시작은. 내 앞자리에 앉아있던 애가 내가 쓰고있던 안경을 바라보더니 한 마디 하기를.
“애, 너 안경 더러워졌어.”
그러면서 자신의 앞 주머니에서 안경닦이를 꺼내더니 제 안경을 벗겨 쓱쓱 닦아주는 것이 아닌가. 의외의 상황에 놀라 나는 나에게 이렇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애가 누굴까, 하는 생각에 그녀에게 저절로 시선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맙소사. 내 앞에는 천사가 있었습니다. 강산이 절반쯤 변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그때의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이마가 보이도록 깔끔하게 빗어넘긴 긴 생머리. 타원형의 안경. 새하얀 피부. 어딘가에서 도도함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얼굴. 저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저의 첫사랑이 그렇게 시작되었으니까. 그녀의 뒷자리에서 그녀를 바라볼때, 저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순간에 젖어들었다고 단 한치의 의심도 없다고 말할수 있을 정도로 저는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서는 정말 행복하다 말할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의 일상생활은 도망쳐온 그곳과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아니, 더 심해졌습니다. 적어도 그 곳에서는 다른 지방 사람이라고 해서 은밀한 무시와 편견을 받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저의 일상이 피폐해질수록 그녀에 대한 마음은 커져갔고, 그곳에 나는 현실의 막막함을 기댔습니다. 그리고 덩달아서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게 된것을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덕후의 첫 걸음도 걷게 되었고요. 물론 매일 밤 이불 속에서 고백을 했을 뿐, 실제로 고백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채로. 그리고 4월이 지나 5월이 됐을 때, 저에게는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습다.
그 원인은 저와 같은 반의 반장. 역시 안경을 쓰고 묶은 머리에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훤칠한 키. 그동안 그저 같은 반의 아는 애에 불과했던 그녀는 어느 날부턴가 저를... 때때로 껴안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저는 참 바보입니다. 그저 이 모습이 좋아하는 그녀에게 보일까 당황했을 뿐, 그 행동이 어떤 의미를 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어쩌면 반 애들도 알았을지 모르는데. 그걸 모른 저는 정말 정말 바보라고 말할 수 밖에 도리가 없잖습니까. 그래요. 어쩌면 저의 착각일수도 있습니다. 그저 제가 불쌍해보여서 그런 걸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추측을 사실로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중간고사를 일주일 정도 앞둔 날 일어났습니다.
그 날 영어시간, 본문을 달달 외우고 있던 저에게 날아온 조그마한 쪽지 한 장. 이 학교에 입학한 뒤로 이런 일은 처음이라 의아한 상태로 쪽지를 펼쳐보니 그 안에 쓰여진 글은 놀랍게도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나 사실... 너 좋아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대답해줘.]
이쯤 되면 누구든지 ‘지금 소설 쓰냐?’ 라고 따질지도 모르겠습다. 하지만 어떻하겠습니까. 정말 사실인걸. 하긴. 지금 돌이켜봐도 참 일어나기 힘든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그 쪽지를 읽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종 잡을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난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고 거절하기는 힘든, 연애의 역사상 가장 뻔하면서도 가장 힘든 상황이 반복되는 순간. 그래서 고민 고민 한 끝에 장난일지도 모르니까 일단 찾아가서 말해보자. 라고 생각해서 쉬는 시간에 찾아가서 물어보니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그거 장난이야~ 왜 그렇게 고민하고 그래? 수업시간 내내 끙끙대더니만..”
여기서 ‘그럼 진짜 장난이었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후에도 껴안기 공습은 계속 되었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괴로웠던 순간들과 행복했던 순간들 속에서, 저는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쳐버렸습니다. 1학기에 저는 교무실 복도 청소, 내가 좋아했던 그녀는 교무실 내부 청소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같은 학원에 다니는 3학년 선배가 자꾸 교무실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한마디 물어보기를.
“야. 저기 교무실 안 청소하는 애 있잖아. 혹시 사귀는 애 있니?”
그렇습니다.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그 선배도 그녀를 좋아했던 것입다. 하지만 역시 저의 순진함과 바보스러움은 변함이 없었는지라, 너무나도 미련하게 그녀에게 ‘사귀는 애가 있냐’ 고 물어보았다. 그때 저와 그녀는 친구랄까. 뭐 그 정도 사이였으니까. 그녀의 ‘아니’ 라는 대답에 저는 얼마나 기뻤던지.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저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서 재대로 뒷통수를 맞게되었습다.
‘언젠가’ 그녀에게 반드시 고백하겠다며, 하지만 부끄러움과 나의 처지를 생각하면 도무지 고백할수 없었던 제가 ‘2학기에는 반드시!’ 라는 굳센 다짐을 하며 학교에 갔던 날... 도무지 재대로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날 저는 그녀가 그 선배와 사귀게 되었다는 걸 알았고, 고백하지 못한 나를 미친듯이 원망했다는 것. 단지 그뿐.
그렇게 괴로운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2학기에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그녀와 친한척 대화라도 하는 것. 그리고 그녀와 선배의 관계를 가지고 장난스럽게 놀리는 일 뿐. 그것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할 수도 없었습니다.
몇 번 바보 같은 시도도 해봤고, 그녀가 선배의 싸이월드를 보면서 친구들과 얼굴을 붉히는 걸 가만히 바라보며 인생 처음으로 사랑에 대한 질투심도 품어봤지만... 단지 그 뿐. 변한 건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재대로 된 고백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채, 그 곳으로부터 온지 딱 1년 후, 저는 마치 미연시 속 주인공처럼 그곳을 떠나 다시 집으로, 새로운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전학도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예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괴로운 생활은 계속해서 이어졌습다.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진 것이 있다면, 마음 둘 곳을, 얻게 되었다는 것. 단지 태어난 곳에 불과한 고향이 아니라, 진짜 마음의 고향을, 얻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학교 도서관에서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를 접하게 되어, 판타지 작가라는 꿈을 얻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 빌어먹을 둘째 형이 군대를 간 사이에 저는 오타쿠 로드를 본격적으로 걷게 되고, 중2때 그 곳에 다시 찾아가서 그녀에게 고백했다가 허락한줄 알고 히죽거리며 다시 찾아갔더니 완전한 거절에 맞닥드려 하늘도 울고 나도 울고. 애들의 괴롭힘은 계속 되었지만 그래도 생긴 몇 안된 친구들과 오덕질에 마음을 의지하고. 결국 지금은 수능도 마치고. 둘째 형도 지금은 성격이 많이 좋아진지라 그럭저럭 지내지만. 공모전에 떨어진 뒤로 자신의 재능이 없을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 채로. 그저 하루하루를 허무하게 보내고 있는 접니다. 그래도 위 스레의 말처럼 제 인생을 해피 엔딩으로 끝내고 싶습니다...
@리모콘 - 2010/01/18 02:20
답글삭제비밀 댓글 입니다.
......인생에 해피엔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답글삭제인생에 엔딩이 없으니까요.
죽어도 사람의 인생은 계속되죠.
자기자신이 한일로.(영혼같은건 알지도 못하니 제쳐둡시다.)
모든분이 탈없이 잘달리길 기원하겠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여러분이 잘달리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건승하시길.
해킹성공
답글삭제@요시노야 - 2010/01/17 01:47
답글삭제새치기라도 ㅠㅠㅠ
흠..비교해보니 저의 인생은 왠지 게그물로 보이네요.
답글삭제집안도 화목하고..
라고, 제목으로 판단했는데. 설마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답글삭제하지만, 좋은 스레였습니다.
번역해주신 고릴라님,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해보니 저도 한번해보렵니다, 나이는 아직 어리고 어차피 밝히지도 않을거지만, 제가 생각해도 순탄한 인생이라고는 생각못했습니다,
답글삭제저희 부모님은 일찍 결혼하셨고 직장도 좋고 언제나 행복했습니다 동생이 태어나도 충분한 집 넓이에 친구들을 자주 초대해서 놀았던것도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성격과 어머니의 성격은 잘 맞지 않았고 아버지 역시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잘못을 해도 서로 사과를 하지않았습니다, 동생도 태어나고 IMF가 왔기 때문인가요 부모님들은 매일매일 싸우기 시작했고 제가 5살때 결국 엄마는 집을 나갔습니다, 가끔씩 엄마가 왔는데 밤에 가지말라고 사정을 해서 울어서 엄마가 같이 잤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는 없었던게 기억이납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의 집에서 살았으며 큰 아파트에서 단칸방 월세로 이사간게 생각납니다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점점 나이를 드니 우리집 형편이 안좋고 가정상황도 안좋다고 생각하게되었고 현실을 받게되었습니다, 어느날은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와서 저와 동생을 내 쫓아냈습니다 겨울이었죠 동생과 저는 대충옷을껴입고 어쩔수없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아주머니가 저를 1일동안 맡아주시고 내일 아버지 집으로 보내줬죠. 그런 생활이 몇년지나자 저는 드디어 엄마가 사는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또다시 우리를 버렸고 저희들은 엄마와 살게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알다시피 여자 한 명이서 아이 둘을 기르는건 힘들었기에 먹고싶은건 안먹고 사고싶은건 안사고, 제가 어릴때 어머니에게 때를써서 유행하는 장난감을 샀을때 정말로 철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씩 일을 하고 오는 엄마의 손의 물살을 보니 저는 꼭 대학이 아닌 취업을해서 빨리 어머니를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어린 저에게 한숨말 쉴뿐이지요..
잘 모르겠지만 저도 나름 잘살고있다고 생각합니다..저보다 어려운사람들도 있으니말이죠
@추천 - 2010/01/17 05:20
답글삭제어디선가 쓰르라미 소리가...ㅋㅋ
참...하나하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네요.
답글삭제저는 예전에 외국에 교환학생으로 나가서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에서 매주 상담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한 시간동안 제 살아온 이야기를 떠벌리는 카운셀링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고 사람이 자유로워지더군요.
여기 자기 인생의 편린을 남기신 분들도
조금 홀가운 마음으로, 웃을 수 있길 바랍니다...
길고 멋진 글을 번역해 주신 어설트레인 님,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런스레는참좋네요
답글삭제학교 신학기에 자기의인생에대해 쓰시오가잇는데
이런 스레는 절때쓸수가없죠
저는 어렷을때의 부모님의이혼때문인지
어렷을때의기억이 포맷된듯이 거의기억이안납니다
사진을봐도 내가저랫던가라고생각할정도로
보통사람보다 어렷을때의기억이없어지요
(라고해도 아직고등학생이지만요)
어렷을때 기억이잘안나서그런지 저는 제가저지른사건에대해서도
남일처럼 제감정이 전혀기억나지않는거같네요
저의경우에는 초등학교때 아마 초4쯤에
초등학교 창문을 부수는둥 난동을 피운적이잇습니다
그리고 성적은 완전최하위 방학때도 보충수업을 나가야하는
완전 문제아 하지만 사람은급격히변하는것같습니다
막장성적은 중학교까지 이어졋습니다
친구는 그럭저럭 4~5명이서 그룹을 이루고잇고
평범하게지내던날에 미술시간에 선생님의호출로
교무실에가보니 아버지가 위독하다고들엇습니다
그때저는 아무런실감도 나질않앗지만 결국돌아가셧고
저는장례식장에서 친인척들과 지인들이 오고가면서
저에게 위로를해줫지만
솔직히말하면 저는 하나도안슬프고 슬픈척연기하는사람이됫습니다
슬프냐고요? 안슬픕니다 어렷을때의기억은 하나도없고
아버지하고의 추억도 없는거같습니다
저는 위에글들을보면서 제일이해안되는게 그것입니다
추억이없고 접촉이별로없는 핏줄은 그것이 설령 부모님이라할지라도
타인처럼 느껴진다는점입니다
저는 이걸 이제 아이를가지는사람들이 꼭알아줫으면하네요
아무런 추억이없이 산사람은 핏줄의정같은거는 전혀느낄수없다는것을
부디 저같이 하루가멀게 세상을원망하고 증오하고 현실에서 눈돌리고싶은 사람은 만들지마세요 최소한의 다시일어설수잇을만한 추억하나는 잇어야지 힘든세상을 살아갈수잇다고생각하네요
어디서 본내용이지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사람은
빨리어른(정신적)이된다고하던데 저는그말이 맞다고생각합니다
어른이 되고싶어서되는게아니라 어른이 될수밖에없는 이현실
그리고 이현실에대한 증오
이번 겨울방학동안에라도 잊지못할 추억을하나만들어보세요
아마 인생에서 도움이될꺼라고생각합니다
이왕 댓글 다는 거 2ch 어비스니까.
답글삭제스레에서 하는 것처럼 >>1, >>2 이렇게 하는 것도 재밌지 않을 까요??
>>144
답글삭제아무도 안 할 걸요?
...랄까. 나 하고 있다!!!!
>>144는 이거 댓글 다 센 건가??
답글삭제오! 단 1분 정도에 댓글 4개나 늘었다.
답글삭제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면 댓글이 본문보다 길어질지도...ㅋㅋㅋ
답글삭제@死門 - 2010/01/17 15:20
답글삭제기운내세요'ㅇ'...
미래를 위해서라면 힘들어서라도 한국에 오셔요
아무리 좋은 곳을 나온다고 해도
말레이시아라면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비행기 값 버는 것도 버거울 정도인걸요
말레이시아에서 INTERNATIONAL SCHOOL을 다니셨으면
영어도 어느정도 갈고 닦으시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에요
그리고 유학후 돌아온 학생들에게 은따현상은 흔히 있을 수 있습니다
열심히 여기저기 기웃대며 부지런히 친구들자리에 참석하세요
조만간 은따당하는 일은 사라질거에요^ㅇ^
저도 말레이시아에서 1년반 정도 살았기에
반가워서 덧글 달아봅니다 ㅎㅎㅎ
래봤자 기억나는 말레이단어는 SAYA, SATU,DUA 정도 ㅋㅋㅋㅋ
역시 어떻게산다하더라도 살아가는것은 자기의몫이죠.
답글삭제그러기에 전 제가꿈꾸는잏을 하기위해 오늘도 열심히 삽니다.
가끔 나태해 질때도 있지만 목표하는일만큼은 잊지않습니다.
삼은 한번뿐이니 행복해지고싶어요.
행복해지고싶은것이 제 마음입니다.
그리고 내주위의 모든사람들또한 행복하게하고싶습니다.
다들...힘냈으면 좋겠어요. 힘내시라!
답글삭제블로그로 퍼갈게요!
@... - 2010/01/17 03:11
답글삭제미안하다 하시겠죠. 굉장히 중요한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기억 하세요. 아버님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은 살아계시고요.
아버님을 잊으란 게 아니에요. 그건 막돼처먹… 아니 욕하면 안 되지… 흠. 그러니까, '아버지=슬픔' 공식을 만들지 마세요. 그럼 정말 곤란해요. 머릿속으로 세 글자만 외웠는데 두 눈가에 짠물이 질질 흐르면 단지 한심 할 뿐이죠. 조금만 머리를 굴려서 꼬꼬마 친구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각오가 덜 됐으니 단물이나 마셔야죠. 공부 잘 했다고 칭찬 받으신 적 있으시죠? 아니 뭐, 제가 자세한 건 알 리가 없으니 좋은 기억만 떠올리세요. 포기하면 편해요.
그런데 그래도 서글프죠? 그거 안고 살아가세요. 숨 붙어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되더래요. 학창 시절은 속된 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라서 세상 모든 게 시크하게 보이는 법이에요. 거기서 한 삐끗하면, 별 수 있나요. 시ㅂ 망했어 외치면서 벽 한 번 치죠.
무지 싫지만 이게 3D 세상이래요. 진짜 드럽다 침 한 번 탁 뱉어보고 싶은데, 그랬다간 '오예 저놈이 드디어 내 인생 깔개가 되는구나.' 하는 인정머리 없는 곳이에요. 그냥 좀 내버려둬 하고 외쳐도 듣는 사람 하나 없고, 나 죽는다 외쳐도 말릴 사람 없는 세상이죠.
(근데 가족은 듣는다나요. 가까워서 그런지 듣기 싫다고 귀 막아도 들린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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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헤매요. 길이 꼬인 것도 아닌데. 길바닥 알콜드레싱 쫘먹는 비둘기처럼 머리에 자석이 있어서 헤맬 일 없음 좋겠는데, 안 돼요. 어쩐 일인지 이(런 분)놈이고 저(런 분)놈이고 죄다 헤매요. 왠지는 몰라도. 그걸 또 헤쳐나온 다음에야 깨닫는 걸 보면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는데… 하지 마세요. 어차피 헤매요. 그냥 받아들이세요. 그게 인생이에요.
그렇게 살짝 헤매고 나면 다시 돌아와요. 원점 복귀.
뭘 바라나요. 튀어나가지 않고 길 따라 쭉 가는 게 최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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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빨리 지나가요. 그리고 지나온 시간을 모두 기억할 만큼 우리 대뇌소뇌간뇌중뇌가 똑똑하지 않아서, 기억 속에서 가장 밝은(반어법인지 직유법인지) 부분만 콕 찝어내서 기억앨범 속에 박아넣어요. 그래서 가끔 기억은 과장돼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지금을 볼 수 없도록 만들죠. 아직도 앨범만 팔락이고 있는 건 아니죠? 그렇다면 정신 차리세요. 앞으로 걸어가는데 뒤를 보면 어떡해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매우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계시네요(비유가 아니에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정상적인 고2이십니다. 뭔가 하고 싶으시죠? 그대로 살고 싶진 않죠?
넵. 당장 밖으로 나가세요. 하루 종일 틀어박혀 계시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도 당연하죠. 이 글을 읽은 오늘 하루는 키보드에서 멀어지세요. 옛날 조선의 2대 전투종족인 선비는 마음에 심화(근심)가 찾아올 때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걸음으로써 마음을 정리했다고 하는군요. 한 번 걸어보세요. 천천히 걸으면서 얽힌 생각을 정리해보세요.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하는 공부가 다는 아니에요. 다르게 생각하세요. 삶은 이미 공부거든요.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를 공부를 한다는 것이니, 아침에 깨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공부를 배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며 잠자리에 든다는 것은 하루의 공부를 마쳤다는 것이죠. 그 공부가 미진하면 다음날, 또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것이고요.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얻는 게 있을 겁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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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슨(Ralph W. Emerson)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하루종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달려있다고.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별은 캄캄한 밤에만 볼 수 있다.' 이 말을 명심하신다면, 언젠가 길을 잃어버려도 자신이 아직도 그 길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
간만에 좋은글을 읽었습니다
답글삭제가끔 제가 계속 생각하는것이 떠오르긴하지만 마지막 말이 제일 좋았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답글삭제인생에는 그저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단지 인생의 엄숙한 의미를 음미하면 된다고 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자학의 시, 고다 요시이에
저는행복합니다!!!!!!
답글삭제원론적으로
답글삭제나는 나이다
그 形(형)은 무엇도 아니고
형체는 필연이며
형태는 욕심이다
형상은 형상이고
그로인해 비롯됨은 삼라만상을 포함한 너와 나